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우주 Dec 20. 2021

아빠가 경찰을 불렀다

한밤중 휴대폰 분실 대소동


말릴 틈도 없었다. 아빠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경찰을 불렀다. 아빠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휴대폰 주머니 안에는 신용카드가 들어 있었고, 한 모퉁이에는 차키가 매달려 있었다. 잃어버린다면 수습은 굉장히 복잡해질 터였다. 전화를 걸어봤다. 신호음은 길게 울렸고,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도난 사건에서는 보통 유심을 뽑아버린다 하니, 도난이라 볼 만한 정황은 아니었다. 아빠는 옷 주머니를 모두 확인했고, 휴대폰 벨소리도 안 들린다며 운동하고 오는 길에 흘린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 아빠는 한 차례 나갔다 들아온 뒤, 경찰을 불렀다고 알렸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며. 누가 훔쳐갔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머리를 덜 말린 채로 나와 공원으로 향했다. 차가운 밤공기에 머리는 금방 푸석해갔다. 오후 내 녹았던 눈이 다시 얼어붙고 있었다. 횡단보도 맞은편에는 경찰차가 주차돼 있었다. 멀리 아빠와 경찰관 둘이 휴대폰 라이트를 켜고 정자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 보였다. 아빠는 분명 정자 벤치에 휴대폰을 두었다며, 도난을 주장했다. 경찰관은 도난 외에도 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는 점과 설사 도난이라 해도 크게 걱정할 건 없다고 차분히 타일렀다. 프로였다. 나도 라이트를 손에 쥐고 동선을 꼼꼼히 살폈다. 경비실에도 가보고, 공원 옆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물었다. 그러는 사이 아빠와 경찰관들은 집으로 향했다.


휴대폰은 우리 집 베란다에서 나왔다. 아빠와 함께 집으로 들어간 경찰관이 동선을 물었고, 직접 몸을 움직여 동선을 되짚어보던 아빠가 베란다 서랍에 놓인 휴대폰을 발견했다. 자초지종을 알리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안도했다. 휴대폰을 찾았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순간 경찰관들의 반응을 못 봤다는 쪽이 좀 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곧장 집으로 들어가는 대신 단지 옆 놀이터로 향했다. 되돌아 나오는 경찰관들의 허탈한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까닭이다. 잠시 뒤 두 경찰관과 그들을 배웅하는 아빠가 나왔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기려는 가족들의 성의에도 저녁 식탁에는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대화는 꼬리를 길게 물지 못했고, 화두는 빠르게 증발했다. 아빠의 숟가락은 평소보다 빨리 움직였다. 그러다 체할라, 말려봤으나 숟가락은 느려지지 않았다. 아빠는 어떤 불편한 감정에 사로잡힌 듯했다.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그게 어떤 감정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무안함이었다. 괜한 호들갑으로 바쁜 경찰관들을 불러냈다는 점, 가족들 앞에서 단언했던 말들이 틀렸다는 점에서 오는 감정들의 중첩이었다.


노트북을 열고 비슷한 사례를 검색했다. 관련 기사를 찾았다. "일선 경찰들은 우선 ‘수사력 낭비’라는 고충을 털어놓는다. 9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휴대폰 분실 신고는 총 24만 4,839건. 매일 671건 정도 접수되는데, 앞뒤 자르고 '누가 훔쳐갔으니 범인을 잡아달라'는 내용이 상당수다. 그 말만 믿고 수사했는데 결국 단순 분실로 결론이 날 때가 많다(한국일보, 2019)." 아빠는 오늘 671명 중 한 명이 됐다. 더는 혀를 차대며 읽을 수 없는 기사였다. 성급하게 판단해 경찰 분들에게 괜한 수고를 안긴 아빠에게 아쉬움 마음이 남았다. 한달음에 달려와준 경찰관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아빠도 그런 마음이었을 테다.


아빠를 이해하려 노력해봤다. 평생 전문의로서 환자를 돌봐온 아빠의 언어는 확신의 언어였다. 그럴 수 있겠다, 는 말로는 환자들의 믿음을 살 수 없었을 테니 당연했다. 따라서 아빠의 언어에는 중간지대가 없었고 아빠는 그런 당신의 말을 늘 사실이라 믿어 왔다. 환자를 진찰하듯 상황을 진찰했고, 도난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주저 없이 경찰을 부르는 처방을 내렸다. 그러나 명백한 오진이란 게 곧 드러나고 말았다. 오늘의 당혹감은 쉽게 잊히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아빠를 사랑하는 만큼, 아빠가 변하기를 바랐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편에는 당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둘 줄 아는, 그래서 조금 더 무던할 수 있는 아빠가 되기를 바랐다.



Title Image by fsHH on Pixabay

작가의 이전글 백 편의 글을 돌아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