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에게 직접 들은 논술의 비기祕器
인턴기자의 첫 일정은 삼 일간 진행되는 오리엔테이션 교육이었다. 현직 기자들을 초빙해 발제하는 법, 스트레이트를 작성하는 법, 인터뷰를 잘하는 법 등을 강의하게 했다. 무료로, 오히려 돈을 주면서 해주는 강의인데도 수준은 엄청났다. 인턴 교육을 담당하는 총무팀은 "원래는 수백 만원씩 내고 듣는 강의"라며 자부심을 드러냈고, 사보(社報)에는 '좋은 교육을 인턴들한테만 해준다'는 수습기자의 원성이 실렸다. 나는 토씨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펜을 굴렸고, 그렇게 수백만 원짜리 필기본을 만들었다. 모든 강의가 좋았지만, 그중 특히 좋았던 건 인턴 필기시험을 채점한 모 논설위원의 논술 강의였다. 어떤 답안이 높은 점수를 받고, 어떤 답안이 잠깐 읽히다 버려지는지 자세한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논설위원의 명강을 풀기 전에, 내가 어떻게 필기시험을 봤는지부터 밝히려 한다. 운 좋게 논설위원이 말한 '잘 쓴 논술의 특징'을 갖춘 답안을 냈기 때문이다. 그 특징이 무엇인지 맞춰보길 바란다. ○○일보 필기시험 문제는 두 기사를 주고 이를 종합적으로 논평하라는 문제였다. 하나는 저출산과 고령화에 관한 기사였고, 다른 하나는 청년 일자리에 관한 기사였다. 처음 문제지를 받고 굉장히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논술의 형식에 관해선 보고 들은 게 있지만, 논평에 관해서는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논하고 평하라는 건 어찌됐든 기사에 대한 평가를 내리라는 건데, 감히 현직 기자들을 평가해도 되나 싶었다. 다행히 문제 끝에 '가능하다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도 좋다'는 문구가 있었고, 나는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먼저 두 기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문제를 뽑아내야 했다. 문제가 하나가 아니라면 그에 대응하는 대안도 중구난방 흩어질 수밖에 없었고, '잡탕' 같은 글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제시된 두 사회 현상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았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일을 할 사람이 줄어드는 마당에 청년 취업난이 심화된다는 말은 모순으로 들렸다.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우선, 어느 시대에나 구인은 구직을 상회했다. 즉 본질은 단순한 일자리 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구직자의 눈에 맞는 양질의 일자리가 얼마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젊은이들이 대기업 공채만 바라본다면 인구가 아무리 줄어도 청년 취업난은 해소될 수 없다. 그렇게 질문을 '대기업으로 쏠리는 노동인력을 어떻게 분산할 건가'로 환원하고 나니, 어떻게 대안을 제시해야 할지가 눈에 보였다. 배경지식을 총동원해 두 가지를 추렸다.
한국 사회에는 트램펄린과 사다리가 없다.
내가 생각한 두 가지 대안은 고용유연성을 높여 세대 간 일자리 정체를 줄이고, 동종업계 내 이직을 활성화해 단발성 공채의 비중을 줄이는 일이었다. 다행히 내 주장을 뒷받침할 해외사례도 알고 있었다. 필요한 건 적합한 비유였다. 나는 한국에 '트램펄린'과 '사다리'가 없다는 문장으로 포문을 열었다. 트램펄린은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의 재취업 보장제도를, 사다리는 영미권 국가들의 활발한 스카우팅 문화를 상징했다.
트램펄린부터. 북유럽에는 평생교육과 재취업을 보장하는 제도가 잘 마련돼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양질의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퇴사나 은퇴의 무게도 비교적 가볍다. 마음만 먹으면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반면 '은퇴하면 치킨집이나 차려야지' 하는 한국에서는 은퇴가 곧 경제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한번 떨어지면 다시 튀어 오를 가능성이 없으므로 지금 일하는 곳에서 최대한 오래 버텨야 한다는 인식, 평생직장의 신화가 만연하다. 훗날 직업 전환의 기회가 없다는 점은, 젊은 구직자들이 중소기업 쪽으로 눈을 돌릴 수 없게 만드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따라서 중요한 건 노동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직업 선택의 부담을 줄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바닥에 못이 아닌 트램펄린이 깔려있어야 한다.
다음은 사다리.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에서 얻은 답이다. 장강명은 대기업 공채가 신입들에게 불리한 취업전선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여전히 공채가 활발히 이뤄지는 한국과 일본에서는 업계 내부에서 실력을 인정을 받고, 더 나은 처우의 회사로 이직하는 경로가 없다고. 가령 기자만 해도, 해외 유수의 언론사들은 신입을 공채로 뽑지 않는다. 지역 언론에서 보인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경력 이직을 신청하거나 제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소기업들이 일종의 관문이 되며, 구직과 구인의 수요를 모두 충족시키는 원리다. 무엇이 먼저인가. 공채를 없앤다고 곧장 해결될 문제처럼 보이진 않는다. 먼저는 이직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곳곳에 사다리가 놓여 있어야 낮은 곳에서 시작할 용기도 생길 테니 말이다.
좋은 논술과 그렇지 않은 논술을 나누는 요소는 무엇인가. 이제 밝힐 때가 됐다. 필기시험 비하인드를 읽으며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정답은 '비유'다. 논설위원은 좋은 논술에는 반드시 좋은 비유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좋은 비유란 과도하지 않으면서 독특한 비유를 말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수백 장, 때로는 수천 장을 채점해야 하는 심사위원들의 눈에 '그저 그런' 글이 밟힐 리 없다. 일단 팍팍 튀는 키워드를 제시해 읽을 만한 글이라는 점을 어필해야 한다. 위에서 봤듯, 진부한 주장과 근거라도 어떻게 포장하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논설위원도 달달 외워간 자료를 나열하려 하지 말고, 근거는 빈약해도 자신만의 관점을 과감하게 적으라고 충고했다. 붕어빵처럼 판에 박힌 글은 독이며, 독특함이 생명이라고.
나머지 강의 내용은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이들이라면 지겹게 들어봤을 내용이다. 수식어를 짧게 써라, 확인된 사실을 앞에 써라, 한국어에는 수동태가 없다, 수미상관 구성이 좋다 등. 이런 부분은 진부한 만큼 누구나 갖춰야 할 기본기라 할 수 있으며, 그렇다면 차별점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뜻이 된다. 그중 하나가 좋은 비유였다. 물론 모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그렇듯, 당일날 머리를 쥐어짜낸다고 독특한 비유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평소에도 남들과 다르게 사고하고, 맥락과 본질을 파악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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