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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Feb 01. 2022

영어 공부 잔혹사

토익을 준비하다가


졸업 학년을 앞두고 꿀 같은 방학을 맞았다. 원래라면 여행도 다니고 미드도 몰아봤을 테지만 내년이면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입장이니 마냥 놀 순 없었다. 주변에서는 토익을 보라고 충고했다. 이맘때쯤 점수를 받아놓아야 취업 준비할 때 편하다고. 한 달 뒤에 토익시험을 잡고 문제집을 샀다.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한 건 5년 전, 수능을 준비할 때가 마지막이었다. 응시는 이번이 두 번째였으나 지난 응시가 10년 전이라 사실상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연습한다는 마음으로 모의고사를 풀어봤다. 형식이 낯설고, 시간을 어떻게 배분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지만 문제는 곧잘 풀렸다. 점수는 900점대.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고득점에 나도 놀랐다. 아직 녹슬지 않았구나! 오랜 공백에도 영어 실력은 건재했다.


영어를 잘하는 이들 중엔 단어만 주구장창 외웠다던가, 교과서만 읽었다던가 하는 재능파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남부럽지 않은 영어 실력을 갖게 된 배경엔 잔인하고 혹독한 역사가 존재한다. 짧게라도 그 잔혹사를 풀어내는 게 얄미운 자기자랑을 들어준 독자를 위한 도리겠다. 나는 영어유치원을 다녔다. 요즘에는 아이를 '영유'에 보내는데 드는 비용이 웬만한 직장인들 월급에 맞먹는다고 하는데 나 때는 그렇지 않았다. 영유에 다닌 게 도움이 됐는지 묻는다면 '글쎄'다. 기억나는 일이라곤 통원버스에서 떠들다 혼난 일이랑 생일 때 공룡 애니메이션을 틀어주던 일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어린 나이에 배워봤자 얼마나 배웠을까. 다만 영어에 대한 거부감을 덜어내준 시간으로써 의미가 있었다고, 그렇게 추측할 뿐이다.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하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다. 뉴질랜드로 일 년짜리 어학연수를 떠났다. 뉴질랜드 현지인 집에서 먹고 자고, 그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함께 수업을 들으며 영어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반년 정도 지났을 때 내 영혼의 절반은 원어민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내 한국어가 외국인처럼 어눌했다고 한다. 중간중간 원어민 특유의 추임새를 넣는 모습도 충격이었다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아이들을 힘들게 굴리기로 악명 높은 영어 학원을 다녔다. 그날 정해진 양의 단어를 못 외우면 아무리 늦어도 집에 보내주지를 않았다. 타지에서의 생활도 힘들었지만, 살인적인 학원 일정에 비할 바는 못 됐다. 울면서 '깜지'를 만들던 밤도 생생하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번에는 미국 동부 메릴랜드주에서 미국인들과 동고동락했다. 그동안 공들여 쌓은 능력을 더욱 단단하게 다지는 시간이었다. 뉴질랜드에서 회화 능력을 중점적으로 길렀다면 미국에서는 독해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했다. 상승의 비결은 영어 수업이 아니었다. 나는 당시 앤서니 호로위츠의 첩보소설에 푹 빠져 있었고 이로 인해 수업을 땡땡이치고 학교 도서관으로 향한 날이 더 많았다. 예닐곱 권짜리 시리즈를 모두 읽어버린 게 비결이라면 비결일 수 있겠다. 전자사전을 곁에 두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검색하며 읽었다. 단어를 따로 정리하진 않았다. 당장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의미만 파악하고 페이지를 넘기기 바빴다. 여러 번 찾은 단어는 자연히 외웠고, 문맥으로 대충 파악하고 넘길 경지에 올랐다.


두 번의 어학연수와 헬조선식 학원 교육을 모두 마치고, 대학 입시의 관문 앞에 섰다. 나는 이미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동사의 시제와 대명사의 종류를 외웠다. 나는 그런 통상적인 과정을 따를 필요가 없었다. 일단 때려 넣어 보고 말이 되는 걸 고르는 방식으로 문법 문제를 풀었다. 마치 한국어에서 어떤 조사를 써야 할지 고를 때 굳이 문장 성분을 해체하지 않는 원리와 같았다. 워낙 어릴 때부터 영어를 접한 탓인지 모국어처럼 듣고 읽게 된 걸지도 몰랐다. 그래서 자만했고, 그래서 망했다. 모의고사에서는 1등급을 놓친 적 없지만, 수능에서 4등급을 받았다. 모든 과목 중 제일 낮았다. 그때 들었던 절망감이란. 한동안 영어쌤을 피해 다녔던 기억과 '원어민도 못 푸는 수능 영어 문제' 같은 영상을 보며 위로를 얻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영어 점수가 발목을 잡진 않았다. 다만 수능 때 호되게 당한 탓인지, 영어가 강점이라는 생각을 더는 하지 않았다. 아픈 손가락이었기에, 대학 시절 내내 쳐다도 안 봤다. 그런데 막상 졸업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마냥 모른 채 할 수도 없다. 뭐라도 붙잡을 걸 찾게 된다. 나만의 강점, 남들과의 차별점은 무엇일까. 공모전과 대외활동을 뒤져보기도 했으나 어리석은 전략이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취업을 위해 준비하는 수준을 넘어 확실하게 강점임을 어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굳이. 정금을 감추는 자는 바보이며, 달란트를 묻어두는 자는 죄인이라 했다. 더는 묻어두지 말아야지, 먼지를 털며 다짐했다.



Title Image by geralt o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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