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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Dec 06. 2021

소설<알쏭당>

냄새

"뭐여?~옛 추억에 잠긴 거야?"

벽면을 수놓은 분방한 낙서를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 내게 팀장이 말을 걸어왔다.

"이 동네에 처음 입주해서 거의 20년을 살았으니 여기 토박이였죠~초, 중, 고, 대학교.."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대답하는 걸 보니 , 부모와 같이, 나 또한 이 동네 언저리를 떠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언제 이사 간 거야?"

형언이형이 술을 한잔 넘기며 내게 물었다.

"아마 형이 여기 이사 올 때쯤이겠네, 나랑 바통 터치했네 하하"

"와~야 그럼 부모님 엄청? 응? 아 그럼 지금 사는데도 당연히 응? 너 금수저구나~"

형은 목구멍으로 나오는 말들을 삼키며 눈을 일부러 크게 뜨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큰 시세차익을 보고 팔았고 그 돈으로 집을 사고도 남았을 거라는 그의 말의 속뜻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구태여 부정을 하지 않은 이유는 아무래도 현재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가정 아래 곱게 큰 내가 더 익숙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야~얜 완전 촌놈이여~ 너 학교까지 얼마나 걸어서 갔댔지?"

팀장은 형언이형을 놀리듯 팔꿈치로 치며 말했고 형은 안 그래도 넓은 어깨를 한껏 피며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들으면 놀랄걸? 초등학교를 등교하는데 한 시간을 걸어야 학교에 도착했다니깐?"

"아니, 형이랑 나랑 몇 살 차이라고, 무슨 70년대도 아니고? 하하"

그는 경기도 외곽의, 지금은 개발 호재 지역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온 동네가 논밭과 산등성이로 이루어진 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귄 여자 친구와 20대 중반에 급하게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사회생활의 첫발을 보험회사 영업직에 내딛것이었다. 변변한 대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뚜렷한 직장이 없는 그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믈론 나도 그랬지만, 진입장벽이 낮은 보험회사는 은퇴나 결혼으로 경력이 단절되거나 일은 하고 싶으나 이력서에 이렇다 할 채울 거리가 없는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보험업계가 대량의 설계사를 리크루팅 하는데 어느 보험회사의 사무실을 가도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일명 아줌마 설계사들이 당시에 일을 시작해서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둘은 사석에서는 서로 놀리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팀장의 말투에서 약간의 놀림이 묻어났고 그동안 깔끔해 보이는 형언이형의 모습 어딘가에서 약간 촌스러운 면이 있음을 느꼈다. 회사에서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듯 잘 나가는 형에게 기생하는 팀장도 나름의 자존심이 있었다. 사람은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지 완벽하게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장기명 팀장은 어떠한 이유인지는 말을 아꼈지만 지방의 국립 4년제 대학을 나와  대기업 생명 보험회사에서 관리자를 할 정도로 나름 잘 나갔지만 회사를 나와 다시 타 보험사의 설계사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는 예전 관리자의 경험인지 지점이 돌아가는 방식이나 회사에서 내려오는 지침을 마치 내근직처럼 설명을 잘했다. 그것이 내게는 별로였지만 형언 이형에게는 큰 장점이었을 것이다.

"형은 살이나 빼~ 이거 뭐야? 어?"

앞에서 뱃살을 붙잡고 티격태격하는 그들을 보니 악어와 악어새가 생각났다. 지점 사람들은 팀장이 형에게 기대서 시책을 받아서 월급을 연명한다고 했지만 내 눈에는 형언이형도 그로 인해 챙기는 잇속이 있어 보였다.

지점장과 계약 진행상황을 전달하는 것도 팀장이었고 시책 관련 얘기도 팀장이었고 원래 밉상의 대상이었어야 할 형은 슬그머니 팀장 뒤로 빠져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일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장기명 팀장이 도맡아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일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그에게 팀장은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팀장이 그로 인해 얼마를 챙겨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회식 날, 택시에서 동료가 흥분을 하며 욕을 한 이유일 것이다.

"형, 2 팀장은 왜 지점장이랑 술을 자주 마시는 거야?"

옥상에서 치킨집으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 직장 내 뒷다마는 역시나 빠지지 않는 안주 같은 것이었다.

"걔 원래 지점장한테 사바사바 잘하잖아~우리는 또 그런 거 싫어하잖아"

팀장은 손바닥을 비비며 우리는 다르다고 행동으로 말하고 있었다.

"지점장한테 말했대~ 너 자리 좀 어떻게 하라고~"

영업지점의 사무실은 흡사 닭장 같다고 항상 생각했다. 파티션이라는 개념이 없는 뻥 뚫린 책상은 겨우 노트북 하나 놓을 수 있는 공간만 간신히 내어주고 옆자리 동료들과는 어쩔 수 없이 친해질 수밖에 없는 가까운 거리이고 노트북을 닫으면 앞자리 동료의 얼굴을 바로 앞에서 마주하는 정겨운 공간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 사무직 보조 알바를 한 경험으로  보통의 사무실 풍경을 알고 있었기에 처음엔 이런 사무실이 낯설었다. 하지만 폐쇄된 전 지점에서 일하면서 그 이유를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전 지점은 전략적으로 젊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핵심 설계사를 만드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획 지점이었다. 여타 지점과는 다른 개인 사생활이 보호되는 높은 파티션과 면적이 넓은 책상 그리고 많은 인원이 아니라 소수정예의 인원이 사무실을 사용했다.

