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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Nov 19. 2021

소설<알쏭당>

냄새

우리는 이미 가장 어둡고 인적이 드문 숲 속의 한가운데를 걷고 있었다. 원래 자연은 푸르름이 제 옷이겠지만 밤이 돼서 어둠에 숨어있는 녹음은 오늘따라 유독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고요하다 못해 은밀하게 흐르는 산책로의 공기는 차갑게 살갗을 파고들어 한낮의 열기를 식혀주고 있었다. 

"제가 옷깃을 잡으면 그땐 숨소리도 내지 말고 멈추어 서야 해요"

갑작스러운 주문에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제 곧 나타날 거예요, 근처에 있어요"

발걸음을 신중하게 내딛으며 허리 숙여 속삭이듯 말하는 나를 그녀는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저기.."

산책로에서 십여 미터 벗어난 풀밭 위에서 아직은 영근 고라니 두 마리가 사이좋게 고갤 숙여 먹이를 찾고 있는 듯했다. 그녀의 옷깃을 살며시 붙잡았다.

"네?"

그녀는 아직 고라니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내 눈짓을 따라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었다. 녀석들은 사람들의 인기척 소릴 귀신같이 알아챘다. 땅으로 집중하고 있던 고개를 들어 큰 귀를 앞 뒤로 움직이며 사방을 주시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녀석들의 귀는 인간의 청력보다 몇십 배는 좋은 안테나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인기척을 내면 멀리서도 알아채고 도망갔다. 

"어머!"

그녀는 이제야 고라니들을 발견했는지 자신도 모르게 놀라며 감탄사를 내질렀다. 그럴 만도 했던 게 고라니가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모르게 잡고 있던 옷깃 대신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이미 고라니들은 그녀의 외마다 소릴 들었는지 귀를 더 쫑긋 세우고 경계를 하는 듯하더니 우릴 발견하자마자 서로 흩어져 순식간에 사라졌다. 

"제가 미리 말했잖아요..."

녀석들은 내가 처음 만났던 새끼 노루의 형이나 누나 같았다. 해 질 녘이면  어미 노루가 앞장서서 팔당대교 하류에서 공원으로 넘어오는 무리들 중에서 녀석들을 봤기 때문이었다. 단독생활을 주로 하는 고라니지만 아직 어려서 그런지 어미 품을 못 떠난 것 같았다. 좀 더 오랫동안 녀석들의 움직임과 생김새를 보지 못해 아쉬웠다.

"그런데 고라니가 나타날 줄 어떻게 안거예요?"

그녀는 도심의 공원에서 한가로이 놀고 있는 고라니의 모습을 본 것보다 녀석들이 나타나기 전에 낌새를 알아챈 나를 더 신기하다는 듯이 물어보았다.

"냄새가 나요~"

그래, 냄새가 먼저 났다. 고라니를 만나기 전에는 항상 그들 특유의 냄새가 멀리서부터 났다. 그녀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어떤 냄새냐고 물었다. 음, 오랫동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 냄새는 고라니를 만날 때마다 어김없이 풍기는 냄새였다. 무언가 시큼하면서 개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다른, 명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산책 중 숲에서 맡던 향과는 확연히 다른 냄새가 코로 침투하듯 찌르면 그땐 고라니가 어딘가에 있다는 신호였다.

그리고 냄새를 맡은 후부터는 발걸음 소릴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면 어둠 속에서 낯익은 큰 귀를 볼 수 있었고 튼실한 뒷모습도 목격됐다.

"무슨 코가 그래요? 혹시 나도?.. 맨날 식당에 있으니깐.. 나한테도 음식물 냄새나는 거 아니죠?

