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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Oct 03. 2021

언론권력과 학보사

편집국장 회고록


학보사는 언론과 동아리 사이의 애매한 위치를 점한다.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활동은 기성 언론과 다르지 않지만, 위상은 그보다 낮고 권한도 적다. 이 같은 괴리는 나이 많은 취재원을 대할 때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어른들은 학보사 기자를 기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무시와 하대, 뒤따르는 무력감을 참는 건 학보사 기자가 응당 갖춰야 할 덕목이 된다. 나 역시 지난해부터 그런 종류의 맷집을 길러왔다.


편집국장이 됐다. 어른들을 독대해야 하는 순간이 늘었다. 학보사의 대표로서 학교 부처 관계자들을 만나고 멘트를 따내야 했다. 물론 학보의 존재 의의, 학생들의 권익을 대변한다는 대의를 이해해주고 협조적으로 나오는 이들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우리의 요청에 무시로 일관했다. 그런 태도는 뭇 학생기자들의 자신감을 앗아갔고, 취재를 위축시켰다. 어쩌면 대학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알량한 기득권을 지키는 노하우 인지도 몰랐다. 어차피 일 년만 지나면 자기를 귀찮게 하는 학생들은 떠날 테고, 물정 모르는 애송이들이 지휘봉을 잡을 테니 말이다. 나 역시 이 단발성의 성질을 알게 된 뒤로는 부러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 앞에서 목에 핏대를 세우는 건 쉽지 않았다. 늘 '좋으면 좋은 거지'라며 갈등을 피해오던 내게는 더욱 그랬다. 연기의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만만함은 금방 들통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협조하는 티라도 내던 사람들이, 모종의 탐색전이 끝나자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꾹 닫고 돌아서 버렸다. 얄미워도 어쩔 수 없었다. 압박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학보사는 독자층이 얇아 학내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이 적다. 따라서 흔히 말하는 '언론권력'에 기댈 수 없다. 취재를 진행하고 멘트를 받기 위해서는 잔뜩 숙이고 빌어야 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만들어지는 이유다. 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했다. 힘을 빼고 저자세로 나가봤다.


미숙한 질문인 줄 아나 학생기자라는 점을 고려하시어 너그러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른들에게 메일을 보낼 때 끄트머리에 적는 문장이다. 메일 앞부분에는 메일을 보내게 된 경위를 적는데, 대략적으로 당신이 이 분야에 가장 밝은 전문가라서 연락했다는 메시지가 들어간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떠받드는 화법이라 말할 수 있다. 어른들을 대할 때 중요한 건 둘 간의 '위상차'를 보여줌으로써 돕고픈 마음이 들게 만드는 일이다. 돈도 줄 수 없고, 언론권력도 없으니 연민에라도 기대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한때 빛나는 시절을 보냈지만 지금은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주고 밀려난 어른들은 늘 인정에 목말라 있다. 자존감을 버리고, 연민과 인정 욕구를 잘 활용하면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실제 취재 방식을 바꾸니 타율이 늘었다.


언론인이 취재원을 대할 때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다양하다. 극단적으로 모 메이저 기자처럼 협박을 해서 목적을 이룰 수도 있고, 학보사 기자처럼 싹싹 빌어서 이룰 수도 있다. 언론사의 규모가 클수록 선택지는 다양해진다. 메이저 언론사는 '무기'가 다양한 만큼 취재 성공률이 높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양질의 기사를 낼 확률이 높다. 이는 다시 언론사의 규모를 키우는데 기여해 선순환을 만들어내게 된다. 강력한 무기와 위상을 바탕으로 한 언론권력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 역시 기자를 꿈꾸는 이유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으로 바꾸려 한다는 지루한 사명을 내걸었지만, 그 속에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벌벌 떨게 만드는 권력을 향한 선망과 집착이 존재했다. 학생이라고 무시하던 어른들을 향한 복수심에서 비롯된.


규모도 작고, 종교적인 가치를 내세운 우리 대학에서도 그토록 부정부패와 비리가 만연한데, 사회에서는 얼마나 더하겠는가. 안 그래도 화천대유 사건이 뉴스 헤드라인을 독식하는 중이다. 관련자들은 딱 자기 필요한 말만 한 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며 자리를 피한다. 어디 취재원에게 무시당한다 뿐인가. 정치권에서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겠다고 협박하고, 대중은 일부의 일탈을 빌미로 기자라는 집단을 싸잡아 폄하한다. 학보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척박한 환경이지만 이들에게는 외부의 방해를 뚫고 진실을 밝혀낼 힘이 있다. 공론화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여론을 응집하는 힘이다. 이 힘이 행동하는 대중을 만나 불매 등 실질적인 타격으로 이어진다. 이 모든 인과가 바로 '영향력'이며, 언론권력의 원천이다.


다시 돌아와서, 학보사에는 그러한 영향력이 없다. 단순히 신문의 열독률이 낮아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불만을 품은 학생들이 떠나더라도 입학 수요는 늘 공급을 상회한다. 총장은 학생들이 선출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취업을 더 중요시한다. 즉 여론이 어떠한 타격도 입히지 못하므로 학보사를 비롯한 학내 언론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언론권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취재 역시 무시해도 아무 지장 없는 공허한 요청이 되고 만다.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콘텐츠의 질을 떨어진다. 이는 구독률 하락으로 이어지고 다시 영향력을 낮추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굳이 학보사를 안 해봐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전말이다. 다만 당분간은 이렇게 굽신거리며 팔짱 낀 어른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서러워 브런치에 읍소했다. 두서없는 고민이지만 언젠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닿아 보다 발전적인 논의가 이뤄지리라 기대한다. 오늘도 학생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모든 학보사 기자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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