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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Oct 03. 2021

능력의 한계 인정하기

'나는 쓰레기다'라는 말에 담긴 겸손의 의미


좀처럼 잊히지 않는 수학 강사가 있다. 재수종합학원에서 만난 강사였는데, 그는 첫 수업 때 학생들더러 자기를 따라하라고 말하고는 "나는 쓰레기다!"를 외쳤다. 목소리가 작아 마음에 안 든다며 몇 번이고 같은 문장을 외치게 했다. 한바탕 이상한 의식을 치르고 나자, 그는 차분히 이를 시킨 이유를 설명했다.


여러분 중에는 반수를 하는 사람도 있고, 좋은 성적을 받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도전장을 던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밖에서 어떤 사람이든, 어떤 찬란한 과거를 가지고 있든 여기서는 그걸 내려놔야 합니다. 여기는 재수종합학원이고 여러분은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일 뿐입니다. 그걸 인정해야 합니다.


마지막 부분이 이상하긴 해도, 요지는 명확하게 파악된다. 그가 말하려고 한 건 겸손이다. 자신의 상황을 낙관하지 말고, 위기의식을 가지고 공부하라는 제언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굳이 쓰레기 비유한 점은 기분 나쁘지만 수강생들의 마음속에 제대로 각인시키기 위한 일종의 충격요법이었을 테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정확한 인과는 알 수 없지만)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래도 인서울 대학에 휴학을 걸어두고 온 난데'라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정신적 배수진을 치게 된 배경이 됐다.


우스꽝스러운 구호를 함께 외쳤던 동기(?) 중 몇몇은 원하는 신분 상승을 이뤄냈고, 대다수는 쓰레기로 남았다. 다행히 나는 전자에 속했으나, 수학 강사의 귀중한 가르침을 너무 빨리 잊은 탓에 고통스러운 대학 생활을 보내게 됐다. 대학 간판과 그에 따르는 인정에 취해 이곳저곳에 기웃거리며 전공 공부를 소홀히 했다. 피 말리는 학점 경쟁과 취업 준비, 결혼과 육아로 이어지는 기나긴 과정을 고려했을 때 나는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쓰레기'일뿐인데. 교만의 대가는 낮은 학점과 끝없는 불안이었다.


특히 졸업 학년이 되고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 겸손에 대한 묵상을 많이 하게 된다. 겸손의 정의는 무엇인가. 사전적인 정의는 남을 존중하고 나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인데 다소 모호하다. 자기를 내세우지만 않으면 겸손한 건가. 그렇지 않은 사례를 우리는 많이 봐 왔다. 나는 겸손을 자신이   없음을 인정하는 태도라 정의하겠다. 앞서 언급한 수학 강사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남을 존중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건 부차적인 문제다. 혼자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면 자연스레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나면, 즉 겸손하면 우리는 두 가지를 하게 된다. 우선 부족한 능력을 만회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하게 된다. 위 명제를 대우(對偶)시키면 교만한 사람의 특징을 알 수 있다. 노력하지 않고 게으른 사람,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사람. 전공 공부를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는 거듭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아보라고 제안했다. 그때마다 나는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물리학 전공생이 물리 과외를 받는 게 말이 되냐면서. 물론 노력도 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교만한 마음을 놓지 못했고, 이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를 일이 남았다. 어서 '잠재력'이나 '한탕주의' 따위의 환상을 버리지 않으면 말로는 더욱 비참해질 테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진찰하고, 당장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해 방황을 멈춰야 한다. 하지만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는 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자존심을 버려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요즘 꿈을 작가라 말하는 건 다 그러한 이유에서다. 작가라는 직업은 실체가 모호하기에, 마치 무지개의 끝을 좇는 일처럼 남은 거리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게 자존심을 지키지만 현실을 타개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미봉책일 뿐이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능력이 안 되니 노력해야만 한다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나는 쓰레기다! -강남대성기숙학원 이현칠T


pixabay @iha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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