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큰 이유

꼰대아빠와 새내기딸의 대화

by 상처입은치유자

워커홀릭 아빠와 대학 새내기 딸이 나눌 수 있는 대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편의점에 같이 야식을 사러 가거나, 집 주변을 짧게 산책하는 것이 전부인 날이 많습니다. 그래도 그 짧은 시간이 아빠에게는 꽤 소중합니다.

며칠 전 산책길에서 나눈 대화를 기록해 둡니다.


"딸,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말 들어봤어?"

딸이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전체가 부분의 합인데 어떻게 더 클 수 있어?"

수학적으로는 틀린 말입니다. 그런데 아빠는 이 말을 세 가지 경우에 씁니다.


첫 번째.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빙산은 수면 위보다 수면 아래가 훨씬 큽니다. 우주의 대부분은 우리가 보지도, 측정하지도 못하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겉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만으로 그 사람을 정의하면 편견에 빠집니다. "보이지 않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그 편견을 예방하는 힘이 생깁니다.

딸은 우주보다 빙산 쪽이 이해하기 쉬웠다고 했습니다 ~.~


두 번째. 실수와 허수, 복소수의 세계

아빠가 하는 일이 AI와 데이터를 다루는 것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얘기가 나왔습니다. 데이터를 단순히 '존재하는 값'으로만 보지 않고, 보이는 현상(실수)과 보이지 않는 의도와 맥락(허수)을 하나의 수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고등학교 때 배운 ‘복소수’ 개념이 바로 그것입니다.

"말의 맥락이 없다", "왜 그렇게 눈치가 없냐"는 말이 바로 그 허수의 영역으로 비유해볼 수 있습니다. 문장과 상황 안에 녹아있지만, 콕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


딸이 말했습니다. "내 친구 중에도 아무리 눈치를 줘도 끝까지 모르는 애가 있어."

아빠는 말했습니다. "그 친구도 아빠처럼 눈치가 없나보다."

딸이 웃었습니다. "빙고."

이 대화에서 아빠가 저격당했는지, 공감을 받은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세 번째. 밝을 明, 그리고 소금

'밝을 명(明)'. 해(日)와 달(月)이 결합된 이 글자는 양(陽)과 음(陰)을 한 글자 안에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어두운 면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진짜 밝음이라는 뜻입니다. 너무 밝고 맑은 쪽만 보는 것은 절반만 보는 것입니다.

소금 이야기도 했습니다. 소금의 본질은 짠맛입니다. 바닷물 한 방울과 바다의 크기는 비교할 수 없지만, 소금이 자신의 본질을 깨달으면 한 방울의 바닷물도 바다와 같아집니다. 자신의 본질을 모르면, 소금물을 아무리 많이 모아도 바다가 되지 못합니다.


딸이 물었습니다. "아빠는 그런 얘기를 어디서 봤어? 책에서 아님 유투브?"

"아니, 그냥 아빠가 생각해본 거야. 지금 내가 하는 AI 알고리즘 개발도 결국 전체 상태는 부분의 합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걸 기본으로 하거든.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몰라."


딸이 말했습니다.

"음, 좀 어렵다. 아빠는 어려운 말 쓰지 말고, 상대방과 공감되는 얘기를 하고 듣는 연습 좀 더 해. 안 그러면 꼰대 소리 들어."


아빠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러게, 근데 그게 잘 안 되네."


딸이 곧 대학에 입학합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 경험들 속에서 오늘 나눈 이야기가 한 번쯤 스쳐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꼰대 아빠의 마음이란 게 다 그런 것이겠지요.

부분의 합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우리 사이에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


이 글은 진짜 있었던 대화입니다. 딸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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