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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Nov 12. 2021

소설<알쏭당>

알송당

창문으로 내리쬐는 아침햇살은 이미 거실 한복판으로 들어와 머물고 있었고 벌레 한 마리도 들어올 틈도 없어 보이는 통나무 사이로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어제 소파에서 그대로 잠들었구나.. 시계를 보니 아침 7시였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의식하지 못한 체 잠을 청한 적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랜만에 숙면을 취한 기분이었다. 검은 소파에 비듬 같은 흰색 부스러기들이 떨어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헉, 머리가 길어서 비듬이 생긴 걸까, 씻어야겠군. 창가에 서서 전경을 바라보니 더 이상 잠을 청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햇살은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었고 새들은 이 나무 저 나무로 무대를 이동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저 오름.. 오름의 이름이 무얼까.. 사장에게 기회를 봐서 물어봐야겠다. 마침 이른 아침부터 정원을 손보느라  펜션 사장은 정신없이 마당과 정원을 오고 가고 있었다. 오름은 마치 눈앞에 있다는 착각을 불러올 만큼 액자 속 그림처럼 훤하게 잘 보였는데 거리로는 대략 몇 킬로는 돼 보였지만 단 한 채의 집이나 나무도 시야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백발이 성성하고 살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뼈대에 딱 달라붙어있는 살 거죽은 성실하게 인생을 살아온 딱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의 남자의 체구였다. 은퇴를 하고 나서 조용한 시골마을에 정착한 걸까, 숙소 화장실을 보니 통나무 펜션은 지어진지 그리 오래되어 보이진 않았다. 어제 차를 타고 들어오며 대략 훍듯이 보았지만 이 마을엔 사람 사는 집이 어림잡아 서너 채 정도밖에 없는 한가로운 마을이었다. 그렇다고 펜션 사장은 오랫동안 농사를 지으면 살아온 농부의 그을려진 거친 피부를 갖고 있지 않았다. 아마도 은퇴 후 펜션 사업을 하기 위해 자리 잡은 듯했다.

"잘 도착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의례 스마트폰을 보던 오랜 습관이 단지 제주에 왔다고 잊어버린 걸까. 어젯밤 그녀의 문자가 온 걸 이제야 확인했다. 잘 도착했다는 인사와 함께 거실에서 보이는 오름의 전경을 사진으로 전송했다.

"와~대박! 너무 이쁜데요~거기가 한 달 동안 묵을 숙소??"

회색 시멘트 덩이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나무로만 만든 집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녹음의 마지막에  둥글게 서있는 오름을 바라보면  그 누구도 반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깐.

"직장만 아니면 저도 가고 싶네요~!"

그녀는 자주 어깨를 돌리고 고개를 아래로 수시로 누르며 인상을 찌그렸다. 어디 몸이 안 좋냐고 물으면 그녀는 그럴 때마다 주말이 되면 주중의 피로가 몰려와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졸업 한 이후엔 잠깐 시에서 운영하는 성악단에서 있었다는 그녀는 결혼하고 난 이후론 아마도 집에서 살림만 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연유는 전남편의 직업이 의사라는 걸 알고 나서였다. 그런 이유로 나는 그녀가 힘든 일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영실과 풍기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것도 한몫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영락없는 고아가 된 영실은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일을 전전했다고 했다. 사람이 살아온 흔적은 어디로 도망가지 않고 그 사람의 얼굴과 자세에 투영되는 법이니깐. 실제로 영실은 회사 일을 똑 부러지게 해서 사장이 아끼는 직원이었다. 헌신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회사는 사장 한 명에 직원 두 명이 일하는 인터넷 쇼핑몰이었는데 직원이 들어오면 단 두 달을 못티는 중노동을 영실은 홈페이지 관리와 제품 파악, 진상고객 상대등 회사 전반의 일을 수년째 책임지고 있었다. 매일 야근으로 늦게 집에 돌아오는 영실에게 이직을 하는 게 어떠냐는 내 말에 영실은 뜻밖에 말을 했었다.

"사장이 불쌍해서 안돼..."

