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할 수 있는 64칸짜리 세상으로
언제 처음 체스를 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초등학교 5학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한 쇼핑몰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한 게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홈스테이 맘을 따라 장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참가한 대회였다. 대회장은 열 살 언저리 또래들로 가득했고, 곳곳에서 흥미진진한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람 크기만 한 기물로 체스를 두는 이벤트, 대회를 주최한 그랜드 마스터(GM-바둑으로 치면 9단)와 일대다 매치를 벌이는 이벤트 등이 눈길을 끌었다. 메인 이벤트는 단연 체스 토너먼트였다. 첫 상대는 나보다 두어 살 어려 보이는 중국인 꼬마였다. 경기는 내가 룩이 하나 모자란, 굉장히 불리한 엔드 게임으로 전개되었지만 마음이 여린 그 아이는 내 무승부 요청을 거절하지 못했다. 덕분에 처참한 실력에도 두 경기나 치를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체스를 두기 시작한 건 군대에서 상병을 단 뒤부터였다. 아직 휴대폰이 풀리지 않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동전 노래방을 가거나, 우르르 족구를 차러 가던 시절이었다. 인터넷이 아주 느린 사이버지식정보방(싸지방)에서 인터넷 체스는 사막 속 오아시스와 같았다. 싸지방은 평일에는 30분 주말에는 1시간씩 두 번 이용할 수 있었다. 보통 10분이면 한 경기가 끝나니, 못해도 매일 세 판씩 꾸준히 판수를 쌓아간 셈이다. 싸지방 이용시간을 감시하는 통신병보다 짬밥이 높아진 뒤부터는 판수가 늘었다. 인터넷 강의를 들으라고 마련한 취침 후 연등시간에도 간부 몰래 체스를 두었다.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전역하고 나서는 오프라인 체스모임에 나갔다. 매주 금요일 왕십리 인근 카페에서 진행되는 모임이었다. 보통 열댓 명 정도 모였는데 연령대가 다양했다. 대학생과 아이들이 주를 이뤘고, 아이들의 부모와 유학생도 이따금 얼굴을 비췄다. 가장 무서운 상대는 어린아이들이었다. 체스엔 나름 정형화된 공격, 수비 방식이 존재하는데 아이들은 쉽게 틀을 부쉈다. 공격은 거침없었고 수비도 정교했다. 어른들이라면 일찍이 포기했을 게임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무승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체스에는 나이가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며 오프라인 모임은 폐쇄됐고,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체스를 즐기는 중이다.
체스에는 레이팅 시스템이 존재한다. 공식 레이팅은 FIDE(국제체스연맹)에서 아이디를 발급받고 공식 토너먼트에 참가해 얻을 수 있다. 레이팅은 1200점으로 시작하며 매판 상대방 레이팅에 따라 얻거나 잃는 점수가 달라진다. 한국에서는 토너먼트가 잘 열리지 않고, 열리더라도 판당 2만 원을 내야 할 정도로 참가비가 비싼 탓에 FIDE 레이팅을 보유한 한국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오프라인 모임에서 상대의 기력을 물을 땐 보통 온라인 체스 사이트 레이팅을 묻는다. 체스닷컴(Chess.com)과 리체스(Lichess)가 유명한데, 사이트마다 가입자 수가 달라 레이팅 평균도 다르다. 주변에서 보고 들은 기준으로는, 체스닷컴 1500점, 리체스 1800점 정도면 어디 가서 체스 좀 한다고 떠들 수 있는 수준이다.
체스는 잔인한 일대일 스포츠다. 경기 과정과 결과를 모두 혼자 짊어져야 하기에 긴장되는 것은 물론 멘탈이 박살 나기 일쑤다. 오랜 승부 끝에 이기면 날아갈 듯 기쁘고 지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무승부라도 이길만했던 경기를 비기면 속이 터지고 반대라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해외의 체스 유튜브를 보다 보면 경기에서 패배하고 의자나 마우스를 집어던지는 유튜버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만큼 감정의 동요가 큰 게임이다.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라면 체스를 두며 수명을 단축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체스 실력을 지능과 관련짓는 통념 때문에 더더욱 감정을 쏟게 되는 건 아닌가 싶다. 수많은 연구가 체스와 지능은 관련이 없다는 결과를 내놨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체스를 잘 두는 사람을 천재로 여긴다. 그래서 이기면 '내가 너보다는 똑똑하지'라는 우월감이, 지면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열패감이 드는 것이다.
패배로부터 오는 괴로움에도 체스를 끊을 수 없는 이유는, 체스가 주는 즐거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예상한 대로 상대가 다음 수를 둘 때, 내가 정교하게 판 함정에 상대가 걸려들 때, 상대의 사소한 실수를 발견할 때마다 즐겁다. 특히 중요한 기물을 희생하며 체크메이트를 만들어낼 때의 쾌감은 좀처럼 잊기 힘들다. (체스에서 희생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예술의 경지라 불리는 체스 경기들은 대부분 기물 희생을 통해 승리한 경우들인데, 그 정점에는 퀸 희생(Queen Sacrifice)이 있다. 수천 판을 둔 나지만 퀸 희생은 못해봤다.) 실력이 늘어가는 걸 지켜보는 일도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전역할 당시 1300점 언저리였는데, 지금은 1600점을 넘겼다. 지난 9월엔 1737점을 찍으면서 전 세계 상위 5% 안에 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즐거움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체스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의 주인공 베스 하먼은 말한다. "체스판을 보면 마음이 안정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세계, 예측이 가능한 세계라 그렇다." 전역한 뒤 사회에 나왔을 때, 더 재밌는 게 많은데 도 체스에 빠져든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군 복무기간 동안 머리가 굳으며 전공 공부는 따라잡기 힘들어졌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대인관계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열심히 살아보자고 아무리 다짐을 해도 지키지 못했다. 좀처럼 마음대로,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자꾸 64칸짜리 세상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나마 통제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위안을 얻으려고 말이다. 요즘도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 없고, 체스를 둘 때도 슬럼프가 온 탓에 이기는 판보다 지는 판이 많다. 그래서 부쩍 우울한 감정이 많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서 힘든 시기가 지나고 다시 순수하게 체스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