그녀는 내 코부터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다가 이내 무언가 깨친 듯 자신의 옷깃을 코에 갖다 대더니 일그러진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표정이 너무 우스꽝스러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 아차, 계속 손을 잡고 있었네, 그녀의 손은 애석하게도 나보다 거칠고 두툼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몸이 어떻게 힘든 거냐고 규호가 물은 적이 있다. 아마도 암의 진단명과 항암제의 종류는 달라도 항암제를 꼽은 후 나타나는 증세는 강도만 다를 뿐 엇비슷할 것 같다.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제일 곤욕스러웠던 건 매번 오는 식사시간이었다. 식사 때가 되면 한 번도 어기는 일없이 나타나는 식판을 실은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면 이미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 "식사 왔어요"라고 영양사의 말과 함께 식판이 들어오면 코를 찌르는 음식물 냄새와 함께 위에서 무언가 올라올 것 같은 구토 증세가 느껴지면 병실을 나와 휴게실로 갔다. 휴게실은 이미 음식 냄새를 피해 도망 온 환자들이 컵라면에 물을 받아 그것이 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기 전에도 나는 유독 냄새에 민감한 편이었다. 보험영업이라는 직업 특성상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서울과 인근 도시를 , 1호선부터 9호선까지, 거미줄처럼 구불구불 연결된 지하철 노선도에 몸을 실었다. 전 세계 어디에도 서울만큼 지하철 노선이 촘촘히 지나가는 곳이 없을 만큼 나 같은 영업사원에게는 지하철은 최상의 이동수단이었다. 고객과의 약속시간에 도시의 어느 곳이든 정확히 도달하는 지하철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무더운 여름이면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와 오히려 춥게 느껴졌고 추운 겨울날 지하철 플랫폼에서 시린 손을 주머니에 깊게 찔러 넣고 차가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다. 그런 고마운 지하철도 나에게는 괴로운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차에 타자마자 코끝을 찌르는 냄새였다. 신기하게도 지하철 냄새는 호선별로 각기 다른 냄새가 났다. 특히 건조한 겨울이 되면 사람들의 외투에서, 막 회식을 끝내고 승차한 것인지, 담배냄새와 음식 냄새가 스멀스멀 전차 안에 퍼졌다. 아침 출근길은 또 어떤가, 도시의 모든 직장인들이 같은 시간대에 몰린다는 최악의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더욱 출근길을 힘들게 만드는 건 따닥따닥 오밀조밀하게 붙어 이동하면서 어쩔 수 없이 맡게 되는 사람들의 정수리 냄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젊고 늙음을 떠나 겉으로 치장하고 안 하고를 떠나 정수리 냄새는 그 사람의 가장 본연의 냄새 인양 솔직하다. 아마도 아침 출근길이 아니면 타인의 정수리 냄새를 맡을 일은 없을 것이다. 아주 가까운 사이도 정수리 냄새를 맡을 일은 없을 테니깐. 아침 출근길이 업무의 영역의 시작인지 아니면 별개인지는 애매모호하긴 하지만 출근길에서 타인의 정수리 냄새에 흠뻑 취해있다 드디어 사무실에 도착하면 또 다른 냄새가 기다리고 있었다. 동료들의 입냄새와 지하철 안의 정수리 냄새의 공통점은 자신들은 냄새의 정체를 모른다는 것이다. 특히 실적의 압박이 다가오는 월말이면 동료들의 입냄새가 더욱 심해져 대화 도중이나 회의 도중 아무렇지 않게 숨을 참으며 얘길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단순히 술, 담배를 자주 해서 나오는 냄새는 아니었다.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는 동료도 월말만 되면 속 깊은 곳에서 괴로운 냄새가 났다. 시람의 몸은 하나의 우주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극심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으로 마음이 편치 않으면 몸의 깊숙한 곳에서 하수구 같은 냄새가 올라왔다. 처음엔 그 냄새를 혐오했다. 규호도 정기행사처럼 강남역으로 날 찾아오는 날이면 예외 없이 그 냄새를 풍겼다. 다만 규호와 직장동료의 다른 점은 본인도 냄새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어, 알아, 지금 나한테 입냄새가 나지?"

아마도 규호는 숨을 참고 있는 내 표정을 감지하고 한 말이었을 거다. 아무렇지 않게 깜쪽같이 연기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을 같이 한 친구를  속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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