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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May 29. 2021

분리불안과 애착

한때 수건을 사랑했던 소년은


오피스텔 복도에는 똑같은 모양의 문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한참을 걸으니 저 멀리 문이 살짝 열려 있는 방이 보였다. 나름 번듯한 사무실을 기대했지만 OOO심리상담센터는 이름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 위치해 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곧 안쪽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자한 인상의 상담사가 나를 맞이했다. 그는 나를 자리로 안내하고는 티백 녹차를 타러 부엌으로 향했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천천히 방을 둘러봤다.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책장엔 온갖 심리학 서적이 즐비했다. 책상엔 상담을 예약한 사람들의 이름과 시간이 빼곡하게 적힌 일정표와 내용물이 얼마 남지 않은 휴지곽이 놓여 있었다. 이들은 적절한 위치에서 그가 얼마나 유능한 상담사인지 증명하는 역할을 했다. 하기사 입담을 업으로 삼은 이들에겐 전문성에 대한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 법이니. 의도된 배치라면 그 또한 전문가가 응당 갖춰야 할 자질 중 하나라 할 수 있었다.


먼저 상담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했다. 상담을 신청한 목적과 상담 중 하고 싶은 이야기, 이를 통해 얻고자 하는 변화를 종이에 적어 내려갔다.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지 고민하는 상담사에게 꼭 필요한 정보들이었다. 비밀유지 서약서도 작성했다. 물론 전에도 상담가에게 제일 중요한 건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 무거운 입이라는 건 알았지만 서류를 쓰니 그를 향한 신뢰가 더욱 두터워지는 기분이었다. 이 사람에겐 응어리진 이야기들은 모두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종이를 넘겨 받은 상담사는 코 끝에 안경을 걸쳤다. 그리고 상담이 시작됐다.


학업과 진로에 대한 이야기로 운을 뗐지만 상담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마치 어느 항구에서 출발할지만 정한 뒤 바다로 나아간 돛단배처럼. 배는 금세 비바람이 몰아치는 무의식 속으로 나아갔다. 겉으론 착한 척 해도, 뭐든지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야 마는 비참한 한 사람의 내면으로. "힘들겠어요." 상담사의 추임새 속엔 직업 정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우울과 무기력의 원인을 좇는 기나긴 항해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어린 날의 기억의 파편을 별자리 삼아 나아갔다.


나는 늘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원인을 스무 살의 기억에서 찾곤 했다. 몸무게가 90kg에 육박하고, 모든 만남이 또 다른 상처로 이어지던 시절의 기억에서. 당시 보고 들은 경멸의 눈빛과 혐오의 언어를 다시 마주하기 싫어 자신을 검열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점점 더 소심하고 스스로에게 가혹한 사람이 됐다고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상담사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면에 또 다른 원인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다. 분리불안과 애착. 그 뿌리를 찾기 위해 우리는 보다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엄마는 나를 낳고 두 살 터울의 동생을 낳았다. 한창 애착을 형성해야 하는 시기에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빼앗긴 경험은 무의식 속에 남는다고, 상담사는 설명했다. 또한 분리에 대한 불안은 보통 다른 물건에 대한 애착으로 이어진다고도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그런 애착 물건이 있었다. 엄마는 어린 내게 부드러운 핑크색 수건을 덮어줬는데, 나는 그 수건을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목숨처럼 아꼈다. 그 수건이 없으면 잠을 못 잘 정도로, 엄청난 애정을 보였다. 말하자면 엄마의 사랑이 주는 안정감을 그 부드러운 감촉 속에서 찾은 것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를 대체한 그 수건은 아직도 내 서랍 한 켠에 고이 접혀있다. 나이가 들며 수건을 향한 집착은 사라졌지만, 문제는 불안한 마음은 그대로라는 점이었다. 무의식 속에 단단히 자리 잡은 불안은 바위에 스며드는 물처럼 서서히 나를 바꿔갔다. 자기 검열과 자책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 가능했다. '만약 내가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이라는 못된 가정법으로 상상 속의 자신을 현실에 대입하는 버릇은 어릴 적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빼앗긴 자신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두 살 터울 동생이 있는 건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진데요"
 

대조군이 문제였다. 그럴듯한 설명임에도, 내게만 국한된 문제처럼 보이기에 선뜻 수긍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답이 나오는 속도를 보니 이미 여러 번 받아본 질문인 듯했다. 분리불안은 터울 동생을 가진 이들에게 대부분 내장돼 있지만, 발현되는 방식이 다르다고 그는 말했다. 내게는 더 철저한 자기 검열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애정 결핍으로 드러날 뿐이라고. 따라서 극복하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르니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덧붙였다. 처음 들어보는 명쾌한 설명 앞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오늘날 나를 괴롭히는 우울과 무기력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을까. 지나친 환원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하나의 원인으로 귀결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문제가 단순하면 해법도 단순해지기 마련이니까. 다만 첫 상담을 받아본 결과, 언젠가는 그에게서 간단명료한 구원의 공식을 받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피어올랐다. "마음가짐을 바꾼다고 해도 해결이 될까요?"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에 그는 "반드시 해결된다"고 답했다. 힘이 서린 목소리는 일말의 의심마저도 모두 지워버리기에 충분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벽면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마음속 응어리진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에 대한 설명까지 듣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다음번 상담 일정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 뵙죠." 하지만 나이 지긋한 상담사가 상반신을 굽혀 인사하는 모습을 보자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그래, 상담도 서비스업이었지. 마음을 회복하는 일에도 많은 돈이 필요하구나. 아빠나 친구와 같은 진솔한 조언자를 바란 건 욕심인지도 몰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기대감과 씁쓸함의 적당한 균형으로 종전과 같은 무게를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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