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우주 Mar 16. 2022

다하지 못한 말들

정들었던 학보사를 떠나며


전국이 신천지발 코로나19 확산으로 떠들썩하던 2020년 4월, 스물다섯이라는 늦은 나이로 학보사에 들어왔다. 친구들이 하나둘 철옹성 같던 취업관문을 뚫고 있던 시기였다. 전공 공부에 몰두하고, 취업을 준비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나는 엉뚱한 쪽으로 열정을 쏟아붓기로 했다. 그 대가는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다. 학점은 바닥에 누워버렸고 졸업은 늦어졌다. 하지만 후회는 남지 않는다. 그만큼 특별하고 값진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처음 언론인의 꿈을 꿨고, 어설프게나마 필요한 능력을 길렀다. 이곳에서의 경험들을 토대로 새로운 문들이 열렸다. 괴로움을 모두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큰 보람이 남았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이제야 이게 어떻게 돌아가지 알겠는데 떠나야 한다는 점, 오직 그뿐이다.


다행히 학보사는 그런 아쉬움을 모두 털어낼 수 있도록 마지막 배려를 해준다. 편집국장에게 동기들을 대표해 한 편의 글을 남기도록 지면을 허락해 준다. 후배들을 향한 조언이나 개인적인 소회를 담은 800자 안팎의 글이다. 어떤 말을 할까, 어떤 말이 필요할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분량이 짧은 만큼 구구절절 미사여구 붙일 틈 없이 핵심만을 담아야 한다. 뻔한 이야기는 하기 싫었고,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만들어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한 끝에 두 편의 글을 완성했다. 학보사와 학보원들에 대한 단상을 두 글에 나눠 담았다. 전자는 신문에 실었지만, 후자는 그러지 못했다. 실린 글 역시 할애된 지면이 적어 곳곳을 쳐내야 했다. 대신 여기에라도 남긴다. 훗날 대학 언론에 몸 담을 모든 이들을 위한 충고다.



대학 언론의 위기는 없어요, 돈 룩 업!



“대학 언론의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무엇인가요?”


얼마 전 다른 학보사 기자에게서 받은 질문이다. 대학 언론의 위기를 주제로 기사를 낸다고 했다. 수없이 들어보고 고민해본 주제라 그런지 질문만 봐도 어떤 기사가 나올지 눈에 훤했다. 학우들의 관심이 부족해서, 지원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서, 우리가 못 나서 등등. ‘미안한데 그런 방법은 없어요.’ 솔직한 대답은 이번에도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고. 대신 그쪽에서 원하는 답을 했다. “미디어 역량을 강화해야 합니다(찡긋)”


대학 언론의 위기는 진부하다. 매년 수많은 학보사에서 같은 문제를 다룬다. 나 역시 지난 2년간 굵직한 기획들에 참여하며 이에 관해 고민해봤다. 다른 학보사들과, 다른 학내 언론사들과, 우리 학보 기자들과 열따게 토론하고 열정적으로 취재했다. 그런데 누구도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종이신문의 위기는 기성 언론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다. 돈도, 맨파워도 부족한 학보사가 어떻게 변화의 파도를 버텨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대로 끝인가? 침몰하는 배 위에서 바이올린이나 켜야 하는가?


아니다. 위기는 위기대로 인정하고, 할 일부터 잘하면 된다. 듣기로 대학 언론의 위기라는 표어는 대학 내 운동권의 위상이 서서히 저물던 90년대부터 있어왔다. 벌써 30년 넘게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뜻인데, 이쯤 되면 그냥 모른 척 살아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대신 학보사 본연의 역할, 학생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발로 뛰고, 학교의 혹시 모를 방만 운영을 감시하는 임무에 충실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대학 언론의 존재 이유를 납득시킬 수 있지 않을까. 정면돌파로 위기를 박살내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정작 큰 위기는 따로 있다. 언제부턴가 ‘대학 언론의 위기’라는 표어가 블랙홀처럼 모든 열정을 빨아들이고 있다. 뭐만 하면 ‘이게 다 대학 언론의 위기 때문이야’ '대학 언론이 원래 그렇지'라며 어쩔 수 없는 문제로 환원하고 포기해버린다. 그러면서 취재의 품과 기사의 질도 떨어지고 만다. 나는 대학 언론에 만연한 패배주의와 낮은 자존감이 진짜 위기라 생각한다. 그러니 후배기자들은 부디 이 지리멸렬한 프레임에서 벗어나, 다음 걸음을 내딛길 바란다. 혹시라도 다음에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면, 그땐 이렇게 대답하시라.


