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우주 Aug 08. 2022

탈퇴하기 공포증

브런치팀에게 한 가지 소원을 말하라면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러시아 인플루언서들이 대성통곡하는 영상이 인터넷을 달궜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가 서방과 단절되는 과정에서 인스타그램이 통제되며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잃게 된 이들이 절규하는 영상이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평생 관심도 없었던 국제정세가 다년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으니 억울할 만했다. 물론 나도 러시아의 극악무도한 전쟁범죄에 분노하는 입장이었으나 이들의 슬픔도 이해됐다. (무관심도 죄라기엔 요즘 정치에 참여하는 청년들이 너무 적다) 하지만 누리꾼들의 분노는 그들의 슬픔 자체가 아닌 슬픔을 굳이 드러내 놓고 전시한 데 있었다. 슬픈 건 이해해도 가족들의 생사도 알 수 없고, 삶의 터전도 모두 잃은 우크라이나 국민들 앞에서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당연한 상식이다.


당연한 상식에 대해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온 일이 한순간에 날아갔을 때의 슬픔과 공포를 묵상하다가 관련 일화가 생각났을 뿐이다. 어떤 사람이든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 그 사람을 정의하는 정체성이 된다고 생각한다. 러시아 인플루언서에게 인스타그램은 단순한 SNS가 아니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피드를 어떻게 짤지 고민하고, 반응에 일희일비하며 이들의 존재의미도 인스타그램에 동기화됐다. 이들에게 SNS 계정을 삭제하는 건 절벽으로 떠밀리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모든 걸 쏟아넣은 일이 파괴됐을 때의 절망은 문학 작품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황순원 '독 짓는 늙은이' 속 늙은이는 자신이 독이 되어 화로 속에 들어가 죽었고,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속 주인공도 평생을 함께 한 폐지압축기에 들어가 생을 마감했다. 자신의 혼을 쏟은 건 곧 자신이 된다.


내게는 브런치가 인스타그램이자, 폐지압축기이자, 독이다. 진로가 정해지고 본격적으로 브런치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종일 발행할 글을 다듬고, 다음에 무엇을 쓸지 고민하며 시간을 보낸다. 어언 백삼십 편이 넘는 글을 발행했고, 꾸준히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아주는 팔로워들이 생겼다. 지금껏 쏟은 시간만큼 브런치는 중요한 자아실현의 수단이 됐다. 브런치 계정을 잃는 건 상상도 하기 싫은 불행이다. 그런데 그런 소중한 계정을 네댓 번의 클릭으로 지워버릴 수 있다. 왼쪽 상단 메뉴아이콘, 설정, 탈퇴하기, 안내사항 체크박스, 최종확인 버튼을 차례로 누르면 한순간에 모든 게 사라진다.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무언가를 단번에 끝장낼 방법치고 너무 쉽지 않은가. 너무 쉽기에 확 누르고픈 생각에 사로잡힌다. 탈퇴 직전 단계까지 갔다가 벌렁거리는 심장과 함께 빠져나온 경험도 한두 번이 아니다. 최근에는 아예 어플을 지워버렸다.


안 누르면 되잖아. 이런 생각이 든다면 정상이다. 사람들은 보통 그런 버튼이 있어도 잘만 잊고 산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게 잘 안 된다. 애써 잊으려 해도 자꾸만 신경이 거슬린다. 이를 강박장애라고 한다. 나도 어릴 때부터 이걸 앓았다. 강박장애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특정한 사고나 행동을 떨치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반복하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물건 위치를 꼭 수평, 수직이 되도록 맞춰야 한다거나, 특정 패턴에 지나치게 집착한다거나 등의 증상이 있다. 내 강박은 '하지 말란 걸 하고픈' 충동에서 비롯됐다. 창문을 열고 밖으로 몸을 내민다던가, 뜨거운 물체에 손가락을 대본다던가, 달리는 자동차에서 변속기어를 건드린다던가. 잘못하면 죽거나 다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두려움이 자기파괴적인 강박의 원인이 됐다.


뚜렷하게 밝혀진 치료법은 없다. 행동치료라고 해서, 강박적인 사고를 유발하는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훈련이 그나마 효과적이라고 한다. 가령 수평·수직 강박을 갖고 있는 사람의 방을 흐트러뜨리고 그 안에서 살라고 하는, 말하자면 고통에 적응시키는 훈련이다. 물건을 수평·수직으로 맞추면 당장 강박이 해소되지만, 다음에도 똑같은 욕구가 밀려온다. 참고 참아서 그 욕구 자체를 줄이려는 게 행동치료요법이다. 내게는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다. 한번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기에. 따라서 내게는 강박을 유발하는 상황 자체를 멀리하는 방법밖에 없다. 창문 강박은 아빠가 창틀에 못을 박고 자물쇠를 걸어주며 없어졌다. 변속기어 강박은 조수석에 앉을 때만 올라왔다. 그렇다면 '탈퇴하기'를 어렵게 만드는 걸로 버튼 강박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옆동네 N사는 '블로그 초기화' 버튼을 눌러도 최소 24시간의 유예기간을 준다. 실수로 버튼을 눌러도 24시간 안에 철회하면 그대로 돌려받을 수 있다. 수년 동안 블로그를 운영해왔는데, '탈퇴하기' 강박에 사로잡힌 적은 없다. 한 번의 클릭이 완전한 파괴를 의미하지 않으니, 두려움도 충동도 낮아진 게 분명했다. 따라서 브런치 팀에게 소원을 빌라면 N사처럼 유예기간을 달라고 하겠다. 또 백업기능을 만들어달라고 하겠다. 그간 열심히 발행해온 글들을 일종의 포트폴리오처럼 간직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언젠간 들어줄 수 있겠지만, 당장은 내가 달라지는 수밖에 없다. 요즘 블로그에 비공개 게시판을 만들고 글을 퇴고하면서 옮기고 있다. 몇 편 안 옮겼는데도 마음이 안정돼간다. 물론 'N사가 망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조용히 꿈틀대기 시작한 건 비밀. 

작가의 이전글 무심함의 비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