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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Dec 08. 2021

소설<알쏭당>

냄새

"근데 형언하다는 말 뜻이 정확히 뭐죠?"

형원이형이 화장실을 간다고 자리를 뜨자마자 나도 모르게 팀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 뉘앙스로 사용하는지는 알았지만 정확한 단어의 뜻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거~뭐 그거 아니야? 말로 형언할 수 없다~뭐뭐 하다~그러니깐 뭐.. 쟤봐 그거 몰라도 돈만 잘 벌어~"

팀장은 형원이형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동시에 그게 또 뭐 그리 중요하냐는 말을 하고 대수롭지 않게 술을 마셨다. 술자리에서의 별것도 아닌 사소한, 마가 뜬 것처럼, 작은 소동에 불과했지만 나에게는 가장 인상적인 순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말을 처음 듣는다는 게 말이 되냐는 암묵적인 분위기에서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난 처음 듣는 말인데~형원하다?"라고 너무도 당연한 듯 말했기 때문이었다. 

"원이 아니라 언이라고 이눔아~"

라고 팀장이 재차 강조했지만 형의 표정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 알게 된 단어처럼 신기해 보였다.

술자리 이후에도 회사에서 그런 작은 소동 아닌 소동들은 간혹 있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인근의 유원지로 팀 야유회를 가는 차 안에서는 각자 지지하는 정당을 이야기하며 간접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형의 말 한마디에 순간 마가 떴다.

"난 투표를 안 하는데~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그는 저번 치킨집의 회식이 떠오를 만큼 매우 흡사한 표정으로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뻔뻔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차 안이 조용해졌고 누구 하나 뭐라 할 말이 없는 듯 보였지만 어느 정도 친해졌다고 생각한 나는, 야유회를 가는 정겨운 분위기였기 때문에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정적을 깨뜨리고 한마디 거들었다.

"형 나이가 마흔인데 한 번도 선거를 안 했다고? 그 사이에 대통령이 서너 번은 바뀌었겠는데? 설마 대통령도?"

평소에 정치에 관심이 많은 편이기도 했지만 그가 단순히 정치를 혐오해서 자발적인 의지로 투표를 안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은 관심 밖인 주제를 대화 소재로 삼아 웃고 떠드는 분위기가 싫었는지가 궁금했다.

"어!"

복잡한 내 속내와 다르게 형은 평소와 다름없는 가벼운 두성으로 짧게 대답했다. 

"와 ~형, 그래도 그건 좀 심했다~애들이 곧 있음 중학교 들어간다며~"

"어? 그런데?"

"형 투표는 해야 돼요~권리 잔 어, 그리고 혐오보다 더 무서운 게 무관심인데.. 아무래도..."

나도 모르게 일장연설을 하려는 찰나 팀장은 운전을 하면서도 기가 막히게 말을 끊고 들어왔다. 

"와~ 저 봐라~ 경치 좋다~~"

만약 누군가 장기명 팀장의 육중한 외형과 지금은 어느 정도 퇴색한 걸쭉한 사투리를 목격한다면 아무도 그가 여우처럼 상황 파악이 재빠르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같은 팀으로 가까이 지내다 보니 안경 렌즈 뒤에 숨은 그의 작고 날카로운 눈매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의 겉모습은 간단히 상대를 파악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속임수가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팀장이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잘 파악했다. 특히 형원이형과 함께 있을 때 더 했다. 

한 번은 셋이서 따로 점심 식사를 할 기회가 생겼다. 아침 일찍 고객을 만나러 외근을 나간 형원이형은 약속 장소에 연신 피곤하다며 평소답지 않게 앓는 소릴 하며 늦게 나타났다. 제아무리 운동으로 열심히 관리한다고 한들 매달 새로운 사람을 만나  신계약을 창출하고 그것도 모자라 등급을 유지하기 위해 불철주야 돌아다니는데 피곤하지 않을 수 없어 보였다.

