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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Sep 02. 2021

공손한 시민의 민원

사회 전반의 불편을 줄여나가는 일


학보사 취재 일과 관련해 급하게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부리나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나와 서울로 가는 광역버스에 몸을 실었다. 네이버 지도를 확인해보니 도착 예정 시간은 약속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보통 소요시간은 실제보다 부풀려서 집계되기에, 딴짓만 하지 않으면 늦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환승할 버스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정류장 전광판에는 곧 버스가 도착한다고 나왔다가, 잠시 뒤 다음 버스의 도착 시간이 나타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다가 끝내 '우회'라는 단어가 표시됐다. 이 정류장에는 서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이미 버스를 두 대나 보내고, 이십 분의 시간을 허비한 터라 짜증이 솟구쳤다. 해당 버스를 운영하는 상운 회사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여기 우리은행 종로지점에서 173번 버스를 기다리는 중인데요,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안 와요..."

"원래 공휴일이나 주말에는 청계천 차 없는 거리 때문에 버스가 그쪽으로 안 갑니다."


전화를 받은 중년 남성은 당연하다는 듯, 이미 수없이 들어본 질문이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데 괜히 물어봤나,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이게 따로 안내된 건 없나요?"

"정류장에는 안내가 돼 있지 않아요. 이게 시에서 안내를 해야 하는데, 잘 안 되네요."


마지막으로 담당자에게 민원을 넣으려면 어디로 전화를 해야 하는지 물었고, 그는 120번(다산콜센터)으로 문의하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늦었기에 일단 1호선 종각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잰걸음으로 걸으며 다이얼을 눌렀다. 교통 관련 민원을 넣는 시민들이 많아, 5분 정도 대기를 해야 한다는 안내 문구가 나왔다. 정확히 10분 뒤 담당자가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도 불편함을 겪은 경위와 바라는 점을 종알종알 설명했다. 사람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목소리를 가진 담당자는 민원을 관련 부서에 올리겠다고 답했다. 나만 이런 불편을 겪었는지 궁금해, 비슷한 민원이 없었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런 민원은 많지 않으며 아마도 오래 그 구간을 왕래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아서인듯하다, 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세상엔 나만 모르는 사실도 존재했다.


민원은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민원이 접수되고, 이관되고, 처리되는 과정이 실시간 문자로 공지됐다. 일개 시민에게 도시(특히 서울만큼 거대한 도시)의 행정은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일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천만이 넘는 인구를 품었음에도 반 시간 이내로 불편사항을 신고할 수 있도록 체계가 마련돼 있었다. 접수된 민원이 최종적으로 처리되기까지의 시간 또한 짧았다. 서울시의 놀라운 행정력에 감탄하는 사이 민원 처리 내역이 문자로 통보됐다. 시스템 오류로 인해 해당 버스가 리스트에서 누락됐으며, 현재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점을 확인했다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나만의 무지에서 비롯된 불편은 아니었다. 대수롭지 않은, 일시적인 오류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행동했다는 사실에 속이 후련했다.


난생처음 민원을 넣고 다른 누군가의 불편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애로를 없앴다. 그러면서 느낀 점이 있다. 민원은 시민의 당연한 권리다. 불편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민원을 접수하고 해결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한번 불편하고 마는 일에 대해서는 민원을 내는데 인색해진다. 귀찮기 때문이다. 마치 군대가 변하지 않는 이유와 비슷하다. 복무할 때는 누구나 부조리에 분노하고 훗날 민간인이 되어 뜯어고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전역만 하면 곧바로 '나 몰라라'한다. 너희도 당해봐라, 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은 이미 극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주말과 공휴일마다 173번 버스 노선이 바뀐다는 사실을 안 이상, 굳이 30분이나 더 들여 민원을 제기할 이유는 없다. 그런 건 늘 글감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이나 할 법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원을 제기하는 일은 중요하다. 민원은 직접적으로 불편을 해소하는 역할도 하지만, 간접적으로 사회 전반의 불편을 줄이는 일에도 기여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나라의 교통체계가 엉망이었다고 가정하자. 버스나 지하철은 늦기 일쑤고 (과장해서) 오늘 안에 온다는 보장도 없다. 이런 곳에서 버스의 공휴일 우회를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렇게 큰 불편으로 다가왔을까. 그럼 그렇지,라고 말하며 당연하게 넘기지는 않았을까. 불편함은 불편함이 많지 않은 사회에서 더 눈에 띄기 마련이며, 그 덕에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될 수 있다. 민원을 통해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기대 수준을 끌어올리면 이로 인한 혜택이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오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민원은 모든 시민의 권리이지만, 참된 시민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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