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자기연민에 대하여

병든 마음을 위한 백신

by 현우주


며칠 전 이어령 전 장관의 인터뷰를 읽었다. 코로나19가 휩쓴 지난 1년에 대한 성찰을 담은 인터뷰였다. 예리한 통찰이 많았는데, 그중 '호저(고슴도치류)의 딜레마'에 관한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다. 그는 말했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보편화되며 억지로 혼자 있게 된 사람은 더욱 외로워지고, 억지로 같이 있게 된 사람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됐습니다." 사회적 고립이 야기한 여러 감정의 충돌로 가정불화와 이혼이 급증하는 현실을 진단한 대목이었다. 정말 그랬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감정의 요동을 경험하고 있었다. 평소 관계의 거리를 적당하게 잘 유지한 사람일수록, 억지로 같이 있게 됐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분노와 자기연민으로 점철된 내 일상의 감정들은 뾰족한 가시가 되어 부모님을 찔렀다. 그리 넓지도 않은 집에서 부모님은 내 가시를 피하느라 부엌에서 마루로, 마루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녔다. 이마저도 과장된 배려라 여기고 불편해하는 내 꼬락서니를 보며 사회적 고립의 위험성을 새삼 실감했다. 아빠는 운동을 하며, 엄마는 신앙생활을 하며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을 다스렸다. 나만 뜨거운 두부를 삼킨 아이처럼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물론 모든 문제를 코로나 탓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 이전에도 나는 쉽게 화를 내고 멘탈이 무너지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코로나를 명분으로 삼아 감정의 분출을 정당화하려는 건지도 몰랐다. 내면을 진찰할 필요가 있었다. 방치된 감정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니 말이다.


예전에 체스를 두는 이유에 관해 글을 쓴 적 있다. 왜 경기에서 질 때마다 화가 나는지에 대해서도 나름의 답을 내렸다. 좀처럼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는 세상에서 체스판은 그나마 통제할 수 있는 세계인데, 이것마저 무너질 때 분노가 치민다는 것이었다. 삶의 통제 권력을 잃은 한심한 자신을 향한 분노였다. 주체성을 되찾지 않는 한 해결될 수 없는 문제. 코로나는 일말의 통제력마저 뺏어가 실타래를 더욱 복잡하게 꼬아놨다. 반면 자기연민은 코로나 이전엔 없던 감정이다. 며칠 전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다 내가 지독한 자기연민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내가 너무 불쌍해... 부모님이 쓴소리를 하기 전에 스스로 회초리를 들어 종아리를 세차게 내리쳤다. 그러면 부모님은 위로를 해주었고, 나는 만족했다. 연민도 전염성이 있었다.


불쌍한 이유는 많았다. 친구들은 하나둘 취업에 성공하는데, 나는 제때 졸업이나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다시 오지 않을 20대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고 그렇다고 학점이 높지도 않았다. 금연이나 다이어트 다짐은 매번 실패했다. 흔한 연애도 못해봤다. 뇌는 꼭 이럴 때 창의성을 발휘했다. 연민의 근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직 매복 사랑니가 하나 남아있다, 코맹맹이 목소리가 싫다, 이런 사소한 이유도 때론 치명적일 수 있었다. 어두침침한 방에서 나는 끊임없이 내면으로 침잠했다. 감정의 둑이 터지면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코로나로 확실히 알게 됐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 끝없이 우울에 빠지는 존재이며,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잠시 잊을 뿐이라고. 그런 감정은 홀로 짊어질 수 없으며, 타인을 필요로 한다고.


마침내 바이러스가 물러나고 일상을 회복하면 감정의 파고도 낮아질까. 밖으로 나가 다시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면 뾰족했던 가시도 무뎌질까. 코로나가 풍토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데, 분노와 자기연민의 감정도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뿌리내린 채 풍토병으로 남진 않을까. 엄마는 내게 감사가 없다고 했다. 부족한 부분만 바라보니 그런 감정에 휘둘리는 거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동안 감사는 현재에 안주하게 만드는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왔으나 내 스스로와 거리두는 법을 잊은 요즘엔 필요한 성싶다.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을 때, 한없이 자신이 불쌍해질 때, 한 번쯤은 뒤를 돌아보자. 힘든 데도 꿋꿋이 버텨주어서 고맙다고, 벌써 이만큼 올라왔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말해주자. 감사는 병든 마음을 위한 백신이라는 말이 마냥 유치하게 들리지 않는 요즘이다. 우리네 삶에 감사가 회복되길 바란다. 집단 면역으로 마음의 병을 물리칠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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