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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란 Feb 13. 2024

자유의 여신상은 홀로 서있다.

2004년생 "무소속" 학생의 홀로서기: 1편

 처음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그저 학교 바깥의 자유로움을 즐기는 것이었다. 학교를 나오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19살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는 거의 다 누렸던 것 같다. 그때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다가 코로나에 걸려 일주일 동안 혼자 지내게 되었을 때는 3월 무렵이었고, 모두가 학교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학교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물론 기쁜 일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감정이 더 커져왔다. 생각보다 혼자 맞는 3월은 외로웠고, 두려웠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학교 안에서 상상하던 세상과 학교 밖에서 실제로 맞이한 세상을 달랐고 나는 크게 당황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학교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괴로웠다. 갑자기 그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고 나는 실패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속마음을 엄마에게 털어놓았을 때 엄마는 나에게 학교 밖에 나왔으니 남들과 비교하는 것보다는 진짜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수영과 기타를 배울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게 당분간은 아무 생각 없이 수영을 하고 기타를 치며 나만의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아침, 수영 수업을 다녀오는데 문득 그날이 3월 21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퇴를 한 지 3달이 되는 날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핸드폰을 켜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의 글을 인용하자면 이렇다.


 자퇴 후 3달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여전히 헤드폰을 귀에서 떼지 못하지만 좋아하는 노래를 기타로 칠 수 있게 되었고 그만큼 여유로워진 사람이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많이 변한 건 무기력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수영장에 다녀오는 길에 돌멩이 하나가 신발에 들어갔는데, 아무렇지 않게 털어내고는 스스로 조금 놀랐다. 학교에 있었을 때는 이러지 못했다. 울지도 못하고 화도 못 내고 그냥 어려운 마음을 꾹꾹 삼켜내며 가라앉았다. 근데 지금은 돌멩이 하나쯤은 아무렇지 않게 털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종일 머리를 맴돌던 통증과 자꾸만 나를 놀라게 하던 두근거림도 가라앉았다. 약도 반으로 줄었다. 그런데 무기력이 사라진 자리에 좋은 것만 채워진 것은 아니다. 시기와 질투가 뿌리를 내렸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또한 나는 절대 그들과 같아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정상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진 못했다. 그저 운이 좋게 공교육이 표준으로 삼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저 혜택과 보호를 행복하게 받을 수 있다니, 좀 괘씸했다. 3월 초에는 개학하기 싫다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괜히 미웠고, 모의고사 날에는 시험지도 맘대로 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괜히 슬펐다. 하지만 이 시기와 질투는 전혀 쓸모가 없다. 전혀. 이걸 다스리는 방법도 조금씩 배우고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3달 동안은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이제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나는 공부가 더 이상 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봐 걱정했었다. 평생 내가 잘하고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은 공부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면 어쩌지. 그럼 나는 어떤 사람인거지.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오히려 학교를 나오고 나니 싫은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졌다. 내가 싫은 것은 공동체라는 이름 하에 개인이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지, 무언가를 알아가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이 점이 분명해졌으니 앞으로는 그렇게 힘들지 않을 것 같다. 3개월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이번 3개월은 나에게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앞으로의 삶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한 발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아리아나 데보스의 수상소감 중에 마음에 남은 말이 있었다. 비백인 성소수자 여성인 아리아나 데보스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이 있거나 어디에도 맞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면,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나와 당신을 위한 자리는 어딘가에 반드시 있다. 이건 약속이다. “라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이 세상에 나를 위한 자리도 어딘가에 있겠지. 그 자리를 향해 계속 가보자. 그렇게 단단한 다짐을 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직접 고민해보고 싶었다.


 내가 쥐게 된 자유의 곁에는 아직 두려움과 질투처럼 찐득이는 늪과 같은 감정들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자의 수상소감을 통해 어딘가에 있을 내 자리를 향해 가겠다고 마음먹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자유의 여신상은 홀로 서있지만 그렇기에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갔다.


 그렇게 단단한 다짐을 했지만 때로는 흔들릴 때도 많았다. 하루는 트위터에서 자퇴에 관한 글을 봤다. 요약하자면 자퇴 이후에 겪는 현실은 결코 쉽지 않으며 이를 겪기에 청소년은 아직 어리므로 정말 신중하게 오래 고민하고 해야 하는 일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글을 마주하자마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일부는 동의하는 생각이었다. 나도 막상 자퇴를 해보니 공교육의 틀에서 받았던 보호와 지원은 결코 보장되기 쉬운 권리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아직은 ‘비정상’인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세상에서 나의 ‘비정상’을 하나 더 늘린다는 것은 큰 결심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 트윗을 쓴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시선을, 단지 어리기 때문에 일을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험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걱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자퇴뿐만 아니라 모든 선택은 해보기 전에는 미지수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지레 판단해서는 안된다. 흔히 자퇴는 도태나 포기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약, 투쟁, 해방일 수 있다. 나에게는 도전이자 생존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다 알아달라고 하는 건 어려울 수 있지만 그래도 내 목소리를 한 번은 들려주고 싶어졌다. 내가 원하는걸 한 번은 받아내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너무 힘이 들었다. 터지기 일보직전의 태양을 꽉 안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내가 훨씬 더 강해져서 그 태양을 높이 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지 겁이 났다. 그리고 힘이 들었다. 그렇게 그 태양을 놓칠 뻔한 어느 날 알게 되었다. 내 태양은 본래 높은 곳에 떠오를 것이었다.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단지 그 태양을 놓아주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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