이게 무슨 말이지, 사장이 불쌍하다니.. 처음엔 둘 사이를 오해했었다. 하지만 영실의 회사 앞에서 우연히 사장을 본 후 그런 오해는 사라졌다. 사장은 배가 산더미처럼 부른 영락없는 아저씨였다.

영실과 사장은 몇년간의 회사의 부침을 같이 겪으며 사장의 집안 사정까지 다 알고 있는 허물없는 사이였다. 과거 영실의 자리에서 일했던 실장에게 거래처를 뺏기고 파혼당한 사실을 알고 나서 사장을 동정했던 걸까. 영실의 회사 얘기를 듣다 보면 사장이 영실을 얼마나 믿고 일을 맡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누가 봐도 가려리고 깡 마른 외형을 갖고 있었지만 누구보다 강한 여자였다.

"나 암에 걸렸어, 종양이 20센티래.."

"거짓말"

영실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만도 했다. 불과 몇 개월 전에 속초여행을 같이 갔었으니깐. 그때 나는 여행을 갔다 와서 영실과 헤어질  생각이었다. 이별여행이었다. 영실만 모르는.

불과 몇 개월 전에 헤어진 남자 친구에 대한 예의였을까. 영실은 병문안을 오고 싶어 했다. 병원 배드에 누워 그녀가 병문안을 오는 상상을 했다. 중환자실에 항상 곁을 지키던 엄마에게 그녀를 보여줄 자신이 없던 걸까.

엄마는 부모 없이 할머니와 자란 영실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물론 영실을 만나본 적도 없었고 나를 통해 들은 얘기로만 판단할 뿐이었다. 한 번도 만나는 여자 친구에 대한 얘길 하질 않았는데 영실에 대해 말한 이유는 결혼이란 부조리한 제도를 기꺼이 함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유일한 여자 친구였기 때문이겠지.

 철제 자동문이 열리고  여러 명의 의사들에 둘러싸여 차가운 수술실 배드에 누웠을 때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양쪽 턱이 터질 만큼 이를 다물면 무언가 이겨낼 수 있는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그때 알았다. 유난히 근육이 발달된 영실의 각진 턱은 수시로 힘을 주느라 생긴 삶의 흔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수술실에서 마취제를 맞고 눈을 감는 순간에도 아, 나는 영실을 떠올리고 있구나..라는 흐릿한 생각이 떠올랐다.

"마음 같아선 일을 때려치우고 글을 쓰고 싶어요"

그래, 어쩌면 그녀는 남들이 어렵지 않게 하는 일을 어려워하고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을 쉽게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남달랐으니깐, 그녀의 글도 남달랐지만 그녀가 흥겨울 때 하는 과한 제스처 그리고 탈색한 노란 머리와 어울리지 않는 보라색 안경, 무엇보다 오랜 세월 굳어진 등과는 상반되는 세상을 처음 대하는 소녀 같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었다.

"일을 무리해서 꼭 해야 하나요?"

내가 생각하기엔 그녀는 일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굳이 어울리지 않는 일을 무리해서 병을 얻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으니깐. 한 번은 그녀가 직장에서의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다. 작업반장이라는 작자가 초과근무나 함께하는 작업에서 자신을 제외하고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도 능력이 있고 열심히 일하는데 무시당하고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안 봐도 대충 일을 잘하는 사람은 아닐걸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차분하게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너무 억울해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어차피 돈만 벌려고 하는 일이잔아요, 괜히 일 잘해서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 피곤하기만 하죠.. 저 보세요 하하, 열심히 일하다가 암에 걸리면 누가 좋은 일인가요"

암에 걸리고 나서 적재적소에 암 얘길 하면 잘 먹힌다는 건 아프고 나서의 또 다른 좋은 점이다. 그녀는 인정받고 싶어 했다. 부모와 형제로부터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뭐 나도 그랬으니깐. 섬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닌 이상 여럿과 다 불어 사는 현대인은 타인에게 인정을 받아야 존재로서 살아있다고 느끼는 게 당연한 마음이겠지. 하지만 그것을 위해 고통과 아픔을 감수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저기요~계세요?"

