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P 굿즈와 규모의 경제

콘텐츠와 제조업 그 사이의 전쟁

by TY

1. 엠젯패밀리는 글로벌 시장에서 콘텐츠 IP 기획, 제작 및 MD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2019년 웹툰 IP 굿즈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할 당시, 저는 이 카테고리 역시 콘텐츠 사업의 일환이라 판단했습니다. 웹툰 독자와 굿즈 구매자가 일치하기에, 공장이야 중국에서 생산하면 되고 기획력으로 감성을 만족시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2. 하지만 화려한 IP의 인기와 별개로, 이를 유형의 제품(Goods)으로 수익화하는 과정은 콘텐츠 기획·유통과는 차원이 다른 영역이었습니다. IP 인지도와 굿즈 판매량의 상관관계는 일정하지 않았고, 같은 IP 내에서도 SKU(품목)별 성적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무엇보다 국내 서브컬처 시장은 모수가 너무 작아, 데이터 구축 자체가 큰 의미를 갖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3. 국내 시장의 한계는 명확했습니다. 잘나가는 IP라도 연 1~2회 팝업 스토어를 통한 B2C 운영이 고작이었고, B2B를 통한 상시 판매 및 산업화를 논하기엔 시장 사이즈가 너무 작았습니다. 하나를 잘 팔아도 다음 기획에서 실수하면 수익금이 통째로 악성 재고가 되어 폐기되는,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사업 구조였습니다.


4. 결국 해결책은 시장의 파이를 글로벌로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기획 단계부터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수요를 동시에 계산하고, 팝업과 상시 유통망을 통합 가동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한국 팬이 2,000명이라면 한중일 합산 만 명 이상의 코어 팬덤을 확보할 수 있는 IP, 즉 판권 관계가 명확하면서도 3국 모두에서 메가 히트를 친 ‘승리의 여신: 니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5. 그렇게 1년 반의 준비 끝에 승리의 여신 니케의 랜덤 피규어와 이치방쿠지(랜덤 뽑기)를 3국에 런칭했습니다. 캔뱃지나 아크릴 같은 저단가 굿즈로 시장을 간 본 뒤, 제조 난도가 높고 MOQ(최소주문수량) 부담이 큰 피규어를 본격적으로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글로벌 IP 굿즈 시장을 뚫겠다는 막연한 아이디어가 중국 도매상의 대규모 오더로 치환될 때의 쾌감은!


6. 피규어 제조는 '규모의 경제'가 가장 잔인하게 작동하는 영역입니다. 금형 고정비가 엄청나기에 내수 시장만 보고 덤비면 단가가 치솟거나 퀄리티를 타협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특히 니케처럼 팬덤의 눈높이가 높은 하이엔드 IP에서 퀄리티 타협은 곧 사망 선고입니다. 우리는 "한국의 IP파워 및 기획력, 일본의 거대한 서브컬쳐 시장, 중국의 생산 인프라와 소비력"을 하나로 묶는 단일 파이프라인 구축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7.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 요인은 한국의 수요만으로는 도저히 맞출 수 없는 MOQ를 중국과 일본의 주문량을 합산하여 돌파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한국에서 5천 개 팔릴 제품을 3국 파트너십을 통해 3만 개, 5만 개의 오더로 키웠습니다. 물량이 확보되니 중국 공장의 A급 라인을 배정받을 수 있었고, 단가는 낮추면서 조형 퀄리티는 ‘탈(脫) 굿즈급’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8. 하지만 이 과정은 결코 우아한 콘텐츠 비즈니스가 아니었습니다. 쇳덩이를 깎고 플라스틱을 녹여 배에 싣는, 땀 냄새 나는 '제조 및 유통업'의 본질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미 한국으로 배는 떴는데 중국 공장에서 작업지시서와 달리 제품을 생산했다는 걸 깨닫고, (그렇게 해놓고 국경절 쉬어야하니 2주있다가 재생산 들어간다는 공장...애원과 협박을 동시에하며 어찌어찌 해결ㅜ) 스트레스에 이틀 밤을 지새우며 절감한 것은, 콘텐츠와 달리 실물 제품은 한 번 배를 타면 되돌릴 수 없다는 제조/유통업의 냉혹한 철칙이었습니다. (+ 아 중국이랑 일하면서 잠시 방심했다는 반성)


9. 이제 한국 콘텐츠 IP 비즈니스의 패러다임은 바뀌어야 합니다. 원천 IP는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지만, MD 비즈니스는 여전히 내수 중심의 영세한 구조에 머물러 있습니다. 기획 단계부터 '한중일 단일 시장'을 전제로 수요를 설계해야만 글로벌 톱티어 IP에 걸맞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엠젯패밀리는 이번 성공을 발판으로 단순 교역을 넘어, 한중일 3국의 수요를 동시에 관통하는 '아시아 서브컬처 굿즈의 허브'가 되고자 합니다. 니케 프로젝트는 IP계약부터 제품기획, 디자인, 제작, 영업, 유통까지 모든 걸 직접 했지만 이제 그런 건 좀 힘들고...비슷한 전략의 다양한 파트너사들과 같이 하려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 연락부탁드립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중국 내 한국인 인플루언서 변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