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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Mar 05. 2022

편집국장 인턴되다

뱀의 머리에서 용의 꼬리로


용과 뱀, 머리와 꼬리의 비유는 일의 성패나 신분의 등락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비유다. '장대한 시작과 볼품없는 마무리'를 의미하는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대표적이다. 촉망받던 사업이 흐지부지되거나 대단한 줄 알았던 누군가가 실제로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게 드러날 때 보통 용두사미라는 말을 쓴다. 그런가 하면 용미사두(龍尾蛇頭)라는 사자성어도 있다. 진짜 있는 말은 아니지만 그럴싸한 어감과 와닿는 뜻 덕분에 많이 애용되는 말이다. 용미사두는 용의 꼬리와 뱀의 머리를 합한 사자성어로, 큰 집단의 말단이 될 바에는 작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는 게 낫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용례와는 별개로 용의 꼬리가 되는 게 더 낫다는 사람도 많으며 나 역시 이들의 편이다. 그리고 어느 쪽이 더 낫냐는 논쟁이 있다는 건 둘 다 뚜렷한 장단점이 있다는 뜻이므로, 이 둘을 모두 경험해보는 건 엄청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학보사의 편집국장이었다. 흔히 대학을 작은 사회라 한다. 정부(학교 본부)가 있고, 시민들(학생)이 있다. 언론(학보사)도 있다. 역할도 얼추 비슷하다. 본부는 정책을 펼치고, 학생회는 정책을 감시하고 학생의 권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는다. 학보사는 학생의 알 권리라는 명분을 업고 취재를 한다. 원래라면 본부와 학생자치단체, 학내 언론사 간의 힘의 균형이 맞아야 하지만, 학생들은 힘을 잃은 지 오래다. 취업과 학점이 중요해진 탓에 관심이 줄었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학보의 존재를 모르고 졸업하는 학생도 많다) 나는 2년의 시간을 학보사에 바쳤다. 수습기자와 사회부 정기자로 1년을 보내고, 작년에는 편집국장을 맡았다. 학보사는 기성 언론에 비해 규모도 작고 수준도 낮은 '뱀'이기에, 뱀의 머리였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하지만 규모는 달라도 언론이라는 본질이 변하는 건 아니다. 이곳에도 저널리즘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좌절이 있다.


편집국장 임기 종료를 두 달 앞두고 메이저 언론사(○○일보)의 인턴기자가 됐다. 면접 경험이라도 쌓자는 마음으로 지원했는데 덜컥 붙어버렸다. 나이가 많은 지원자에게 먼저 기회를 주었다는 후일담을 들었기 때문에 내가 잘나서 들어갔다는 말은 차마 못하겠다. 아무튼 내가 이수한 프로그램은 교육연수형 인턴으로, 한 달간 현직 기자들 아래서 발제와 취재, 기사작성 훈련을 받는 과정이었다. 규모와 파워 면에서 ○○일보는 '용'이라 할 만했고, 인턴은 그중 최말단에 위치한 꼬리였다. 그렇게 편집국장과 인턴기자, 뱀의 머리와 용의 꼬리를 모두 경험한 사람이 됐다. 심지어 2월 한 달은 두 활동을 병행했다. 오전 오후에는 인턴기자 신분으로 일하고 저녁에는 편집국장 신분으로 돌아와 개강호를 준비했다. 급격한 일교차에 몸살이 날 뻔도 했으나 두 언론의 생리를 동시에 경험하며 배운 게 많다. 이 책에서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아직 기자 지망생인 주제에 언론사에서의 경험과 고민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은  우선, 성장하는 과정을 남기려는 목적에서다. 인턴기간 도중 2 동안 학보사에서 일하며 남긴 기록을 봤다. 내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있었고,  뿌듯함은 새로운 동력이 됐다. 나중에 정식으로 기자가 돼서 지금  글을 본다면 어떤 기분일지 기대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길을 걷을 후배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나도 인턴을 준비하고, 진로를 정할  앞서  선배들의 글을 많이 참고했다. 비교하는  부끄럽지만  글도 그런 역할을 하길 바란다. 그리고 하나 . 브런치북이  돼서 나중에 자기소개서에   줄이 만들어지길 바라는 욕심도 있다. 쉽고 재밌는 , 깊은 통찰이 담긴 글을 내려 노력할 테니 기대해도 좋다. 다만 인턴 동기들이나 학보 기자들이 읽을 생각을 하니 부끄러워 언론사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목차를 먼저 밝힌다. 책의 전반부에는 인턴기자 이야기를 담았다. 어떻게 하면 좋은 논술을 쓸 수 있는지, 매일 발제해야 하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취재원을 잘 만나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보고 들은 내용을 풀 생각이다. 인턴기간의 하이라이트는 내가 발제한 아이템이 사회부 지면 톱으로 올라간 순간이었다. 불법매혈 현장을 어떻게 취재했고, 기사 발행 이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누려 한다. 그 뒤 타인의 불행을 취재하며 든 감정들과, 인턴기간 중 만난 인연들에 관한 이야기로 전반부를 매듭지을 예정이다. 후반부는 학보사 편집국장의 이야기를 담았다. 설렜던 수습기자 현장 취재 등 인상적이었던 취재들을 복기하고, 얼마 전 시사IN 취재보도 대학기자상을 받은 기사의 비하인드를 풀어보려 한다. 그러고 나서는 대학 언론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나만의 결론을 내려보겠다. 그럼, 재밌게 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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