문밖에서 펜션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와는 사뭇 다른 공손한 목소리였다. 문을 열자 펜션 사장이 바구니에 몇 개의 고추를 두 손에 들고 서 있었다.

"어제는 죄송합니다, 하, 누가 온다는 말을 못 들어서, 이거 꽈리고추인데 함 잡사봐요~"

아버지 또래의 늙은 남자가 고개를 수그리고 사과를 하는데 안 받아줄 수가 없었다. 여기서 한 달 동안 지내려면 어쨌든 자주 마주칠 테니깐.

"아.. 네.."

어색하게 고추를 받아 들고 문을 닫자 문밖에 "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하세요"라는 말이 들려왔다.

꽈리고추.. 첨 듣는 고추의 이름이었다. 아 맞다. 강아지와 오름의 이름을 물어본다는 걸 깜박했다.

어젯밤 먹다 남은 카레에 꽈리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었는데 보통 고추보다 씹는 맛이 있고 달콤하기까지 했다. 마당 앞에 정원은 다양한 꽃들도 있었지만 한평 남짓한 공간에는 각종 쌈채소와 고추 그리고 얇은 파 농사를 함께 짓고 있었다. 역시 직접 재배한 고추라 그런지 맛이 좋았구나.

아침식사를 한 후 마당으로 나갔다. 아름다운 풍경을 창문으로 여과해서 보기보다는 두 눈으로 오롯이 담고 싶었다. 현무암 담장들 사이로 흐드러지게 핀 정원의 노랗고 빨간 꽃들을 보니 펜션 사장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아침부터 새들이 찾아와 노래를 부르고 싶을 정도로 단정하게 잘 꾸며진 정원이었다. 부지런한 펜션 사장은 언제 들어가 있었는지 정원 한가운데서 무언가를 다듬고 있다가 머릴 내밀었다.

"고추 너무 맛있게 먹었습니다~"

"흐흐, 그래요?"

"네 꽈리고추라는 걸 첨 먹어봤는데 밥 한 공기 뚝닥했어요 하하"

밀짚모자를 쓰고 허리를 한참 동안 구부리고 일을 했는지 허리를 주먹으로 두드리던 그는 고추 칭찬에 기분이 좋은지 씩 웃으며 말했다.

"여기 상추, 깻잎도 있으니 필요하면 따서 드세요~"

내 목소릴 들었는지 시바견이 어슬렁 내 앞에 와서 들어 누웠다. 만져달라는 말이었다.

"요놈 이름이 뭔가요?"

"흐흐, 영길이~"

영길이, 사람 이름 같은 개 이름이었다. 근데 입에 딱 붙는 이쁜 이름이었다.

"근데 잘 안 짖네요~ 시바견이 원래 짖음이 없나요?"

녀석은 이제 내 손길에 적응이 됐는지 혓바닥을 헤헤 거리며 만져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잉.. 원래는 안 그랬는데 우울증이 생겨서"

사장은 급하게 대답을 하고 정원에서 마당을 지나 집으로 들어갔다. 우울증이 있어서 주차장에서 그렇게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구나.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개도 우울증이 걸린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 갔다.

"요놈 시바견 맞지? 근데 개도 우울증에 걸려?"

나보다 개를 잘 아는 규호에게 숙소 사진과 함께 영길의 사진을 보냈다.

"하하, 시바견이네, 너무 귀엽다, 걸려, 사람이랑 똑같어"

그리고 이내 팔자 좋구먼 , 부러워 라는 답장이 돌아왔다. 아 맞다. 오름의 이름을 물어보는 걸 깜박했다.

주차장을 보니 렌터카 한대만 있는 걸 보니 모두 외출하고 나와 영길이 뿐이었다.

정원의 나무들과 꽃들이 동쪽 바다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분주하게 움직였다. 다시 맞이하는 제주 바닷바람은 긴 머리칼을 흩날리고 내 마음까지 요동치게 했다. 진정 제주에 도착한 기분이랄까, 어서 짐을 챙겨 어디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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