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그 뒷이야기
제 브런치 ID ‘상처입은치유자(Wounded Healer)’때문에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도대체 무슨 상처를 그렇게 많이 입으셨나요?”
그럴 때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곤 합니다.
‘상처를 입어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책으로만 배운 지식이나 말뿐인 위로는 왠지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처럼 느껴지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 자신에게 시선을 돌려 제 안에 있는 상처들을 먼저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꽤나 많은 흉터가 남아 있더군요.
마음의 상처는 대부분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선천적, 유전적 요인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고통들, 사회적 편견이나 열악한 성장 배경 같은 주변 환경 변수들, 그리고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는 자기 비난처럼 말이죠.
이러한 상처들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흔적 없이 아물어버리는 가벼운 ‘찰과상(Scratch)’으로 그칩니다. 하지만 때로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흉터(Scar)’를 남기기도 하고, 특정한 상황이나 삶의 전반에 지속적인 고통을 주는 ‘트라우마(Trauma)’로 남기도 합니다. 제 안에도 그런 상처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스스로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되면서 타인의 아픔을 글로 치유하고 싶다는 마음 한편에는, 과연 글이라는 것이 어디까지 치유의 힘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저는 제 글이 누군가에게 “아,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라는 공감과 위로를 전해주길 바랐습니다. 또한 독자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스스로 변화할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싶었습니다.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복잡하게 얽힌 제 내면의 감정들을 객관화하고 정리하는 작업이었고, 어쩌면 이 과정이 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첫걸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글만으로 모든 상처가 완벽하게 치유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 글이 누군가에게는 '어둠 속 작은 빛'이 되어, 스스로 치유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용기와 위로, 영감을 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나온 삶속에서 상처받고 또 상처를 주면서, 저는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처럼 무기력함에 괴로워하기도 했고, 스스로에게 심하게 채찍질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어떠한 계기를 통해 ‘상처입은치유자’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며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본질의 문제는 크기와 관계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거대한 바다라도 그 본질은 ‘짠맛’이고, 그 짠맛은 단 한 방울의 바닷물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됩니다. 태산이라는 거대한 존재도 결국 티끌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고, 인고의 세월을 통해 형태가 바뀌는 ‘돌들의 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티끌만한 믿음’이 비록 작아 보여도, 그 안에는 태산을 만들고 옮길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이 담겨 있습니다. ‘작은 물방울’ 하나가 바다의 본질인 짠맛을 담아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제가 쓴 글 한 편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용기를 주고, 아픈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한 줄기 빛'이나 '소금 한 톨'이 거대한 태양과 바다보다 그 본질의 가치가 낮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녁노을이 아침 햇살보다 더 아름답거나 가치 있는 것이 아니듯 말입니다.
‘한 방울의 물방울’ 안에 제가 세상을 살아가며 얻은 작은 지혜와 경험을 담아내려고 합니다. 목마른 이에게 갈증을 해소하는 위로와 공감을 주고 싶습니다. 스스로 변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상처입은치유자’라는 거창한 필명을 쓰는 이유이자, 글을 쓰는 소박한 이유이며, 어쩌면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