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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May 30. 2021

아파트 입구를 바라보며

할아버지가 사라지며 잃은 것들


"오~ 이제 비밀번호 누를 필요 없네"

"이거 뭐야, 완전 신세곈데?"


얼마 전 우리 아파트 입구에 이상한 장치가 하나 설치됐다. 휴대폰 블루투스 기능을 이용해 자동으로 입구 출입문을 열어주는 장치였다. 업체에서 파견한 직원의 안내대로 앱을 깔고 주민등록을 마치면 이후로 귀찮게 비밀번호를 누를 필요 없이 아파트 입구를 드나들 수 있었다. 대체 누가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했던가. 문 앞에 서기만 하면 알아서 척척 열리는 출입문을 볼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내가 뭐라도 되는 사람인양 으쓱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몇 번이고 비밀번호를 잘못 누르는 이웃주민을 답답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비밀번호를 누르기 위해 양손 가득한 짐을 내려놓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완벽한 자동화가 이뤄지며 출입문은 점차 안중에서 사라지게 됐다. 뭇 기술의 발전은 늘 사람들로 하여금 제 존재를 잊게 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것이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우리 아파트 입구엔 경비 아저씨가 있었다. '호호 할아버지'라 부르면 딱 어울릴 만한, 머리가 하얗게 세고 푸근한 인상을 가진 할아버지였다. 등하교를 할 때마다 우렁찬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외치면 미소를 지으며 네~ 안녕하세요,라고 화답하던. 그분의 인자한 모습은 여전히 어린 시절 따듯한 풍경 중 하나로 남아있다. 내게는 할아버지가 없었다.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모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내겐 그가 할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렇게 부르진 않았지만, 속으론 분명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십 년도 더 된 일이라 그런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하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몇몇 장면은 뇌리에 남아 애틋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박이 세차게 몰아치던 날이었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학원 통원버스에서 내려 미닫이 문을 닫다 그만 문틈에 손이 찍혀버렸다. 쏟아지는 얼음 알갱이에 놀라 급하게 안쪽 손잡이를 잡고 당긴 게 화근이었다. 아파트 입구까지 겨우 기어가 부어오른 손을 부여잡고 바닥에 뒹굴었다. 울고 있는 내 앞에 제일 먼저 나타난 건 놀란 얼굴의 할아버지였다. 그는 곧장 우리 집에 인터폰을 걸어 부모님을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이 내려왔고, 바로 병원에 갈 수 있었다. 에구 무서웠겠네, 의사가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았어요. 옆에서 팔을 받치고 괜찮다고 말해주던 할아버지 덕분이었을까. 손은 잘릴 듯 아팠지만 무섭진 않았다. 어릴 적 할아버지를 경비원 이상의 존재로 여긴 건 그런 기억들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어느 날 홀연 듯 사라졌다. 중학교 때 멀리 학교를 다닌 탓에 집에는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갔는데 언제부턴가 경비실에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단지 입구에는 자동출입 바리케이드가 세워졌고 그 옆에 통합 경비실이 세워졌다. 단지 차원에서 관리비를 절감하고자 경비원 감축을 감행한 것이었다. 신문에서 경비 인력 감축에 대한 보도가 연일 들려오고, 혹자는 이를 자본 논리에 의한 인간성의 상실이라며 몰아세울 때도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우리 역시 자동화의 그림자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운 좋은 경비원들은 통합 경비실에 자리를 보전했지만 그날 이후 호호 할아버지는 다시 볼 수 없었다.


부동산 앱을 통해 단지 내 아파트들의 시세를 조회했다. 전부 평균 이상의 값을 호가하는, 소위 말하는 '잘 사는 집'들이었다. 15층짜리 아파트에 각 층에 두 호씩 있으니까, 총 삼십 호. 몇 푼씩만 모으면 할아버지는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사라지며 우리는 많은 걸 잃었다. 매일 아침 상쾌한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있다는 것, 안심하고 아파트 입구를 드나들 수 있다는 것, 위급한 상황에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런 소소한 것들이 얼마나 우리네 삶을 활기차고 윤택하게 해 줬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할아버지가 떠나고 이웃도 덩달아 잃었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마주친 이웃과 살가운 인사도 주고받고 경비실 앞에서 오순도순 수다도 떨었는데. 이제는 한 시라도 빨리 집에 들어가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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