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오푸스홀딩스(Grand Opus Holdings)의 진짜(?)셈법
1. 최근 신세계와 알리바바의 합작법인 '그랜드 오푸스 홀딩스'의 출범을 두고 업계가 뜨겁습니다. 대다수의 시선은 쿠팡과 네이버가 양분하고 있는 이커머스 시장에서의 점유율 전쟁, 즉 '누가 더 싸게 파느냐'의 싸움으로 이 사안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이번 합작은 단순한 쇼핑앱의 경쟁력 강화를 넘어선 알리바바의 더 큰 그림, 즉 '한국형 라이프스타일 슈퍼앱' 구축을 위한 거대한 실험으로 보입니다.
2. 최근 알리익스프레스 앱 내에 조용히, 그러나 매우 이질적으로 '여행' 탭이 신설됐습니다. 공산품을 파는 커머스 앱이 무형의 서비스인 항공권과 숙박을 다룬다? 이는 알리바바가 한국 시장을 단순한 직구 상품 판매처가 아닌,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진화시키겠다는 의지의 테스트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 슈퍼앱 전략에는 딜레마가 있죠. 여행 상품은 마진은 높지만, 구매 빈도가 극도로 낮은데 쇼핑 그 행위 자체도 매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슈퍼앱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이 저빈도 서비스를 받쳐줄 강력한 '고빈도' 트래픽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무엇이 그를 가능케 하는가. 중국에선 이미 그 답이 나왔습니다. 바로 '음식 배달'입니다.
3. 중국 메이투안의 사례를 뜯어보면 알리바바의 셈법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메이투안은 중국 음식 배달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배달 순이익률은 3% 내외에 불과합니다. 인건비와 시스템 비용을 빼면 남는 게 없는 장사죠. 그럼에도 그들이 배달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배달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트래픽 깔대기'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세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앱을 켜게 만들어 트래픽을 모으고, 거기서 파생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호텔이나 여행, 금융 상품을 팔아 진짜 수익을 내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한 발 더 욕심을 내서 메이투안은 퀵서비스를 런칭한 거고, 이 트래픽 깔데기가 탐났던 알리바바는 장판회장을 앞세워 배달 서비스에 10조를 태워 역공을 한 겁니다. 알리바바가 한국에서도 여행 탭을 런칭한 시점에서, 내부 전략팀은 이 생태계의 완성을 위해 '배달 서비스'의 도입을 치열하게 고민했을 것입니다.
4. 이번 신세계와의 합작법인의 인사 구조는 이러한 알리바바가 한국시장을 중요하게 보고 있음이 확 들어나는 배치입니다. 한국으로 파견된 라자다(Lazada) 출신의 최고위 임원들은 알리바바의 황태자 '장판(Jiang Fan)'의 최측근들입니다. 장판은 올해 메이투안과의 한 판 승부에서 이제 알리바바는 잠자는 사자가 아니다를 화끈하게 보여준 전투의 신입니다. 쇼핑과 배달, 여행 등의 서비스를 기술적으로 통합해 시너지를 낸 경험이 있는 인물이고 그의 복심들이 한국 시장을 맡았다는 것은, 향후 알리익스프레스가 단순한 이커머스 앱으로 남지 않고 '커머스+로컬 서비스' 융합 모델을 한국에 이식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읽힙니다.
5. 알리바바가 신세계와 손을 잡은 이상, 이마트의 오프라인 거점과 알리바바의 물류 노하우를 결합한 '퀵커머스(즉시 장보기)' 대약진은 정해진 수순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물류 관점에서 보면 퀵커머스와 음식 배달은 '라스트마일'이라는 동일한 뿌리를 공유합니다. 라이더가 30분 내에 우유를 배달하나, 치킨을 배달하나 시스템의 로직은 90% 이상 일치합니다. 즉, 알리바바가 퀵커머스로 한국 내 근거리 물류망을 구축하는 순간, 음식 배달로의 확장은 기술적 장벽이 거의 없는 '선택의 문제'가 된다는 뜻입니다. 퀵커머스로 길을 닦고, 그 위에 배달이라는 고빈도 서비스를 얹는 시나리오,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확장 경로일 것입니다.
6. 하지만 '고민'이 곧장 '실행'으로 이어지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알리바바 역시 한국 시장의 특수성을 면밀히 분석했을 것입니다. 중국과 한국의 노동시장은 아주 다르고, 각종 노동 비용이 상승하고 있는 시장입니다. 알리바바가 본토에서 성공했던 '저비용 고효율'의 물량 공세가 통하기 어려운 구조죠. 게다가 최근 불거진 데이터 안보에 대한 정서적 반감, 플랫폼 규제 이슈까지 고려한다면, 직접적인 배달 앱 런칭은 득보다 실이 큰 모험일 수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정책적, 사회적 비용 때문에 주판알을 튕기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7. 알리바바가 배달앱을 하냐 안하냐와는 달리 이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은, 중국 테크 기업의 한국 진출이 이제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과거 텐센트가 카카오나 각종 게임사에 지분을 투자하며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이나, 샤오미가 가성비 제품을 파는 수준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지금의 알리바바는 직접 법인을 세우고, 조직을 이식하고, 운영에 뛰어드는 '플레이어'로서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자본이 아니라, 중국 내 치열한 적자생존에서 살아남은 슈퍼앱의 운영 노하우와 압도적인 기술 스택을 무기로 들고 왔습니다.
8. 이제 국내 IT 기업들에게도 위기의 본질이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좋은 사람들을 모아 잘 운영하는'수성 전략'만으로는 이 파고를 넘기 힘들어 보입니다. 퀵커머스에서 시작해 배달, 여행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융합 전략'에 맞서기 위해서는, 기존의 문법을 깨는 차원이 다른 대응이 필요합니다. 막연한 '공포'나 '무시'는 거두고, 냉철한 '학습'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알리바바가 중국이라는 거대한 전쟁터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 치열한 생존 본능과 전략적 유연성을 뼛속까지 파악해야 합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위태롭지 않듯, 그들의 생리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기업들이 이 거대한 파도 앞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