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가 어때서?

졸업생의 눈으로 본 대안학교의 이면

by 현우주


나는 초등학교를 제외한 모든 학창 시절을 시골의 대안학교에서 보냈다. 대안학교에 간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신앙 안에서 올바르게 자랐으면 하는 부모님의 바람 때문이고, 둘째는 어렸을 때부터 앓은 틱과 강박증 때문이다. 부모님은 특히 틱 때문에 일반학교에서 따돌림당할 것을 걱정하셨다. 그런 맥락에서 나를 대안학교에 보낸 선택은 탁월한 선견지명이었다. 내가 다닌 대안학교는 학생 수 대비 교사 수가 많아 전반적인 관리·감독이 잘 되었고, 딱히 심성이 악한 친구도 없어 관계로부터 마음 상할 일은 없었다. 다행히 부모님의 첫 번째 바람도 이뤄졌다. 믿음 안에서, 속세의 온갖 안 좋은 것들과 단절되어 올바르게 자랐다. 당시에 나는 너무 어려 따로 무엇을 바란 건 없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참 행복한 학창 시절이었다.


대안학교의 장점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평생 함께 할 좋은 친구들을 만난 점을 말할 것 같다. 졸업한 지 7년이 다 되어가지만, 다들 취업 준비로 바쁜 요즘에도 주에 한 번씩은 만난다. 만나면 잠깐 취업과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나는 듣기만 한다) 자연스레 그 시절 추억을 꺼낸다. 몇 번이나 들었지만 다시 들어도 재밌는 사연들. 아마 환갑이 될 때까지 안줏거리는 충분할 것 같다. 한바탕 웃고 나면 대안학교에 대한 진지한 담론이 시작된다. 다들 결혼을 염두에 둬야 할 나이가 되어서 그런지, 요즘엔 자녀를 대안학교에 보내고 싶냐는 질문이 자주 나온다. '보내고 싶지만 돈이 없다'가 중론이다. 이런저런 단점들 때문에 보내기 싫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안학교를 다녀본 입장에서는 장·단점을 잘 헤아려 (자녀를 보낼지 말지)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사회에서 만난, 대안학교를 고민하는 학부모들의 질문을 들어보면 대안교육의 좋은 면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중, 고등학교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다. 대안학교에 보내면 아이의 인생도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다. 내 경험을 일반화할 수도 없고 우리 학교가 다른 대안학교를 잘 대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글을 통해 내가 보고 느낀 대안학교의 장·단점을 최대한 풀어보려 한다.


대안교육의 좋은 면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photo by @pixabay


Q. 입학 경쟁률은 어느 정도인가


나는 2008년 대안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입학할 당시에는 (이유는 잘 모르지만) 대안학교 열풍이 불던 시기라 60명 신입생을 뽑는데 무려 300명이 넘는 학생이 지원했다. 1차는 서류 전형이었고, 2차는 3박 4일 동안 교사들과 같이 지내는 선발 캠프였다. 오래전 일이라 자세히는 기억 안 나지만 부모 면접과 학생 면점을 따로 보고, 배꼽인사를 꼬박꼬박 하고, TOEIC BRIDGE라는 영어 시험을 본 건 기억난다. 한겨울에 5km 행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선생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만장일치로 선발 여부를 결정했다고 한다. (당시 같은 방을 쓴 네 명의 친구 중 세 명이 붙었고,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 징글징글한 사이가 되었다) 요즘 들리는 소문으로는 대안교육 열풍이 식어 정원이 미달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Q. 대학 입시 결과는 어떤가


모든 학부모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이다. 나는 '대안교육은 있지만 대안사회는 없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대안교육을 받아도 결국 수능을 봐야 한다. 목적이 다르기에 6년간 입시를 준비한 또래들과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대안학교의 장점으로 자율학습 능력을 보통 꼽지만, 주변에 PC방이나 노래방이 없어 그나마 공부를 하게 되는 거지 대충 던져놔도 공부를 하는 학생이 되는 건 아니다. 다들 자유 시간만 되면 교실 문을 박차고 공놀이를 하러 갔다. 입시만 놓고 봤을 때 교육 수준도 낮았다. 인격이 훌륭한 교사들이 많았지만, 사범대나 교육학과를 나온 경우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예를 들어 나는 생물 I을 대학생 선배에게 배웠다. 부족한 공부는 인강으로 메꿨지만, 그마저도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여의치 않았다. 핑계라는 말도 맞다. 대학을 잘 간 케이스도 많은 걸 보면 결국 자기 하기 나름이다. 다만 전반적인 경향성과 그 원인을 추측해본 것뿐이다.


나는 서강대학교에 입학했다. 물론 첫 수능은 처참하게 말아먹었고, 일 년 뒤 재수학원에서 반수를 했다. 대성학원에서 또래들의 학업 열기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권위적이고 딱딱한 수업도, 전후좌우를 모두 경쟁하는 적으로 인식하는 문화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대안학교에서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몰라 닥치는 대로 문제를 풀며 얻은 기본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 언수외탐 33433이던 성적은 11234가 되었고 (뒤로 갈수록 당이 떨어져서 ^^:::) 수리 논술 전형으로 당당히 문을 부쉈다. 대안학교를 다닐 당시 우리 학년에는 이과생이 총 다섯 명이었는데, 매번 1등을 하던 친구는 첫 입시에서 성균관대를 부쉈고 지금은 KAIST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한 학년 아래 후배는 언어 영역에서만 두 문제를 틀려 서울대에 입학했고, 우리 학교의 문화유산이 되었다.


