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독자를 만나다
목소리를 담지 않은 기사는 없다. 목소리를 널리 알리는 게 기사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기사는 개인 단위의 고충을 공적인 의제로 변환하는 장치이며, 이런 변환이 있어야만 정책적 담론도 뿌리내릴 수 있다. 하지만 목소리를 담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주변의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지난한 과정, 곧 '취재'의 과정이 필요하다. 취재의 핵심은 취재원으로부터 양질의 정보를 얻어내는 데 있다. 그런데 취재원도 사람이라 아무에게나 중요한 정보를 내어주려 하지 않는다. 취재에 응할지 말지, 응하더라도 어떤 정보를 얼마나 내줄지 마음대로다. 언론인에게 필요한 덕목 중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사는 능력'이 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일개 인턴기자에게 취재원의 마음을 휘어잡는 기술이 있을 리 없었다. 오히려 방식이 서툰 탓에 취재원으로부터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다. 끝까지 말이라도 들어주면 다행이었다. 취재원이 ○○일보 안티라면(대부분이 그랬다) 기분 상하게 하는 말투와 이어지는 통화 종료음을 감내해야 했다. 그래서 '○○일보만 읽는다'는 취재원을 만난 건 큰 행운이었다. 단지 애독자라는 이유로 자기 일처럼 취재를 도운 취재원 덕에 좋은 발제를 낼 수 있었다. 발제가 지면에 잡혀 기사를 써볼 기회도 얻었다. 취재의 성패는 어떤 취재원을 만나냐에 달려있었다. 인턴기자를 울고 웃게 한 '취재원 복불복'에 대한 에피소드다.
인턴기자 2주 차, 현장 취재 지시가 떨어졌다. 내가 올린 발제가 실제 지면에 낼 만한지 가늠해보기 위한 사전 답사였다. 내가 준비한 건 자가검사키트 처리 문제를 다룬 기사였다. 정부가 음성이 나온 자가검사키트를 생활폐기물로 처리해도 좋다는 지침을 내렸는데, 위음성이 많은 상황에서 키트를 아무 데나 버리면 위험하지 않냐는 문제제기였다. 선배는 플라스틱 키트가 아무렇게나, 무더기로 버려진 현장을 발견하면 기사로 낼 수 있다고 했다. 내 이름으로 된 기사가 간절했던 나는 곧바로 광화문 길거리로 뛰쳐나갔다.
반나절 동안 신속항원검사를 하는 동네병원, 주거동이 들어선 대형 오피스텔 지하를 돌며 재활용쓰레기통을 뒤졌다. 하지만 번번이 허탕이었다. 무더기는커녕 단 한 개도 발견하지 못했다. 다급한 마음에 서울시청 청사입구에 마련된 휴지통과 지하철역 공중화장실도 확인했지만 마찬가지였다. 하루를 낭비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내게, 선배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자가검사를 실시하는 회사를 찾아보라고 조언했다. 인터넷을 뒤져 출근 전 자가검사를 의무적으로 하게 한 회사를 찾았다. 분당 판교에 위치한 유명한 IT기업이었다.
다음날 나는 본사 대신 판교로 출근했다. 회사가 있는 건물 내 카페에 전초기지를 마련하고, 비닐장갑과 손소독제를 챙겨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지하주차장 재활용처리장에는 네댓 명의 작업자가 쓰레기봉투를 선별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압축기가 굉음을 내며 봉투들을 짓뭉개고 있었다. 젊은이의 뜬금없는 방문에 그들은 은근히 경계를 하면서도, 무심한 척 작업을 이어갔다. 현장을 짧게 스케치한 뒤, 질문을 건네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 중 제일 어려 보이지만 관리자인 듯한 분이 하던 일을 멈추고 왔다.
"안녕하세요, ○○일보 인턴기자입니다."
"네... 무슨 일이시죠?"
"혹시 주변에서 이런 키트를 보신 적 있으세요?"
플라스틱 키트 사진을 내밀었다. 그는 유심히 사진을 들여다보더니, 며칠 전부터 하루에 서너 개씩 나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오는 족족 압축기에 넣어버렸다고. 현장에 남아있는 건 자가검사키트 박스들뿐이었다. 일단 박스들을 찍은 뒤, 혹시 키트가 더 나오면 연락을 달라고 명함을 건넸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번에도 허탕이구나, 체념하는 마음이었다. 안 그래도 바쁜데 번거롭게 연락을 줄까. 키트가 나온다 해도 원하는 그림일까. 반쯤 포기한 상태로 다른 발제를 준비하고 있는데 저녁에 전화가 왔다.
"여기 재활용처리장인데요, 키트가 나왔습니다."
한쪽에 플라스틱 키트가 세 개가 놓여있었다. 그는 다른 작업자들과 버려진 박스를 전부 다 뒤져 키트를 찾았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호의에 당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메이저 언론의 힘인가'하는 오만한 마음도 들었다. 보고를 올렸다. 하지만 선배는 문제 삼기에는 너무 적은 양이라고 했다. 그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혹시 무더기로 나오게 되면 연락을 달라했다. 전보다 더 무리한 부탁이었고, 이번에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다. 도와줘도 이득 될 게 없고, 무시해도 손해 볼 게 없다. 취재원에겐 어떠한 의무도, 당위도 없었다.
하지만 다음날 문자가 다시 왔다. 본사 앞 정류장에 막 내렸을 때였다. 100L짜리 쓰레기봉투에 플라스틱 키트 수백 개가 버려져 있는 사진이 내 휴대폰으로 전송됐다. 곧장 횡단보도를 건너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무더기로 나와서 따로 보관해뒀어요."
"이게 다 어디서 난 거죠?"
"방금 회사에서 내려왔어요."
이제 버려야 하니 얼른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그대로 보고를 올렸고,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현장 취재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음료수를 사 와 작업하는 분들에게 돌렸다. 바쁜 와중에도 많은 도움을 준 점에 대한 마땅한 보은이었다. 신문에 실리게 되면 연락하겠다고, 도움 준 덕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떠나기 직전 그가 한마디 보탰다. "제가 ○○일보만 읽어서요, 다른 데였으면 안 해줬을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그는 애독자였다. 그 사실이 그에게 취재를 도와야 할 당위와 의무를 부여한 것이었다.
며칠 뒤 선배와 밥을 먹었다. 현직기자에게도 '취재원 복불복'이 크게 와닿는지를 물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시의 이야기를 전했다. 유가족과 관련 단체들이 특정 언론사 기자들만 상대해주는 바람에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죽 쒔다고. 선배도 취재를 마친 기자들이 말하는 걸 엿들으며 간신히 정보를 얻었다고 했다. 또 수습시절 현장에서 CCTV 영상을 따와야 할 일이 있었는데, ○○일보를 싫어하는 경비를 만나 몇 날 며칠을 뻗대야 했던 경험도 전했다. 언론사 브랜드로 이득을 본 적도 더러 있지만, 대체로는 손해만 본다며 멋쩍게 웃었다.
애독자 취재원을 만난 건 큰 행운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기자가 된 뒤에도 이번처럼 운이 좋기만을 바랄 순 없었다. 중요한 정보인데 그걸 안티가 쥐고 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운이 안 좋았다며 포기해야 할까. 그래도 사람인데, 회유할 여지는 없을까. 좋은 기자가 되기 위한 준비는 단순히 필기시험을 공부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느낀다. 언론인의 숙명과도 같은 이 복불복을 극복할 수 있는 처세술, 사람의 마음을 사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능력은 책에서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관계의 충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러니 그동안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쌓은 경험들이, 실은 실전을 위한 좋은 공부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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