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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Jun 25. 2021

아르바이트 구하기

일할 곳을 정하는 기준


짧은 이력은 이렇다. 처음 일을 한 건 집 주변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편의점에서였다. 스무 살이던 당시 멋도 모르고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신청했는데 다행히 마음씨 좋은 점장님은 순진한 대학생을 내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는 최악의 선택임이 밝혀지고 말았다. 3달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점장님의 속을 수도 없이 썩였다. 적립을 안 한 손님들의 적립금을 가로채다 걸렸고, 새벽에 친구들을 불러 놀다 혼났고, 몰래 노트북을 들고 와 게임을 하다가 꾸지람을 들었다. 결국 밤사이 바람에 넘어진 파라솔을 점장님이 출근할 때까지 치우지 않은 날, 나는 해고를 통보받았다. 만약 그에게 종교적인 신앙이 없었더라면 사회의 매정함을 더 일찍 맛보았으리라. 게다가 뒤끝 없는 해고가 은혜인 줄 몰랐던 나는 마지막 날 분량의 일급을 기어이 받아내고 말았다. 참으로 부끄럽고도 죄송한 이력의 시작이었다.


다음으로 일한 곳은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안쪽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수제버거 집이었다. 대학을 바꾸고 전보다는 인간다워진 뒤의 일이었다. 젊은 매니저 형들 아래서 일을 했는데, 떠나는 날 진한 아쉬움이 묻은 파송의 말을 건넨 걸 보면 일도 나름 괜찮게 한 듯하다. 이따금 외국어로 말을 건네 오는 손님과 진상 부리는 몇몇 환자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며 일에 대한 자신감은 불어갔다. 지겨운 책상 앞을 떠나 직접 몸을 굴리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여러 일터를 전전했다. 이색 데이트 카페와 국어, 수학 학원에서 일했다. 방학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했고, 꽤 쏠쏠하게 돈을 벌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터진 뒤로는 일을 구하기 어려웠다. 정신을 차리니 일을 쉰 지 일 년 하고도 반이 지나 있었다. 노동의 고됨은 금방 잊어도, 두둑한 지갑이 주는 달콤함은 쉬이 잊을 수 없는 법이다.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앱을 설치했다.


누구나 알 만한 대학, 육군병장 만기전역, 이십 대 후반의 나이. 이 같은 조건만으로도 나는 꽤나 매력적인 지원자인 듯했다. 구인구직 앱에 공개 이력서를 올리자 삼십 분에 한 번 꼴로 전화가 걸려왔다. 대부분은 레스토랑의 서빙 알바였고, 보습학원이나 영업판매직 일자리 제안도 들어왔다. 선택지가 많아지니 보다 나은 조건을 고를 수 있게 됐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점검 항목을 만들었다. 채용을 원한다는 전화를 받으면 먼저 그 매장에서 일한 아르바이트생의 후기를 살폈다. 모 브런치 카페 사장은 일한 지 4시간 된 수습직원에게 동선을 막지 말라고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모 프랜차이즈 매장은 과도하게 많은 업무를 준 뒤 빨리 일을 마치라고 채근했다고 한다. 이런 곳은 두 번 고민할 필요 없었다. 다음으로는 근무 날짜를 유심히 확인했다. 한 주에 15시간 이상 근무하면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하기에 아르바이트를 쪼갠 업주들이 많았다. 평일 오전 근무라 해놓고, 마지막에 슬쩍 주 3일 근무라 통보하는 식이었다. 인건비를 아끼고픈 마음도 이해됐으나 일자리를 구하는 이들에겐 욕심 많은 악덕 점주의 편법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수십 번의 밀고 당기기 끝에 마침내 일할 곳을 정했다. 집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한 레스토랑의 홀서빙 일이었다. 업무 강도는 비교적 센 편이었지만 런치 타임에만 반짝 일하고 나머지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점, 점심 식대를 제공해준다는 점, 점장님의 인상이 좋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일을 시작한 지 2주 정도 됐는데 현재로서는 일이 만족스럽다. 점장님과 다른 직원 분들도 일머리가 있다고 좋아하신다. 일곱 살이나 어린 다른 아르바이트생과 호흡을 맞추니 덩달아 젊어진 기분도 든다. 무엇보다 땀을 흘려 돈을 버는 일이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방학 동안만 일할 심산이었지만 여건이 된다면 좀 더 오래 일하고픈 마음도 든다. 점장님이 마지막 날 내 바지 끄덩이를 잡도록, 맡은 일을 아주 열심히 잘 해낼 생각이다. 아무튼 이번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무사히 마쳤다. 내년에 취업도 무사히 마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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