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가 돌아왔다
빈 종이를 응시한다. 빈 종이도 나를 응시한다. 빈 종이가 말한다. "이번에도 공부 하나도 안 했구나? 맨날 달라지겠다 말만 하고. 그럴 줄 알았어. 이제는 기대도 안 해. 쓸데없이 힘 빼지 말고 포기해. 너도 알잖아. 너한테는 그럴 능력이 없다는 걸. 한두 번도 아니고.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나는 대꾸하지 않고 빈 종이를 바라본다. 하나도 틀린 말이 없다. 빈 종이가 말을 잇는다. "속도보다는 방향이라고? 지랄하지 마. 그건 방향만 제대로 정해지면 힘차게 달릴 수 있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야. 너처럼 기름이 다 떨어진 차의 핸들만 휘휘 돌려대는 사람이 아니라. 당장 내려서 차를 밀어도 모자랄 판에."
일 년에 네 번, 대학생들에게 고달픈 시간이 찾아온다. 이 시간은, 이미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대학 시험기간이다.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다. 시험기간에 안 힘든 사람 몇이나 된다고. 밀린 공부 벼락치기하랴 밀린 레포트 제출하랴 이 정신없는 시기를 고통 없이 넘기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건 보다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고통이다. 전공포기자들의 고통, 곧 잣대 없는 가치증명의 무대 위로 던져진 이들의 고통이다. 여기서 잣대가 없다는 건 보편적인 학업이수과정으로부터 이탈했기에 더는 자신을 평가할 주체가 없다는 뜻이며 가치증명의 무대로 던져졌다는 건 그럼에도 먹고살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걸 뜻한다.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가 된 듯한 기분을 견뎌내면서 말이다.
물리학을 전공하고 있다. 이제 졸업 학년이 됐으니 물리학의 ABC 정도는 말할 줄 알아야 하는데 나의 단편적인 지식은 교양과학 수준에 그친다. 고등학교 때나 보던 '물포자'가 물리학과 안에 있다는 말이다. 다행인 건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점이다. 나에게는 든든한 '동지'들이 있다. 수업시간 내내 카메라를 꺼두고, 딴짓하는 동지, 매번 과제미제출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동지, 시험시간에 눈치를 살살 보다가 용기 있는 학생(그 역시 우리의 동지일 공산이 크다)이 먼저 답안을 제출하고 나가면 부리나케 뒤따라 나가는 동지. 우리들은 서로를 곧바로 알아본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뒤 안심한다. 너도 아직 이곳을 벗어나지 못했구나!
농담처럼 말했지만, 전공포기자들의 대학 생활은 드러나는 모습보다 더욱 고통스럽다. 우리는 늘 3가지 감정에 시달린다. 첫째, 열등감이다.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괜찮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 앉은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판서에 오류가 있다고 말한다. 그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 누군가는 잘만 따라가는 과정을 나는 못 따라간다는 사실에서 열등감을 느낀다. 둘째, 죄책감이다. 한 학기 등록금은 400만 원이 넘는다. 하지만 수업도 안 듣고 과제도 안 하니 얻어가는 게 하나도 없다. 누적된 죄책감은 학기말에 터지고 만다. 마지막은 불안감이다. 나중에 취업을 할 때 낮은 학점에 대한 마땅한 변명이 있어야 하는데, 따로 준비하는 일이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될 때 불안해진다. 준비하는 일이 없다면 불안감은 배가 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대졸자의 전공-노동시장 미스매치를 집계한 결과, 대졸자의 절반이 전공과 무관한 분야로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전에 본 다른 자료에서는 미스매치 비율을 학과별로 제시했는데, 물리학 전공자의 70%가 전공과 무관한 직군에서 일하고 있었다. 통계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힘들어하는구나. 그들도 포기했지만, 지금은 잘만 먹고 사는구나. 나도 졸업만 하고 다른 일 하면 되지! 그렇게 일탈을 정당화하며 한 학기, 두 학기 버텼다. 하지만 학년이 쌓일수록 한숨은 짙어져만 갔다. 내가 간과한 건, 그 나이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 해내는, 그런 작은 성취들로부터 오는 안정감이 얼마나 중요한지였다. 제 전공 하나 못해낼 때 드는 우울감이 얼마나 큰 지였다.
독일 사회학에 내적 망명(Innere Emigration)이라는 단어가 있다. 내적 망명은 청년들의 발달 경로를 사회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단어로, 주어진 길을 걸으려는 의지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려는 능력도 없는 청년의 발달 과정을 설명한다. 전공도 포기하고, 다른 분야로도 마땅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이들은 모두 내적 망명자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내적 망명자들은 정신적으로 피폐한 일상을 보낸다. 무기력, 우울증, 번아웃 등 다른 딱지를 붙이지만 본질은 모두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망명과 불투명한 미래, 그로 인한 절망감. 결국에는 이 고통을 끝내기 위해 몸부림치게 된다. 내적 망명을 끝내는 방법은 세 가지다. 앞사람의 뒤통수만 바라보고 부지런히 따라가야만 성공할 수 있는 이 사회를 바꾸거나,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거나,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정면돌파를 하거나.
내가 이십 대에 그린 궤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십 대 초반에는 내가 이룰 수 없는 일을 이룬 사람들을, 더 중요한 무언가를 깨닫지 못한 우매한 사람들로 폄하하며 만족을 얻었다. 그래 열심히 살아라, 그러다 나중에 머리 훨훨 벗겨진 배불뚝이 중년이 되어서 후회하여라, 진정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못했노라고. 이십 대 중반에는 청년을 지원하지 않는, 도리어 그 앞을 가로막는 기성세대를 향한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다. 당신들이 만든 세상을 보라고. 천편일률적인, 이 긴 컨베이어 벨트 위에 던져진 우리 좀 봐달라고. 다른 꿈을 꾸어봤지만 번번이 '어떻게 먹고 살 건데?'라는 질문 앞에 무너져 내렸다. 내적 망명은 계속됐고, 어느새 이십 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징징대 봐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안다. 철없는 방황을 마치고 전공책의 먼지를 털었다. 보아라, 탕자가 돌아왔도다.
마지막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계획이 수틀리며 정체기를 맞았다. 덤으로 배수진을 치는 일에도 얼마나 큰 용기와 끈기가 필요한지 배웠다. 내년 봄이면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학기를 맞는다. 어김없이 시험기간이 찾아올 테고, 빈 종이와 독대하는 순간이 올 테다. 이대로라면 또 다시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가지게 될 테고. '아직 늦지 않았다'는 주문도 유효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젠 정말 달라져야 한다. 질문을 멈추고 답을 내리자. 발을 묶고 손을 움직이자. 망상을 버리고 현실로 돌아오자. 결과를 선망하지 말고 과정을 견뎌내자. 지긋지긋한 망명을 끝내자. 어른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