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눈앞에 펼쳐진 수학 문제처럼. 나는 출석 번호 9번. 오늘은 9일이다. 반드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꿀밤은 피할 수 없다.
“에취, 에취, 에취.”
코안이 얼얼했다. 아이스크림을 잔뜩 먹으면 머리가 아프듯, 내 콧 속이 깨질 것 같았다. 이 아픔은 매일 반복되는 의식이다.
“너 재채기 소리가 상당히 특이하다? “
오늘 함께 싸울 동지가 다가왔다. 19번, 29번, 10번 친구다. 우리는 함께 의논했다. 문제 속 핵심 포인트를 생각했다. 알맞은 공식을 쓰고, 순서를 지켜야 하며, 과정이 해답지와 똑같아도 안 된다. 적은 우리의 허점을 파고든다. 문제를 정복하지 않으면 피를 보리라. 우리는 예상 문제를 마스터했다. 이제 적을 기다리면 된다. 때리려는 자, 맞지 않으려는 자. 누가 이길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고 당연히 비도 안 왔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녹색 잎이 얼굴을 내밀고 고개를 세차게 움직인다. 창밖은 먼지 낀 듯 흐린 탓에 싱그러운 풍경이 무색하다. 어떤 친구는 문제가 잘 안 풀리는지 괜히 셔츠를 걷어붙이고 연습장에 문제를 새로 썼다. 반 친구 절반은 아직도 두터운 체육복 상의를 걸치고 있다.
“차렷, 선생님께 인사.”
“안녕하세요.”
선생님이 칠판에 문제를 쓰기 시작했다.
“오늘 며칠이지? 9번, 19번, 29번, 10번 나오너라.”
예상대로다. 눈을 마주친 우리는 마음속으로 서로를 응원했다. 칠판 앞에서 각자 자신 있게 풀이 과정을 써 내려갔다. 전우들은 모두 세이프. 마지막으로 나만 남았다. 늘 잘 넘겼으니 오늘도 잘 넘어가겠지. 그런데 선생님의 눈이 달처럼 휘었다. 불길한데. 그 느낌이 내 착각이길 바랐다.
“이 문제는 2차 함수 문제입니다.”
침착하게 문제를 풀이했다. 수업 전에 풀이를 철저히 준비했기에 자신 있었다.
“여기서 사용되는 공식은 XXX입니다.”
“진짜로?”
“네.”
한 문장을 말할 때마다 선생님이 트집을 잡았다. 여기서 대답이 흐려지면 말린다. 나는 굴복하기 싫었다.
“그러므로 x는 4입니다.”
준비한 풀이를 모두 말했다. 자리로 돌아가라고 하실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에게서 그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선생님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갑자기 왜 x가 나오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했다. 그 순간 시계 초침이 똑딱거리고, 반 친구들도 침을 꼴깍 삼켰다. 이 부분은 누구라도 암산할 수 있다.
“바로 등호를 넘겨서 풀었습니다. 생략된 부분은 2x=8입니다.”
”그럼 그 과정을 왜 안 썼지?”
“이 부분은 충분히 암산이 가능해서요.”
이 정도는 생략할 수 있지 않나? 선생님의 입이 귀에 걸렸다.
“테리야. 아무리 암산이 가능해도 과정을 생략하면 안 되지. “
“선생님. 이 정도는 계산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친구들은 네 암산 과정을 다 알지 못해.”
할 말을 잃었다. 웃음기가 묻어나는 말투가 얄밉다. 선생님은 꿀밤을 때리려고 억지를 부렸다. 하지만 내가 과정을 생략한 건 맞았다. 반박불가다. 철옹성의 방어는 뚫렸다. 어쩐지. 다른 친구는 모두 순순히 자리로 보내시더라. 그날 선생님의 목표물은 애당초 나였다. 나의 완벽한 패배였다.
“으흐흐. 이리 와. 테리는 꿀밤 처음 이가?”
선생님은 깍지 낀 손으로 파도를 만들었다. 손가락 튕기는 연습까지 했다. 내 눈에 선생님은 손가락까지 신났다. 나는 순순히 선생님 손에 머리를 대었다.
“딱”
“악”
나도 모르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이마를 맞았는데 왜 코가 아프지? 코에서 뭔가가 주르륵 흘렀다. 교실 바닥에 피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다. 내 손에도 피가 묻었다. 모두가 내 코를 보고 있었다.
“어, 피다.”
“어머 어머.”
교실이 소란스럽다. 선생님도 당황한 눈치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나를 보고 계셨다. 피가 쉽게 멎지 않아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 사이 반 분위기는 전혀 진정되지 않았다.
“테리, 괜찮니?”
조심스러움이 묻어나는 말투로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수많은 눈이 나에게 집중되자 내 얼굴이 점점 뜨거워졌다.
“괜찮아요. 저 원래 코피 자주 나요.”
”나는 한 번도 흘린 적이 없는데.”
내 말에 친구가 대꾸했다.
”나 같은 사람도 있어. 나는 1년에 한 번 이상 흘려.”
나는 이 문제를 더 키우기 싫었다. 그 이후로 수학 선생님은 꿀밤을 세게 때리지 않았다.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꿀밤을 때리려다가 이마를 살짝만 건드릴뿐이었다. 선생님의 손가락은 힘이 빠지고, 표정에선 재미가 사라졌다. 내가 죽을힘으로 방어할 때 선생님도 억지 부리지 않으셨다면 내가 수업 시간에 코피 흘릴 일도, 선생님이 당황할 일도 없었을 텐데. 친구들은 선생님이 코피 사건 이후로 꿀밤을 안 때린다며 키드득 웃어댔다. 수학 시간에 평화가 찾아왔다.
내 코피를 보고 당황한 친구들. 왜 그렇게 놀랐을까? 눈이나 입에서 피가 흐른다고 상상하니 두렵다. 친구들에게 코피는 깜짝 놀라운 일이었다. 반면 나에게 코피는 당연한 일이다. 사람마다 당연한 일이 다르다는 걸 나도 친구들도 그때 알게 되었다.
그 후 10여 년의 세월이 지났다. 재채기를 하는 횟수는 점점 늘어난다. 코의 통증은 지루하지 않다. 어느 날은 레몬의 톡톡 튀는 맛처럼 괴로울 정도로 시다. 코로 숨쉬기 편한 삶은 어떤 삶일까. 그런 건 내 삶에 없을지도 모른다. 코안을 촉촉하게 유지해야지. 코피를 조금은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코피를 완전히 피할 수 없다. 그런데 내가 흘리는 코피가 변화의 첫발이 될지도 모른다. 꿀밤을 쫓아내고 평화를 열었던 그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