"형~ 번아웃 아니야?"

분명 번아웃이 오고도 남는 계약과 일정이었다. 거기에 주말이면 편하게 드러누워 쉬는 형편은 못돼어 보였다. 캠핑을 가기 위해 카니발을 장기 렌트했다는 그는 주말마다 근교의 캠핑장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좋은 아빠 노릇도 훌륭히 소화하는 것 같았다. 

"뭐?"

오늘따라 무척이나 피곤하게 터벅터벅 걸어오는 형은 또 난데없는 말을 들은 듯 멍해 보였다. 팀장은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다 나를 툭 치며 

"쟤 뭔 말인지 몰라~ 됐다 배고프다~ 들어가자~"

라고 잽싸게 식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팀장과 형원이형은 자식들 교육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둘만의 대화가 길어지자 비록 미혼이지만 내내 듣고 있던 나는 어쩌면 가장 원론적이고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하는 말을 생각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자녀가 뭘 좋아하는지 꾸준히 관찰을 해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말이 끝나자마자 형원이형은 어떤 이유인지 화가 막 나려는 얼굴로 

"말이 쉽지, 정작 애 키워봐"

라고 말을 내뱉고 무언가 더 말을 하려 했지만 팀장은 삼장법사가 손오공을 자신의 손바닥 안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형원이형이 약간 흥분했다는 것을 꿰뚫어 보고 제지하고 나섰다. 

"헤헤~ 야 음식 나온다~"

그날도 우리 둘은 부싯돌이 부딪혀서 불을 일으키는 것처럼 번쩍하는 순간은 없었지만 어쩌면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 둘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어디서부터 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분명한 건 형원이형에게서 규호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근육에 가려져 어딘가 모르게 묻어 나오는 여성적인 말투나 행동, 남들과는 사뭇 다른 히죽히죽 웃는 표정, 그리고 그날 어떤 이유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혹은 상대가 가르쳐 들려고 하는 느낌이 들면 욱하고 올라오는 표정이 자꾸 규호를 떠올리게 했다. 

규호의 그 표정을 처음 본 날이 자연스럽게 생각이 났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기억의 시작은 회색 잿빛의 아파트 단지로 날아갔다. 갓 슴살이 되자마자 친구들이 부모와 함께 사는 단지 내 아파트에서 첫 독립을 한 규호는 차도 있었고 씨네필도 있었고 현금도 두둑했다. 

우리에게 씨네필을 소개해주고 어느 정도의 연애기간이 지나자 규호와 씨네필은 주로 규호의 집에서 데이트를 즐겼다. 원래는 친구들의  아지트이기도 했던 규호의 집은 어느 때부터 규호와 씨네필 그리고 친구들이 함께 모이는 공간이 되어갔다. 영화 속 배우처럼 친구들의 선망이었던 씨네필이 가끔 김치볶음밥을 해주기도 했으며 같이 영화를 보기도 하는 요상한 공간이었다. 쑥스러움에 누구도 말로 표현 안 했지만 편한 복장을 한 씨네필이 뒤돌아 주방에서 무언가를 요리해주면 눈은 티브이 속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정신은 그녀의 뒤태에 온통 몰려 있었다. 그리고 어쩌다 소파에 있는 내 옆으로 씨네필이 와서 앉으면 그녀의 맨살과 나의 그것이 맞닿았다. 그녀의 팔뚝에 난, 솜털이라고 보기엔 조금은 두터운. 털들이 나의 팔에 쓸리면 예측이 불가능한 스무 살의 성기는 통제 밖이었다. 친구들의 화끈거리는 표정을 규호가 모를 리 없었다. 규호는 오히려 놀라고 당황스러운 친구들의 표정을 눈치채고 히죽히죽거리며 즐기고 있는 듯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규호는 이미 씨네필에게서 마음이 떠나 있었던 것이었다. 문제는 씨네필의 흡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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