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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Jan 30. 2022

인턴기자 면접장에서

공정하다는, 공정했다는 착각


언론사 인턴기자 입사시험을 봤다. 그동안 동아리 면접만 봤지, 정식으로 기업의 입사시험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 달 전, 학보사에서 만나 함께 언론인의 꿈을 꾸게 된 S가 C신문 동계 인턴 전형에 지원하자고 제안한 게 발단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흔쾌히 이력서를 제출했다. 합격은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면접과 필기시험을 미리 경험해보는 게 훗날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면접은 개뿔, 서류에서부터 복병을 만났다. 자기소개서였다. 글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는데 자기소개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글이었다. 초라한 내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포장지를 덧씌울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감시간이 돼서야 부리나케 완성해낸 글은 엉망이었다. 방심하다 좋은 기회를 날렸다는 생각에 종일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학보사의 경험이 좋게 뵈었는지, 서류 탈락은 면했다. 이제 남은 전형은 면접과 필기시험, 남은 시간은 사흘이었다.


면접자들 앞에 붙은 번호로 미루어 보아, 200명 정도가 지원했고 절반이 탈락했다. 서류 전형을 통과하자 마음가짐도 덩달아 변했다. 메이저 언론사에서 인턴기자로 일해보는 일이 '어차피 안 되는 일'에서 '잘하면 되는 일'이 됐다. 무엇이든지 손에 잡힐듯 말듯 할 때가 제일 간절한 법이라고. 곧바로 면접과 필기시험 준비에 돌입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맨땅에 헤딩하기와 다름없었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당장 '단정한 차림(정장이 아니어도 됨)'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도 몰랐다. 더 큰 난관은 면접 준비였다. 나는 면접에 아주 약했다. 5년 전 동아리 면접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엄지손가락 마디의 굳은살을 피가 뚝뚝 흐를 때까지 뜯은 게 나다. 면접관이 괜찮냐고 물은 뒤에야 손바닥에 고인 선혈을 봤던 나. 그런 면접 '약골'이기에, 남들보다 더욱 철저하게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떠도는 정보가 부족해 제대로 된 준비를 할 수 없었다.


뜻밖에도 구원은 S에게서 왔다. S는 오전에 면접을 봤고, 나는 오후에 봤다. S가 먼저 면접을 본 뒤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 알려줬다. "맨 오른쪽 사람한테 1번부터 3번 중에서 번호를 뽑으라 했어. 우리 팀은 2번을 뽑았는데 이런이런 질문이더라." S가 일러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했다. 엄청난 행운이었다. 약간의 연기만 곁들이면 나는 순발력 있게 창의적인 답변을 뽑아내는 지원자가 될 수 있었다. 면접 배정표를 보니 내 자리는 정중앙이었다. 어차피 선택권은 내게 없었다. 오른쪽 지원자가 2번을 뽑지 않으면 꽝이었다. 이건 양심이 아닌 운의 문제였다. 면접을 볼 시간이 됐다. 옷매무새를 다듬고 면접 대기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내 오른쪽에 앉아야 할 두 지원자가 불참했다. 그 말은 내가 '맨 오른쪽 사람'이 됐다는 뜻이었고, 내가 질문 번호를 뽑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고민이 시작됐다. 나는 2번을 고를 것인가, 다른 번호를 고를 것인가?


먼저 들어간 팀의 면접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10분 동안 고민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우선 허술한 시스템이 문제라는 생각. 나와 S뿐만 아니라 다른 면접자들끼리도 친분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이 정보를 공유한다면 나중에 면접을 보는 짝꿍은 다른 면접자들보다 더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채로 면접장에 들어가게 된다. 남들도 이렇게 안 했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다음은 면접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 거란 생각. 필기시험 전날 먼저 면접을 보는 이유는 지원자를 미리 걸러서 필기시험 채점에 드는 품을 줄이기 위함이다. 고작 그런 이유라면 S와 같은 번호를 뽑아도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마지막은 이 역시 하나의 시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력서를 보면 나와 S가 같은 학교, 같은 학보사 출신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면접관들이 내가 같은 질문을 뽑았다는 걸 보고 비양심적인 행동에 낙제점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다분히 음모론적인 생각.


"맨 오른쪽에 앉은 지원자, 그러면... 주OO 씨 1번부터 3번 중에 번호 하나 골라주세요."


면접장에 들어가 번호를 뽑을 땐 이미 마음을 굳힌 뒤였다. 나는 3번을 뽑았다. 면접관이 질문을 읊었다. 예상 못한 질문이었지만 미리 준비한 2번 질문의 답변을 잘 이용하면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재빨리 내용을 다듬고 무난하게 답을 했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다행히 면접관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남길 정도는 아니었다. 사소한 질문을 서너 개 더 받고 면접을 마쳤다. 면접장을 나서면서 내게 물었다. 나는 공정했는가? 양심에 따라 손해를 감수했으니 분명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정의롭게 행동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걸 얼른 브런치에 올릴 생각에) 뿌듯했다. 하지만 어딘가 찝찝했다. 애초에 S로부터 면접 질문을 들은 일 자체가 불공정하지 않은가? 다른 면접자가 2번을 골라줘서 준비한 대로 답하는 건 괜찮고, 내가 직접 2번을 골라서 답하는 건 공정하지 않은가? 그런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결국에는 오랜 윤리적 딜레마에 닿았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등장하는 '트롤리 딜레마'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윤리적 딜레마다.  번째 상황은 이렇다. ' 갈래로 나뉘는 선로 끝에 각각  명의 인부와 다섯 명의 인부가 묶여 있다. 당신은 레버를 당기면 열차의 방향이 바뀌며 다섯 인부를 구할  있지만, 다른 선로의 인부는 죽는다. 레버를 당기겠는가?' 실험 결과 응답자  89% 레버를 당기겠다고 답했다.  번째 상황도 위와 같은 딜레마를 담고 있지만, 상황이 미묘하게 다르다. '일직선의 선로 끝에 다섯 명의 인부가 묶여 있다. 당신은 선로 위의 다리에 있고, 당신 앞에 뚱뚱한 사람이  있다. 당신이 그를 밀어 선로에 떨어트리면 열차를 막고 인부들을 구할  있다. 그를 밀겠는가?'  질문엔  11%만이 그를 밀겠다고 답했다.  실험은 피해를 그대로 방치하는 일과 직접 야기하는 일의 도덕적 부담 차이를 보여주는 실험으로써 의의가 있다.


완벽하게 공정하고 싶었다면, 나는 S에게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 "나도 내가 준비한 만큼만 보고 올게." 하지만 나는 질문 내용을 포함해 면접 진행 순서와 면접장의 분위기를 들었다. 그런 귀띔은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테다. 처음부터 완전한 공정은 실패했던 셈이다. 그러니 나는 도덕적 부담을 다른 면접자 혹은 운에 전가시키는 데 실패했을 뿐 더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았다. 뚱뚱한 사람을 선로 위로 밀진 않았지만 레버를 돌리는 일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물론 C신문 정도의 규모 있는 메이저 언론사가 이를 놓쳤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면접 시간도 아주 짧았던 걸로 보아, 형식적인 수순이었을 게 분명하다. 그래도 혹시 붙게 된다면, 인턴기자를 선발한 분을 만나게 된다면 묻고 싶다. 면접에서의 답변이 중요했냐고 말이다. 공정하다고, 공정했다고 착각했던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털어낼 수 있는 방법이겠다.



Title Image by PublicCo o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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