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는 거란다
충남 서산시 대산읍. 김애란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산골짜기 동네에 대안학교가 하나 있다. 학창 시절의 모든 추억이 담긴, 지금의 나를 만든 학교다. 나는 그곳에서 일반 학교에 간 또래들과 다른 교육을 받았다. 배추를 담그고 감자와 고구마를 심는 일도, 달고나를 판 수익으로 이웃을 돕는 일도 수업의 일부였다. 특히 기억에 남는 수업은 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 수업이었다. 두세 명씩 팀을 이뤄 미션에 정하고, 도전하고, 이루는 것이 수업의 목표였다. 우리는 '무인도에서 살아남기'를 목표로 정하고, 반 학기 동안 불을 피우는 방법, 바닷물을 증류하는 방법, 집을 짓는 방법, 낚시하는 법을 조사했다. 목표 기간은 3박 4일이었다. 서해 앞바다를 뒤져 적당한 무인도를 찾았다. 멀리 항구가 보이는 비경도라는 작은 섬이었다. 배편을 구하고 비상식량을 샀다. 10월의 어느 날, 우리는 섬 귀퉁이 자갈밭에서 멀어지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다. 해안가에는 이미 몇 팀이 다녀갔는지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우리는 모래의 색으로 만조의 높이를 가늠한 뒤 파도가 닿지 않는 곳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나무를 베어 기둥을 세우고 노끈으로 이음새를 매었다. 두툼한 비닐을 덮으니 어느새 아늑한 집이 완성됐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고된 노동으로 인해 비상시를 위해 준비한 과자를 다 먹어버렸다. 황도랑 라면만 남았다. 먹을 것을 구할 차례였다.
육지에서 미리 만들어온 대나무 낚싯대를 꺼내 갯지렁이를 걸었다. 각자 갯바위에 올라가 돌 틈에 찌를 드리웠다. 물은 고기들이 헤엄치는 게 보일 정도로 맑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먹만 한 우럭이 올라왔다. 내게는 그것이 마지막 입질이었다. 반나절 동안 우리는 우럭 두 마리와 놀래미 한 마리를 잡았다. 하지만 성공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요리사를 준비한다는 친구가 그만 과일칼을 가져와 버린 것이다. 우럭 머리를 자르는 데만 이십 분이 걸렸다. 피가 점점 살코기에 스며들고 있었기에 급한 대로 먹기로 했다. 게걸스럽게 물고기를 뜯어먹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남은 우럭 한 마리는 너무 작아 풀어줬다. 놀래미는 우리가 불을 피우는 사이 페트병에서 튀어나와 죽었다. 일단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양푼 냄비에 생수를 모조리 부었다. 물론 그때는 몰랐다. 음식보다 귀중한 건 생수라는 걸. 우리는 나름 바닷물을 증류하는 방법을 조사했고, 그곳은 사면이 바다였다. 물은 걱정할 게 못 됐다. 날이 저물며 서늘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라면의 맛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투명한 밤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렸다. 멀리 노란색으로 깜박이는 대산항의 신호등이 보였다. 휴대폰 신호는 잡혔지만 전화는 하지 않았다. 원시의 자유를 마음껏 즐기고 싶었기에. 남은 장작을 모두 털어 불을 키운 뒤 잠에 들었다.
배가 고파 눈이 떠졌다. 남은 건 황도 두 캔 뿐이었다. 일단 불씨를 살리고 몸을 녹이며 남은 두 캔을 먹어 치웠다. 날이 밝고 바다에 오줌을 한 발씩 갈긴 뒤에야 슬슬 생수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푼 냄비에 바닷물을 한 바가지 담고, 물이 끓기 시작할 즈음 비닐을 비스듬히 덮었다. 수증기를 비닐 표면에 응고시켜 증류하는 방법이었다. 우리들의 표정엔 생존 전문가 뺨치는 여유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곧 문제가 발생했다. 비닐이 녹아버린 것이다.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화덕이 열기를 제대로 가두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급한 대로 냄비 뚜껑을 덮고 얼마 뒤 뚜껑에 맺힌 물방울을 핥아봤다. 소금물이었다.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애석하게도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전화 찬스를 썼다간 부모님이 배를 타고 구조하러 올 것이 뻔했다. 일단 버티기로 했다. 아직 황도 국물이 남았으니까. 오전에는 방위를 구하고 섬을 탐사하며 미리 계획했던 자잘한 과제를 수행했다. 그 뒤로 종일 낚싯대를 휘둘렀지만 더 이상 수확은 없었다. 설상가상 미끼도 다 떨어졌다. 밤이 되자, 우리에게 남은 건 한 평 남짓의 부동산밖에 없었다. 아무도 말은 안 했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오늘이 무인도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걸.
어스름한 새벽녘,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선장님께 문자를 보냈다. 살려달라고. 정오 지나서 데리러 가겠다는 답장이 왔다. 바닷가에 누워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봤다. 너무 목이 말랐고 입을 열 때마다 포스트잇 때는 소리가 났다. 차가운 환타를 떠올리며 영겁의 시간을 버텼다. 마침내 정오가 됐다. 우리는 항구가 보이는 자갈밭으로 자리를 옮겼다. 선장님이 담배를 다 피우고, 배의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 과정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하지만 배는 삼십 분이 더 지나도 오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다시 선장님의 번호를 누르려던 바로 그 순간 한 친구가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멀리 좁쌀만 한 배가 보였다. 다 같이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박수만 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