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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Jul 04. 2021

당신의 글이 좋은 이유

좋은 글을 고르는 기준


브런치를 시작한 첫날을 잊을 수 없다. 첫 글을 발행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알림이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할 때는 느끼지 못한 흥분이 몰려왔다. 'OOO님이 라이킷했습니다' 'OOO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등의 알림이 스마트폰 잠금화면 위로 차곡차곡 쌓여갔다. 라이킷을 누른 고마운 독자가 누구인지 일일이 들어가 보기도 하고, 맞구독을 눌러 은혜를 갚기도 했다. 이래서 다들 브런치를 하는구나.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더 멋있는 글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작가가 돼야지, 다짐했던 순간이 여전히 선명하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독자가 아니었다. 발행한 글이 쌓이며 알게 된 사실은, 본인 브런치의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읽지도 않으면서 라이킷만 누르고 가버리는 작가들이 많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그마저도 감지덕지였지만 매번 비슷한 이름들을 반복해서 보니 이 중에서 글을 끝까지 읽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발행한 지 3초 만에 라이킷이 찍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허탈했다. 그럴 때면 라이킷 수와 조회 수에서 값싼 만족을 찾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열심에 감탄하기도 했다. 도대체 언제 그 많은 글들에 라이킷을 누르는 건지. 그 정도는 해야 이 바닥에서 이름을 날릴 수 있나 보다.


물론 긴 글을 읽어주고 댓글을 남겨주는 고마운 이들도 있다. 브런치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은, 그런 이들의 과분한 관심에서 나왔다. 어떤 브런치 작가 분은 댓글을 남기는 일이 글쓴이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 했다. 나도 노력은 해봤지만 앞으로도 매번 댓글을 달 자신은 없기에, 대신 라이킷으로 진심 어린 응원을 전하는 독자가 되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라이킷을 남발하다 보면 그 무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평가 수단으로써의 기능을 회복하려면, 우선 아무 글에나 라이킷을 누르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좋은 글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 좋은 글에 대한 내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은 이렇다.


먼저 분량이 일정 수준 이상인 글을 좋아한다. 분량이 적으면 어떤 아이디어나 경험한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학보 활동을 하며 봐 온 글들을 떠올려봤을 때 글자 수가 최소 800자 이상, 보통 1200-1300자 정도면 글쓴이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전하는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 분량은 그만큼의 정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많은 정성과 고민이 담긴 글을 봐도 기분이 좋다. 긴 글을 읽지 않는 시대인만큼 뒤떨어진 고집일 수 있으나, 어차피 알맹이가 없는 글은 울림도 없다. 귀가 있는 자들은 들을 지어다. 오늘날 좋은 글을 쓰려는 자들이 응당 가져야 할 마인드다.


다음으로 나는 미괄식으로 구성한 글을 좋아한다. 요즘의 트렌드는 첫 문장부터 핵심을 적는 두괄식 글쓰기인 듯하나, 나는 하고픈 말을 마지막에 배치한 글을 선호한다. 서두에서부터 차곡차곡 근거와 사례를 쌓아 올려, 마지막에 터트리는. 그런 탄탄한 빌드업이 돋보이는 글이 좋고 나 역시 그런 스타일을 지향한다. 가령 예전에 블로그에 업로드 한 사설에서 나는 현 정부의 현실성 없는 공약을 비판하기 위해 쥘 베른의 소설을 소개하고 SF와 판타지의 차이를 정의한 뒤 이를 바탕으로 마지막에 공약에 대한 비판점을 나열했다. 글의 모든 부분을 유기적으로 잘 연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잘 해낸다면 이만큼 멋있는 글도 없다.


마지막으로 나는 반성과 성찰이 담긴 글을 좋아한다.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반성하는 글,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낸 글, 절망 속에서 자신만의 작은 희망을 발견하는 글. 그런 글들 속에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힘이 있다. 진한 여운을 남기는 글이다. 글을 쓰면서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 중 하나는 자신의 울림이 다른 사람에게 동일한 울림으로 가닿을 때다. 나 역시 틱 장애를 앓았던 어릴 때의 경험을 풀어낸 글이 비슷한 병을 앓는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위로를 주는 모습을 보며 이를 체감한 바 있다. 좋은 글은 공감을 통해 위로를 주는 글이며, 공감은 비슷한 경험에서 나온다. 살면서 반성하고 성찰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아무튼 좋은 글에 대한 나의 기준은 이렇다. 어떤가. 읽으면서 당신의 글을 떠올렸는가. 안도감이나 불안감을 느끼진 않았는가. 어떤 마음이든, 괜찮다. 나는 좋은 글에 대해 논할 자격 없는 평범한 학생이며, 다만 평가자의 위치에 올라서며 모종의 심사 권력을 얻었을 뿐이다. 하지만 뚜렷한 근거나 합의가 없는 틀일지라도 독자들은 본인의 글을 그 위에 덧대어 보게 된다. 나도 그러거든. 나 역시 다른 작가들의 기준을 들으며 일희일비하거든. 하고픈 말은 좋은 글을 심사하는 자신만의 채점표를 만들어보자는 말이었다. 오늘도 그런 글을 발견하고 라이킷을 꾹 눌렀다. 당신의 글이 좋아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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