팀장은 회사의 소식통답게 전 지점의 실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나름의 분석으로 전 지점이 폐쇄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진단했다. 

"보험회사 건물이나 사무실이 주로 어디에 있냐? 다 그 지역의 가장 목 좋은 곳에 있다고~ 임대료가 제일 비싼 곳, 그럼 회사가 최대 효율로 이익을 가져오려면 최대한 사무실이 밀집도가 높아야겠지, 그리고 보험회사는 영업이 먹여 살리는 곳이 잔 어, 근데 영업하는 지점의 사무실이 너무 좋으면 일하러 안 나간다고, 영업사원의 사무실은 일을 끝내고 돌아와 정리하는 곳이지, 하루 종일 앉아서 일을 하는 데가 아니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말한 건, 파티션이었다. 지금처럼 가림막이 없이 열린 공간이어야 앞사람의 통화 질주에 자극도 받고 옆사람의 계약서 뭉치에 눈이 가야 지점이 원활하게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전 지점이 보기 좋게 망한 걸 보면 팀장의 말도 맞았다.

"내 자리는 또 왜? 일들이나 잘할 생각은 안 하고 "

형언이형은 또 그 얘기냐며 지겹다는 투로 짜증을 냈지만 항상 그러듯이 웃음을 지었다.

"내 말이~ 얘 통화만 잘 들어도 밑에 등급애들 벌써 중간 등급은 가있을 거야~돈 주고 못 듣는 강의인데, 그걸 모르고~네 생각은 어때? 그렇게 시끄럽냐?"

팀장은 고객을 대하는 형언이형의 통화가 곧 강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말에 동조를 바라는 투로 내게 물었다. 같은 팀으로, 같은 패로 가겠냐는 일종의 심문 같은 질문이었다. 

"네, 뭐, 그렇게까지 듣기 싫을 정도는 아니죠, 형이 통화량이 많아서 그렇지, 다들 그 정도 목소리는 내지 않나요?"

형언이형은 내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지켜보다 말이 끝나기  흥을 내기 시작했다. 

"야이~ 우리 팀에 남자가 들어와서 든든하다! 한잔해~"

팀장이 곁에 있지만 실적이 따라주지 못했고 무엇보다 계약에 대한 설왕설래도 많은지라 수적으로나 실적으로도 면이 안 서던 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심스럽지만 후배에 대한 애정을 담은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너도 신입도 아니고 10년 차를 바라보는.. 그래서 조심스러운데, 우리 지점에 온 것도 어떻게 보면 너한테 기회 아니겠어? 우리 팀 안에서 매주 시상을 걸어놓고... "

아직까지는 서로의 성향을 모르고 살아온 이력을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피차 이 바닥을 잘 아는 만큼 한번 잘해보자는 말이었지만 쉽게 수긍하고 싶지는 않았다. 

"형, 내가 막 으샤 으샤, 이런 걸 별로 안 좋아해서 하하~"

멋쩍은 듯 웃어넘겼지만 솔직히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다 함께 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형과 팀의 실적에 따라서, 일을 하다 보면 분명 무리한 계약을 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피해가 올 수도 있다는 직감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직감보다 그동안 수없이 지켜본 숱한 경험 때문이었다.

"아~ 안 넘어오네~"

형은 고개를 살짝 휘저으며 히죽 웃었다. 팀장과 형은 평소 사무실에서는 업무적인 통화를 제외하고는 몹시 조용한 편이었지만 사석에서는 마치 어린 시절 친구처럼 허물없이 장난도 치고 무척이나 가벼워 보였다. 

그런 모습이 낯선 지점에 온 나에게는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팀에 처음 온 나를 존중하고 어느 정도 배려해준다는 느낌도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야~ 형 연락처 저장해~번호가~"

그러고 보니 팀장의 연락처는 있었지만 형언이형의 연락처는 없었다.

"이거 맞죠? 번호~"

그에게 내 폰을 들이밀며 번호를 확인하자 이제는 친근한 웃음소릴 내며 그가 웃었다.

"야~~ 이제까지 내 이름 잘못 알고 있었던 거야? 나 형원이야~하하"

"네??"

형의 이름은 박형언이 아니라 박형원이었다. 난 왜 그동안 그의 이름이 형언이라고 생각했을까, 나도 어이가 없어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하, 쏘리요~근데 나 같은 사람 없었어요? 형언하다~ 이런 말도 있잖아요~"

나는 참말로 그의 이름이 그런 의미로 만들어진 줄 알았다. 형언하다, 형언할 수 없는, 그런 의미로.

"뭐? 형언하다??"

똥그란 눈을 뜨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짓는 형은 그 순간만큼은 사무실에서 가장 높은 등급을 유지하는 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 막 태어나 언어를 첨 배우는 어린아이 같은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었다.

팀장도 형이 안보이는 조명 아래에서 혀를 끌끌 차는 표정으로 "얘도 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나만이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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