“대학 언론의 위기는 없어요, 돈 룩 업!”



열심을 강요할 순 없지만



‘4번은 개인주의야’


한때  인기를  UDT 훈련 콘텐츠 <가짜사나이>  사람이라면 고무보트(IBS) 훈련을 모를  없다. IBS 훈련은 6명의 장정이 100kg 넘는 보트를 들고 일정한 거리를 이동하는 훈련이다.  하나 편하자고 쉬면 나머지 팀원이 힘들어지는 구조이기에 협동을 통해 부담을  분배하는  훈련의 핵심이다.  유행어는 보트를 제대로  드는 4 훈련생에게 교관이 날린 질타에서 비롯됐다. '아무리 노력해도 능력이  되는데' 4 훈련생의 억울함도  이해가 되지만, 본래 협동이란 능력 이상의 희생을 요하는 법이니까.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음이 아팠다. 그런데 위화감은 들지 않았다. 실은, 단체생활이라는  원래  저렇지 않나.


학보사에서의 2년을 돌아보다가 문득 IBS 훈련이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니다. 학보 역시 업무 분담이 빠듯하게 이뤄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당 써내야 할 원고지량은 정해져 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신문은 2주마다 나와야 한다. 한 명의 일탈이 남은 기자들의 부담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는 특별히 힘든 한 해였다. 후배기자들을 챙겨야 할 선배들이 대거 나갔다. 10명이라는 전례 없는 인원으로 쉴 틈도 없이 신문을 만들었다. 한 명 한 명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희생하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끝까지 버텨준 동기·후배들에게 얼마나 미안하고 고마운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편집국장으로서도 동기들의 공백은 컸다. 편집국장의 일에 더해 부장과 정기자로서의 일도 병행해야 했다. 부담은 상상 이상으로 막중했고, 그 무게에 짓눌려 학업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었다. 휴학을 했고, 교내 상담센터의 문도 두들겼다. 누군가는 동아리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에 이렇게까지 고생을 해야 할까. 억울한 마음에 잠시 포기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들인 노력과 희생은 결국 화려한 열매로 돌아왔다. 두 해 연속 시사인 대학기자상을 수상했고, 조선일보 인턴기자로 일했다. 좋은 인연들도 많이 만났으며, 무엇보다 혹독한 풀무질 끝에 마음이 더욱 단단해졌다. 이제는 어떤 무거운 고무보트도 짊어질 수 있을 듯하다.


떠나는 마당에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여러 멋진 조언들을 떠올렸지만 지우고 지우다 보니 더 열심히 하라는 말밖에 남지 않는다. 꼰대가 됐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열심을 강요할 수는 없다. 다만 권할 뿐이다. 학보사에 들인 땀이 헛되지 않다는 건 많은 선배들이 보증한다. 학점을 챙기고, 친구들과 놀러다니는 게 어찌 안 중요하겠는가. 대충하는 팀원들 때문에 나만 힘들어지는 게 어찌 억울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이해타산을 버리고 우직하게 할 일을 해나갔을 때 인생의 다음 문이 열렸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러니 후배들도 이곳에 많은 열정을 쏟아붓고, 값진 경험을 얻어가길 바란다. 그럼, 다음 문에서 만나자.


눈물이 찔끔 났던 송별식의 현장


작가의 이전글 발제 귀신이 나타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