대안교육은 있어도 대안사회는 없다 photo by @pixabay


Q. 무엇이 제일 힘들었는가


구타 및 가혹행위라 하겠다. 남자 기숙사는 4인 1실이었다. 보통 선후배를 섞어서 한 방을 구성해주는데, 모든 부조리가 여기서 일어난다. 처음 입학했을 때 중3 선배들 중 악질이 많았다. 잔실수가 많았기에 갖은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목이 졸린 적도 있고, 엎드린 상태로 채여 허벅지가 부르튼 적도 있다. 그것이 당연한 줄 알고 실컷 맞으며 버텼다. 그 나잇대에서는 학교 폭력이 없을 수 없다. 선배들의 괴롭힘 때문에 시달린 건 중1이 마지막이었다. 더 큰 문제는 교사들의 체벌이었다. 서울시 교육청은 2010년 11월 체벌을 전면적으로 금지했다. 대안학교는 정부의 인가를 받지 않은 학교라 교육부의 지침을 따를 필요가 없지만, 그런 지침도 없던 시절이라 체벌이 많았다. (다른 대안학교의 사정도 비슷했다고 한다. 군대 동기가 다닌 대안학교 기숙사에는 '주님 없는 방'이라는 체벌실이 따로 있었다고)


나는 부모 외 어느 누구도 자녀에게 손댈 수 없다는 입장이라 당시 교사들의 체벌이 잘못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그들의 조급한 마음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대학 등록금만큼이나 비싼 학비를 받는 만큼 아이들을 더 잘 키워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지 않았을까. 어느 사춘기 아이를 데려와도 말을 안 듣는 건 똑같다. 그들의 잘못은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을 택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인격과 영성을 표방한 학교에서. 아무튼 고등학생이 되고 전국적으로 체벌을 금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며 대안학교 내 체벌도 사라졌다. 유명 인사의 학교 폭력 이력이 여러 번 터지며 아이들의 경각심도 높아졌다. 따라서 이제는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하다. 다만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대안한교는 집과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힘든 일(특히 대인관계에서)이 있어도 일단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결국 그러지 못해 학교를 떠난 친구들도 수두룩하다.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중요하다.


그들의 잘못은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을 택했다는 점 photo by @pixabay


Q. 사회로 나와서는 어떤가


두 가지 질문이 동시에 담겨 있다. (1) 사회에서 대안학교 출신을 어떻게 보는가 (2) 사회에서 대안학교 출신은 또래와 다른 모습인가. (1) 신기하게 쳐다본다. 나는 남들이 고등학교에 대해 물을 때면 우선 검정고시를 봤다 말해 관심을 돋운 뒤 대안학교 출신임을 밝힌다. 예전과 달리 '대안학교는 문제아만 가는 곳'이라고 보진 않고 다만 뭔가 다른 배경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뒤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면접관들이 많이 궁금해한다고 한다.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 (2) 다른 점이라 할 만한 건 딱히 없다. 대안학교에서 지낼 당시의 모습과 정반대로 자란 경우가 많다. 술과 담배를 죄악시하고 엄격하게 금지하던 환경에서 벗어나니, 갑자기 주어진 자유를 주체할 수 없는 것이다. 몰래 나쁜 짓을 일삼던 친구들이 오히려 더 바른(?) 청년이 되었다.



Q. 자녀를 대안학교에 보낼 텐가


감당할 만한 경제력이 된다면 보내고 싶다. 위에서 단점만 쭉 나열했지만, 대안학교에서 얻은 건 그것들을 모두 덮고도 남는다. 좋은 친구들과 만든 좋은 추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하나 더, 대안교육을 받았기에 한 발 물러서서 평범한 인생의 단계에 대해 반추하게 되는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인생의 평범한 단계란 좋은 대학, 좋은 직장, 행복한 가정, 행복한 노후로 이어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물론 앞만 보고 노력해서 그것을 이뤄내는 일도 축복이지만 더 오래, 더 깊이 진로를 고민하는 일도 중요하다. 아직 졸업을 한참 앞둔 학생 신분이지만 벌써부터 주변 친구들과 삶의 노선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낀다.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나도 멋있는 삶을 살 거라 믿는다.


대안학교를 보낸다고 해서 부모의 역할이 끝나지 않는다 photo by @pixabay


E. 글을 마치며


그동안 받은 질문을 토대로 자문자답을 해봤다.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만, 아쉽게도 내가 대안학교를 다닌 건 무려 십수 년 전이다. 마치 아빠에게 군대 이야기 듣는 것처럼 뒤쳐진 조언 아닐까 걱정도 된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은 건, 대안학교의 환경이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더 나빠지지는 않았을 거라는 점이다. 내가 다닌 6년 동안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입학할 때와 졸업할 때를 비교하면 몰라보게 발전했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단점들은 '나 때는 이랬다' 정도의 후일담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자녀를 대안학교에 보내려면 부모도 그만한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멀리 대안학교를 보낸다고 해서 부모의 역할이 끝나지 않는다. 우리 부모님만 해도 일 년에 수십 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학교를 찾아 우리(동생도 같이 학교를 다녔다)를 챙겼다. 대안학교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전에, 그런 부모님의 헌신이 있었기에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밝은 모습으로 자랄 수 있었다. 그래서 진부하지만 감사하다는 말로 글을 마친다.

keyword
현우주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경제부 직업 기자 프로필
팔로워 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