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우주 Aug 05. 2021

흩날리는 말 주워 담기

팟캐스트를 시작하다


말보다는 글을 선호하는 편이다. 글이 좋아서라기보단, 말이 어려워서 그렇다. 말하기란 마치 실시간 FPS 게임 같아서 고도의 순발력과 정교함, 피아식별 능력이 요구된다. 나무늘보처럼 느리게 말하고, 느리게 생각하는 나(닮았다)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또한 상대방이 조금만 얼굴을 찌푸려도 멘탈에 바사삭 금이 가는 내게 말하기는 분명 매력이 떨어지는 소통 방식이었다. 반대로 글쓰기는 집 꾸미기 게임과 같아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볼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초기화시킬 수 있다. 창작 과정은 힘들지만 어쨌든 결과물로 승부를 보기에 좀 더 해볼 만하다. 나 같은 사람들이 자꾸만 입을 다물고 펜을 집어 들게 되는 이유다.


늘 말하는 자리를 피해왔던 내가, 얼마 전 뜬금없이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오랫동안 팟캐스트와 관련된 일을 해온 친구의 권유가 발단이었다. 진심 반, 장난 반 충동적으로 시작했지만, 그렇게 보이긴 싫어 나름의 이유를 떠올렸다. 일차적인 이유는 채널을 다양화해서 더 많은 사람에게 나를 알리고픈 마음이었다. 지난해 브런치로 넘어왔지만, 공들인 원고가 순식간에 묻히긴 매한가지였다. 누구나 작가를 자처하는, 퍼스널 브랜딩의 시대 속에선 나를 알리는 창구를 다양하게 갖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글쓰기를 하는 마음과 같았다. 만족(누군가는 자아실현이라 부르는)을 위해서. 브런치를 하며 무언가를 쌓아가는 기쁨을 알았고, 그러한 감정이 한 사람의 정체성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서였다.


우선 팟캐스트의 제목을 정하고 프롤로그 대본을 만들었다. 며칠 뒤 홍대 인근 녹음실에서 대망의 1화를 녹음했다.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자신했지만 막상 닥치니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했다. 먼저 녹음 당일 날 대본을 날렸다. 대본대로 하니 너무 어색했기 때문이었다. 팟캐스트는 말의 영역인데, 나는 여전히 글이라는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세계에 머무르려 했다. 하지만 방송의 묘미는 다른 곳에 있었다. 말하자면 즉흥적으로 자아내는 말들 속에서 미처 감추지 못한 솔직함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전문 방송인이 아닌 이상 대본 읽기는 티가 나고 어색할 수밖에 없다. 방송의 비읍자도 모르는 나조차도 그런 작위적인 방송은 듣기 싫을 듯했다.


대본을 치우자 다시 망망대해에 던져진 기분, 눈 가리고 외줄 타는 기분이었다. 나중에 편집을 하면 되니 긴장하지 않아도 좋다는 친구의 조언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가자 머릿속에 준비해둔 단어들이 한순간에 공중에 흩뿌려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침묵이 길어지지 않게 이리저리 흩날리는 말을 부지런히 주워 담는 일뿐이었다. 정신없이 말을 하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마음 같아선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었다. 이제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았으니 더 잘할 수 있다고. 하지만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듣는 맛이 있고, 편집하면 몰라보게 나아진다는 말을 듣고 녹음을 그대로 마쳤다.


망했다는 일념에, 다음 화에 대한 의욕은 사라진 상태에서 편집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그런데 이게 웬걸. 편집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누가 엎질러진 물을 도로 담을 수 없다고 했던가. 전문 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문장과 단어는 물론, 음절까지도 잘라내고 붙이고를 반복할 수 있었다. 가령 내게는 다음 할 말을 고를 때 '음...'하고 추임새를 넣는 버릇이 있는데, 간단한 조작을 통해 이를 깔끔하게 없애버릴 수 있었다.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나조차도 나중에 들어보면 어디가 편집된 건지 모를 정도였다. 또한 '노력을 하도록 하겠습니다'를 '노력하겠습니다'로 축약할 수도 있었다. 글을 퇴고할 때처럼 문장 하나하나를 다듬을 수 있었다. 물론 말하지 않은 단어를 추가할 순 없겠지만, 이 또한 모르는 일이다.


팟캐스트는 말과 글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물론 편집자는 알지만) 말하기의 매력과 정제 과정을 통해 군더더기 없이 내용을 전달하는 글쓰기의 장점을 두루 갖췄다. 친구의 조언대로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 마음에 안 들면 이 세상에서 아예 지워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편하게 말하는 습관을 들이고 자신감을 붙이면, 앞으로 할 말 못 할 일은 없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됐다. 꼭 유명해지지 않더라도 괜찮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나 내게 좋은 영향을 줄 걸 알기에 천천히 묵직하게 나아가려 한다. 끝으로, 만년 게으름뱅이를 다그치느라 수고한 친구에게 특별한 고마움을 전한다. 홍보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할 생각이다. 다만 기대는 마시라. 독서에 관한 흔한 팟캐스트 중 하나이니.

작가의 이전글 진상을 마주하는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