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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Jul 25. 2021

하늘을 기다리는 시간

내 글과 심리적 거리두기


글을 발행한 지 서너 시간이 지났다. 엄지를 놀려 브런치 앱을 눌렀다. 무심한 척했지만 사실 마음은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올라있었다. 라이킷이 얼마나 많이 찍혔을까, 댓글은 달렸을까, 구독자는? 일단 메뉴창 옆에 하늘색 동그라미가 보인다면 절반은 성공이었다. 뭐라도 반응이 있었다는 뜻이니까. 그렇다면 오늘은... 아뿔사, 괜히 확인했다. 아무도 내 글을 읽지 않았다. 아니, 엄밀히 말해 아무도 읽지 않은 건 아니었다. 조회수가 올랐으니까. 그런데 조회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좌우로 글을 휙휙 넘기며 지나치는 사람도 모두 집계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하늘색 동그라미다. 긴 글을 끝까지 읽었다면, 비록 졸고라 하더라도 읽은 나의 노력과 쓴 그의 노력이 가상해 반응을 해주게 된다. 물론 모든 반응을 정독의 결과로 해석할 순 없다. 3천 자가 넘어가는 글에 5초 만에 라이킷을 누르는 사람, 구독자가 많아 이런 누추한 브런치에 1분 이상 머무를 것 같지 않은 사람, 작가 소개란에 본인의 신간을 떡하니 박아둔 사람 등을 제외하면 정녕 독자라 할 만한 분은 네댓 명밖에 없었다. 이러려고 네이버 블로그에서 브런치로 갈아탔나, 자괴감 들고 괴로웠다.


하늘(브런치 알림)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도 괴롭다. 갈수록 마음이 성급해지며, 성의 없이 라이킷을 누르는 뻔한 이름이라도 보고파진다. 눈 딱 감고 다른 SNS에 홍보를 해볼까, 고민도 된다. 몇 날 며칠 공들인 글이 읽히지 않고 수장당할 때 작가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추락한다. 내 글에 대한 내 평가도 덩달아 박해지며 남의 귀한 시간을 빼앗는 쓰레기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니 타인의 평가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매우 비합리적인 태도다. 길어야 수 분 동안 글을 읽은 독자의 평가도 객관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자신의 글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 퇴고를 하며 글을 오래, 자주 보는 탓에 글과 심리적 거리두기를 못한다. 분명 이 만하면 괜찮다는 생각으로 발행했는데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수십 번 고친 글도 돌아보면 허점 투성이고, 홧김에 아예 지워버린 글도 적지 않다. 반대로 마음에 안 들어 언젠간 지워야지, 다짐했던 글이 지나고 보니 꽤나 명문(...)인 경우도 간혹 존재했다. 그러나 인간 본성은 늘 좋고 나쁨을 객관화할 수 있는 수치를 원한다. 이를테면 조회수 대비 라이킷 수나 누군가의 적은 구독자 수에 내가 끼는지의 여부, 등.


알랭 드 보통은 그의 명저 『불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사람마다 자신의 정체성의 뼈대가 되는 몇 가지 기둥을 안고 살아간다. 그 기둥이 흔들릴 때 우리는 불안에 휩싸이며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다. 가령 기타를 못 치는 사람에게 코타로 오시오의 [황혼]을 연주하지 못한다고 암만 깝죽대 봐야 아무런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 반면 피아노를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연주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큰 고민거리가 된다. 글쓰기는 내 정체성을 떠받치는 몇 안 되는 기둥 중 하나다. 세상에 내보인 글에 대한 평가가 시원치 않다고 느낄 땐내 존재가치가 떨어지는 듯한 불안에 휩싸이며,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을 땐 앞으로 어떤 역경이든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오른다. 문제는 이 같은 타인-의존적인 태도가 퍼포먼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글쓰기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고, 솔직함이라는 무기를 잃게 된다.


내게 필요한 주문은 발표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으레 필요로 하는 '남들은 너한테 그다지 관심 없어'다. 나부터 긴 글은 잘 읽지 않는다. 그러면서 문단마다 열 줄이 넘어가는 글을 다른 사람들이 읽고 평가해주길 바라는 건 염치없는 일이다. 물론 그렇게 해주지도 않는다. 브런치를 시작할 때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유명 작가를 목표로 하기보단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나를 좀 더 솔직하게 드러내는 창구로 삼자고. 자꾸만 양 옆으로 돌아가는 모가지를 꺾어 버리고 다시 내면을 진득하게 바라보자고. 그래서 내가 자신에게 내리는 처방은 '하루에 한 번만 브런치 알림 확인하기'다. 의식적으로라도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둔해질 필요가 있다. 아예 안 보는 건 안 된다. 매번 글 읽어주고 반응해주는 고마운 분들 때문에. 아무튼 주기적으로 이런 안절부절한 글을 올리는 점은 용서 바란다. 고기를 오래 구우면 불판을 갈아야 하듯, 작가에게도 펜 위에 쌓인 무게를 털어내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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