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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Jul 28. 2021

진상을 마주하는 순간

종업원은 손님을 비추는 거울이다


매일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적게는 쉰 명에서 많게는 이백 명까지.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행동거지를 살피고,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를 본다. 아주 작은 정보의 단편들이라도, 모이면 한 사람에 대해 꽤나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되는 시간이다.


얼마 전 인기 레스토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 일의 장점 중 하나는 수많은 인간 군상을 마주하며 이들을 유형별로 분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록 마주하는 시간이 얼마 안 되고, 따라서 혼자만의 섣부른 판단이 될 공산이 크지만 괜찮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이 같은 유형화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를 줄여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선입견이나 편견을 버리라는 진부한 말도 통하지 않는다. 애초에 인간은 자신을 향한 위협을 먼저 알아차리도록 진화하지 않았는가. 땀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체력이 곧 바닥날 상황에서, 저 사람이 나를 헤치려는 맹수인지 지나가는 초식 동물인지 알아차리는 건 예의가 아닌 생존의 문제라 할 수 있겠다.


다행히 요즘엔 종업원의 뺨을 치거나 영화 속 고질라처럼 괴성을 지르는 진상 손님이 많이 줄었다. 네이버와 유튜브의 약진 덕분이다. 갑질을 하다 잘못 걸리면 순식간에 신상이 털리고 대중의 뭇매를 맞게 되니까. 인터넷의 순기능 중 하나라 하겠다. 그러나 쉴 틈 없이 찾아오는 '은근 진상'과 비밀리에 벌어지는 자잘한 갑질을 모두 걸러낼 순 없는 법. 종업원은 제 감정과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각자만의 생존법을 고안해야 한다. 이 시대에 '무조건 웃는다'라는 행동강령은 더 이상 능사가 아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가장 원시적인 보복 법칙으로 한 사람의 인격을 걸레짝 취급하는 이들에 맞서야 한다. 만국의 알바생이여단결하라!


내가 일하는 곳은 외관만 고급진 중저가형 레스토랑이다. 얼핏 파인 다이닝(고급 레스토랑)처럼 보이지만 이따금 어린 학생들이 몰려올 정도로 비싸지 않은, 가성비 좋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돈은 아끼면서 분위기를 내보려는 손님들이 많이 온다. 여기까진 상관없다. 싸고 좋은 걸 찾는 건 인간의 본성이니 말이다. 문제는 일부 손님들이 돈도 얼마 안 내면서 고급 대우를 받으려 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손님은 입구부터 퉁명스럽고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분노한다. 그리고 그 분노는 보통 시급 8천 원 따리 아르바이트 직원들을 향한다. 겉으론 기품을 지켜도 몸에 직원을 하대하는 태도가 배어있는 손님도 비슷한 부류에 속한다.


어떤 손님들은 밥값을 자기가 내겠다며 나를 사이에 두고 싸웠다. 내 손에는 이 손님의 카드가 쥐어졌다 저 손님의 카드가 쥐어졌다를 반복한다. 어쩔 줄 몰라하는 몸짓(이렇게 "어머 언니 왜 이래, 내가 낼게" 사양할 틈을 줘야 한다. 그래야 "아니야, 넌 커피 사"라는 답이 돌아오며 사태가 빠르게 일단락된다)으로 둘 간의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길 기다리고 있자면, 마치 카드리더기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인간이 아닌. 주문 내용을 확인할 때 듣는 둥 마는 둥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손님(이래 놓고 잘못 나왔다고 우기면 다시 만들어줘야 했다. 뭐, 잘못 나온 음식은 우리가 먹지만) 반말 찍찍 내뱉고 제 하인 부르듯 손가락 까딱이는 손님, 별 사소한 걸 따져 물으며 짜증 내는 손님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평생 마음씨가 좋다는 말을 들어온 내가, 직접 그 말을 부정하게 되기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여러 번 진상에게 데이고 나면, 즉 친절이 꼭 친절로 돌아오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자연스레 이들의 횡포에 대처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처음엔 누구에게나 친절하지만, 진상을 마주하는 순간엔 어김없이 준비해둔 방어 태세를 갖추게 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종업원이 손님을 비추는 거울인 이유다. 따라서 아닌 경우도 많겠지만, 친절하지 않은 종업원이 있다면 얼마 간은 손님에게도 책임이 있다. 웃는 얼굴에 먼저 침 뱉을 우리가 아니기에, 더더욱 그렇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사람 마음이 다 그런 걸. 더군다나 최저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 직원에게는 이런 마음을 숨길 이유가 없다. 또한 손님이 지불하는 비용 속에 남의 인격을 짓밟을 권리도 포함돼 있지 않고. 그러므로, 모든 일에 너희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여라(마 7:12).




다른 직원들과 함께, 자신들이 일하는 레스토랑의 평점을 읽는 일만큼 즐거운 일은 드물다. 수백 개에 달하는 후기 중엔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5점을 준 손님이 대부분이었고, 이따끔 사소한 문제로 4점을 준 손님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 간혹 0.5점짜리 테러를 한 이들이 존재했다. 모두 종업원의 태도를 문제 삼은 후기였다. 함께 일하는 분들의 착한 심성을 떠올렸을 때, 다분히 음모성이 짙은 글이었다. 과연 종업원의 문제였을까.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진상한테 잘못 걸려 고생한 직원을 위로했다. 말은 안 해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운 나쁘게 0.5점짜리 손님을 만났을 뿐이라는 걸. 귀족 행세를 하려는 이들에게 딱 낸 돈 만큼의 대우만 해줬을 뿐이라는 걸. 어느덧 매장 오픈 시간이 됐다. 주섬주섬 앞치마를 두르고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장 상냥한 얼굴과 우렁찬 목소리로 아침 손님을 맞았다. 오늘도 그 누구든 내 감정을 착취하게 두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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