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스머프 마을

오래도록 무너지지 않기를

by 현우주


분당의 한 수학 학원에서 알바를 한 적 있다. 거창한 건 아니고, 초등학교 학생들의 문제 풀이를 도와주고 채점해주는 일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알아서 문제를 풀었고, 못하는 학생이 물어보는 문제는 어렵지 않았기에 나름 편한 알바였다. 하지만 원장님이 지독한 원칙주의자였고, 학원만의 특이한 채점 방식이 낯설어 처음에는 애 좀 먹었다. 맞은 문제는 빨간 동그라미, 틀린 문제는 찍. 여기까지는 평소 알던 대로였지만, 두 번 이상 틀리거나, 교사의 도움을 받아 맞춘 문제엔 파란색 동그라미를 쳐야 했다.


학생들은 파란 동그라미를 무서워했다. 하나라도 파란 동그라미가 그려지는 순간, 페레로쉐 초콜릿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색연필로 손만 뻗을 때마다 학생들은 한 번만 기회를 달라며 사정했다. 내 눈치를 살살 봐가며 답을 고치고 나면, 약해진 마음은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주곤 했다. 학생들이 유독 괴로워 한 건 서술형 문제였다. 이를테면 '네모 곱하기 4는 세모인 방정식에 걸맞은 이야기를 만들어보세요'라는 문제였다. 서술형은 답이 하나가 아니므로 만만하게 보일 수 있지만, 깐깐한 원장님의 마음에 드는 건 다른 문제였다. 위에 예시로 든 문제는 페레로쉐 초콜릿을 목전에 둔 한 여학생의 마지막 관문이기도 했다.


벌써 페이지가 뜯어져 나갈 정도로 수십 번 지웠다 고쳤지만, 원장님이 옆 반에서 바쁜 틈을 타 모른 척해주었다. '네모는 자동차, 세모는 자동차 바퀴 수'라 하면 끝날 것을. 되려 내가 답답했고 내가 안절부절못했다. 손에는 이미 주머니 속 파란색 색연필을 쥐어져 있었다. 끝내 학생이 들고 나온 답은 이러했다.


'어느 마을(□)에 스머프가 살고 있다. 옆 마을(△)에는 4배나 많은 스머프가 살고 있다'


답을 보고 순간 벙쪘다. 엄밀히 따지자면 답이 될 순 있었지만, 일상생활에서 찾을 수 있는 일반적인 대응관계를 찾는 문제였기에 적절하지 않은 답이었다. 스머프가 이사 가면 어떻게 되냐고 묻자, 스머프는 그러지 않는다고 당돌하게 받아쳤다. 손으로 슬쩍 지우개를 집어 들길래 그냥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주었다. 학생은 뛰쳐나가 페레로쉐 초콜릿을 받은 뒤 잽싸게 입에 넣었다. 이번엔 내가 원장님의 질책을 받아칠 준비를 해야 했다.



여전히 모르겠다. 나는 그 학생에게 답이 틀린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학교 시험에 같은 답을 적는다면 틀릴 게 뻔하니 다른 답을 찾으라고 돌려보내야 했다. 스머프가 이사 가면 방정식도 망가지니. 애초에 그런 세계는 없으니 말이다.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수학 개념을 정리해 발표하는 과제였는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을 이용해 일차변환을 나타내 보였다. 조잡했던 건 인정하지만, 혹평을 받으니 수학에 대한 흥미도 뚝 떨어졌다. 다들 이렇게 수학에 흥미를 잃어간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페레로쉐 초콜릿을 맛나게 먹은 학생은 결국 '별 곱하기 8은 하트'라는 문제를 풀지 못했다. '문어 다리는 몇 개'라고 조용히 귀띔해 주었다.


이제부터 6년 혹은 그 이상. 그 학생은 더 정확한 정답을 내도록 강요받을 것이다. 페레로쉐 초콜릿은 부모의 인정, 학벌 등 더 달콤한 무언가로 변해갈 것이고. 그러면서 공부에 흥미를 잃고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포기해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틀려도 괜찮고 멀리 돌아가도 상관없다. 다만 마음속 어딘가 세운 스머프 마을은 오래도록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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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주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경제부 직업 기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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