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브런치 작가로 거듭나기 위한 다짐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일 년 하고도 한 달이 지났다. 어느덧 100번째 글 발행을 앞두고 있다. 발행 주기는 들쑥날쑥했지만 나눠보니 꼭 한 주에 두 편의 글을 쓴 셈이 됐다. 글 한 편당 분량은 적지 않았다.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10매가 넘었고, 60매가 넘는 글도 네댓 있었다. 어림잡아 1000매 넘게 글을 쓴 건데, 보통 800매 정도면 두께감 있는 단행본 한 권이 나온다고 하니 새삼 실감이 났다. 이쯤에서 매듭을 짓기로 했다.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처럼, 지난 일 년을, 백 편의 글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그동안 어떤 글을 어떻게 써왔는지 복기했다. 아쉬운 점도 많았고, 바꿔야 할 부분도 눈에 띄었다. 그만큼 성장한 거라고, 우선은 위안을 삼았다.
한동안 에세이스트라는 직함을 달았지만, 에세이만 쓴 건 아니었다. 개중에는 한낱 일기와 같은 글도 있었고, 억지로 교훈을 넣은 부자연스러운 글도 있었다. 한 줌 지식 자랑하려 쓴 부끄러운 글도 있었고, 정답을 다 안다고 말하는 듯한 오만한 글도 있었다. 그런 글을 다시 읽을 때마다 지워버리고픈 충동에 사로잡혔다. 2년 동안 관리하던 블로그를 날린 이유도 그러한 충동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편식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한 건 잘한 일이라 생각했다. 어떤 글에 집중하고 어떤 글을 안 쓸지 결정할 수 있게 한 시금석이었다. 나머지 글은 제법 에세이다운 형식을 띄었는데, 읽어보니 그 내용에 대해서도 아쉬운 점이 많았다.
일단 재미가 없었다. 여기서 재미라 함은, 읽는 이로 하여금 피식 미소 짓게 만드는 위트보다는,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빠져들어 끝까지 읽게 만드는 흡인력을 말했다. 미괄식 구성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글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필력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중간에 흐름을 툭툭 끊는 문장이 많았고, 문단 간의 연결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주제와 정합하지 않는 문장은 다 쳐내야 했지만, 버리기 아까운 문장을 욱여넣다 보니 복잡한 미로와 같은 글들이 나왔다.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은 어디서 올까. 그 질문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문장력도 물론 중요했지만 독자를 빨아들이려면 심상을 불러일으켜야 했다. 생각이 아닌 장면을 전해야 했다.
주제도 별로였다. 징징대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독자의 에너지를 빼앗는 글들이었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렇게 행동했어요, 나는 왜 이럴까요. 패배주의가 짙게 깔린 탄식에 공감해주고 위로를 건네주는 사람은 부모나 친구들이지 바쁜 독자들이 아니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위로를 주겠답시고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 보였지만, 비관만 하다 끝나는 글로는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만약 있다면, 독자들은 그런 글에서 무엇을 바랄까. 글쓴이처럼 언젠간 힘든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아닐까. 틱을 극복한 경험을 쓴 글에 여려 부모들이 잘 읽었다는 댓글을 달았다. 그들의 아이도 언젠간 이겨낼 거란 희망을 주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도 아쉬웠다. 똑같이 고민하고 똑같이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 앞에서, 혼자 무언가를 깨달은 듯 행세했다. 이건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고, 저건 저렇게 행동하면 안 되고. 겉으로는 고민과 다짐을 담은 글처럼 비쳤지만, 그 뒤에는 독선의 빛이 아른거렸다. 메시지가 뚜렷해야 한다는 말은, 메시지를 단호하게 전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고민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어떤 질문에 답을 하려는 건지 정확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었다. 에세이는 칼럼이나 사설과 달랐다. 그런 글은 전문가나 잔뼈 굵은 논객들의 글이었다. 아직 배울 게 많은 청년이 쓸 수 있는, 혹은 써야 하는 글은 답을 내리는 글이 아닌 답을 구하는 글이었다.
더 나은 브런치 작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위에서 나열한 단점들을 버리고 나아가야 했다. 넘어지면서 페달을 밟을 용기를 얻듯, 부족한 글을 발행한 경험도 성장의 자양분이 될 거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글도 글이지만 브런치 활동에 대한 후회도 남는다. 고맙게도 매번 글을 읽어주는 친구에게서 따끔한 충고를 들었다. 글을 발행하는 주기가 불규칙하다고. 한 번에 몰아서 올리면 좋은 글도 묻히게 마련이라고. 여유롭게 업로드 요일을 정해두고, 남는 시간 동안 퇴고에 좀 더 힘써보자고 다짐했다. 또한 내 글을 읽어주기를 바라는 만큼 다른 작가들의 글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짜만을 바라왔던 마음이 얄궂다.
이번에도 두서가 없었다. 과거를 털고 새 출발을 할 마음으로 들뜬 탓이다. 늘 혼자서만 진지한 작가의 뻔한 다짐 정도로 여겨주면 고맙겠다. 매번 부족한 글 읽고 응원해준 독자들에게 고마운 마음 전한다.
Title Image by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