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다
"솔직히 너랑 다니기 좀 부끄러웠음..."
몸무게가 90kg에 육박하던 시절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그러니까 새내기 대학생 티를 막 벗을 때 즈음이었다. 원래도 체구는 작지 않았고 통통한 편이었으나 그 시절에 비할 바가 못됐다. 매일 저녁 야식을 꼬박꼬박 먹은 게 화근이었다. 집 주변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백종원 명의의 음식점(카레왕, 백's 비빔밥, 미정국수, 역전우동 등등)들이 나를 반겼는데, 도무지 그들의 유혹을 뿌리칠 재간이 없었다. 요리하는 아주머니들과 상투적이지 않은 인사도 나누게 됐을 무렵, 몸은 주변에서도 우려할 정도로 불어나 있었다. 내려다보지 않아도 턱이 두 겹 접혔다. 뱃살에 가려 발가락을 볼 수 없었다. 후일담이지만 내가 친하다 여겼던 친구들 중에서 한둘이 당시에는 부끄럽다며 나를 피했단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비참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일 년간의 반수를 마쳤을 때, 몸무게는 무려 15kg이나 줄어 있었다. 따로 운동을 한 적도 없고, 평소보다 음식을 더 적게 먹지도 않았다. 그냥, 알아서 빠졌다. 일 년 내내 제대로 된 변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추측하기로는,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음식을 흡수, 저장하는 계통에 이상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이름하여 '공부 다이어트'. 물론 살만 빠진다면 몇 번이고 다시 하겠으나 머리도 같이 빠지기에 득보다는 실이 많다. 두 번 이상 하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군대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훈련하며 살을 더 쳐냈고, 60kg 후반의 무게로 전역했다. 군데군데 근육도 붙어 더욱 보기 좋은 몸매가 됐다. 그렇게 유지만 잘한다면 앞으로 두 번 다시 다이어트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될 법했다. 유지만 잘했다면.
본격적으로 금연을 시작하며 식욕이 폭발했다. 생각보다 인간은 입이 심심한 걸 참지 못한다. 흩어지는 정신을 붙잡고 일에 집중하려면 중간중간 뭐라도 입에 넣어줘야 한다. 그게 니코틴이든 음식이든. 간식을 영어로 'Refreshments'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식탐이 오르며 평소엔 거들떠도 안 보면 과자에 손을 댔다. 야식을 먹는 횟수도 늘었다. 설상가상으로 다리 부상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며 운동도 벌써 반년 넘게 쉰 상태다(물론 핑계가 맞다). 여름 방학부터 불어나기 시작한 몸무게는 하늘을 모르고 솟았다. 체중계에 올라설 때마다 몸무게는 1-2kg 정도씩 불어 있었다. 60kg 중반이었던 몸무게가 어느새 80kg이 됐다. 여름에 찍어둔 사진이 반년 넘게 카카오톡 프로필 화면에 걸려 있었다. 3년 만에 돌아온 위기.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현대인의 다이어트는 비슷한 흥망 곡선을 그린다. 열심히 플랜을 짜고, 많게는 일주일 정도 잘 지키다가, 치팅데이(다이어트 중 부족한 탄수화물을 보충하기 위해 1-2주에 한번 원하는 음식을 많이 먹는 날)를 보내고 장렬히 전사한다. 나도 다짐은 여러 번 해봤지만, 한 달 넘게 이어진 적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치팅데이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가족, 친구, 연인)과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관성을 부수는 일이 문제였다. 전문가들은 음식을 먹는 일이 인간의 행동들 중 가장 무의식적인 행동이라고 말한다. 가령 엄마는 늘 해오던 대로 음식을 만들고, 친구들도 늘 해오던 대로 음식을 주문한다. 따라서 다이어트에 성공하려면 주변의 무의식적인 행동들을 매 순간 의식적으로 거슬러야 한다.
하지만 의식으로 무의식에 맞서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전략을 바꾼다. 내가 다이어트를 다짐했으니 날 좀 도와달라고. 무턱대고 자신을 위해 관성에서 벗어나라고 강요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남을 배려하고 신경 써주는 건 굉장히 수고로운 일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런 부담을 번번이 엄마에게 돌려왔다. 내가 다이어트를 하겠다는데 음식을 이만큼 만들면 어떡하냐고. 이걸 다 버리면 내 마음이 편하겠냐고. 투정을 부렸다. 엄마는 그때마다 손을 줄여보겠다고 약속했지만 음식의 양은 금방 원래의 수준을 회복했다(이렇게 못난 아들도 없지).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알게 된 건, 다이어트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함께 먹는 사람들에게 수고로움과 부담을 주는 일이기에 더 낮은 자세로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일이다. 때문에 다이어트는 몸만 힘들어서 될 일이 아니다. 괜히 다들 실패하는 게 아니다.
즐겁게 먹을 건 다 먹고 운동시간을 늘리는 게 제일 이상적이지만, 대게는 먹는 걸 참는 쪽을 택한다. 여러모로 더 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단 다이어트에 한해선 내가 편한 만큼 남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음식을 만들고, 주문하고, 나눠먹는 일에서 의식적으로 한 사람을 배려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가장 친한 친구들 혹은 연인이라 할지라도 얼마 먹지도 않은 사람을 포함해 음식값을 나눌 때에는 난처해지지 않던가. 따라서 다이어트를 결심한다는 건, 자신이 좀 더 희생하겠다는 결심과도 같아야 한다. 돈도 더 들고 번거롭겠지만, 자기 식단은 자신이 직접 계획하고, 재료를 사고, 요리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친구들을 만났을 때 얼마큼을 먹든 먼저 나눠 내자고 기분 좋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연말에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사람이 특히 많다. 다짐을 하는 건 좋지만 마음의 여유, 식단을 넘어 식탁역시 분리하겠다는 각오 없이는 남에게 수고만 안기는 이기적인 다이어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의지가 충분하다면 다음은 주변에 부담을 지우지 않고 해낼 능력이 되는지 돌아보면 좋겠다. 식단을 유지할 돈과 시간은 충분한지, 얼마를 먹든 웃으면서 더치페이를 할 여유가 있는지. 아쉽지만 아직 용돈을 받는 내게는 그럴 각오나 능력이 없다. 그래서 당분간 운동만 늘리고 밥은 맛있게 먹기로 했다. 행복한 다이어트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