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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Dec 10. 2021

소설<알쏭당>

냄새

규호는 씨네필이 담배 피우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처음부터는 아니었을 거다. 누구라도 씨네필이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반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깐, 애정이 식은 이유가 담배 때문인지, 담배를 핑계로 헤어지고 싶은 건지 규호의 마음을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새부터 다용도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는 그녀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핀잔으로 시작하더니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져 갔고 친구들은 한참 재밌게 게임을 하다가도 아쉽게 게임 패드를 놓아주고 집을 나서야 했다. 

"너 담배 끊는다고 했지?? 어?"

허리가 웬만한 여성보다 얇은 규호가 때리면 얼마나 아프겠냐만은 가끔씩 화가 나면 툭툭 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는지 친구들이 하나둘씩 불만을 쏟기 시작했다. 

"규호 저자식 좀 심한 거 아니야?"

호중이 씩씩대며 말을 했다. 규호와 내가 유일하게 떨어져 보냈던 학창 시절은 중학교 때가 유일했다. 그 시기에 규호를 대신해 가장 친한 친구였던 호중이는 규호의 집에서 제일 가깝게 살아서 그런지 아지트에 출석률이 젤 좋은 멤버였다. 그리고 규호와는 오히려 학교를 졸업을 하고 더욱 가까워진 사이였다. 

"누나한테 너무 하는 거 같아, 우리 가고 그러든가"

대놓고 말은 못 했지만 우리는 어느덧 씨네필과 정이 들어가고 있었다. 비디오 가게 알바가 끝나면 규호의 집으로 넘어와 살다시피 한 씨네필은 엄격한 아버지를 둔 탓에 밤이 되면 어기지 않고 건너편 동네로 넘어갔다. 한 번은 규호의 차를  타고 씨네필을 데려다준다고 함께 그녀의 동네로 간 적이 있었다. 도착한 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와는 완연히 딴 세상이었다. 어두운 밤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반쯤 삐딱하게 기울어진 전봇대는 겨우 등 하나 지탱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동네는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하천이었다. 지역 국회의원이 신경 꽤나 쓴 것 같은 붉은색 우레탄 트랙은 우리 동네 한가운데를 경유했고 많은 주민들의 산책로였다. 하지만 씨네필의 집 앞에 흐르는 하천은 보자마자 악취가 올라와 코를 찔렀다. 그 냄새는 아무리 뽀얀 피부와 건강한 검은 생머리를 자랑하는 그녀라도 감내할 수 없을 만큼 지독했다.  씨네필을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차에 탄 규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한테만 보여주는 거야, 누나도 너 말고는 다른 애들한테는 보여주기 싫다고 했어.."

그녀도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같이 찾아와 게임을 하고 술을 퍼먹고 사라지는 친구들 속에서 규호의 진짜 친구라는 나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다른 친구들보다 내게 더 특별하게 대해 준다는 것도 눈치채고 있었다.

"어머~ 손이 남자치고 넘 이쁘다~"

규호 커플과 친구 여럿이 고깃집으로 오랜만에 외출을 했을 때였다. 고기를 굽고 있는 내 손을 씨네필이 우연히 보고 말했다. 왜 난 이쁘다는 말에 의의를 두지 않고 남자 치고라는 뒷말에 더 무게를 두었을까, 말이란 무릇 단어와 문장,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 그리고 관계도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난 좋게 듣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용기도 없었던 것일까.  씨네필은 내게 여러모로 많은 걸 알려준 여자였다. 여자도 담배를 맛나게 뻐끔거리며 필 수 있다는 것, 첫인상이 도도하다고 성격까지 그렇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내 손이 여자들이 화들짝 놀랄 만큼 예쁘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씨네필을 마음속으로 흠모하지는 않았다. 규호의 집에서 보는 그녀는 씨네필의 조명 아래 다소곳이 앉아있는 아르바이트생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친구의 여자 친구 일 뿐이었다. 

"네가 말 좀 해라~ 솔직히 말하면 그 새끼 존나 패고 싶거든~"

평소 다혈질 성격으로 화가 나면 거울이라도 박살내야 속이 풀리던 호중이는 내게 씩씩거리며 말했다. 녀석이 원래 그렇게 흥분을 잘하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마음에 드는 이성 앞에서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친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터였다. 어쩌면 호중이도 씨네필이 해주는 볶음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곧고 짙은 생머리의 그녈 상상하며 주체 못 한 성욕을 대신 해소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은 자신이 나서야 한다는 기사도 정신으로 불타고 있었다. 어떻게든 제지해야 했다. 화가 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꽃같은 놈이었다.

"너 누나 좋아하냐?"

우리가 끼어들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것도 누나를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라 단순히 꼴 보기 싫은 거라면 참으라는 얘기이기도 했다.

"뭐??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럼 우리가 참견할 일은 아닌 거 같다, 둘 사이의 애정문제 잔 어~"

고개를 푹 숙이고 숨을 크게 한번 쉬던 호중이의 분노는 사그라들 생각이 없었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 새끼 하는 짓을 봐! 친구들 앞에서 지 여자 친구한테 뭐라 하고 툭툭 치질 않나?! 누나가 착해서 망정이지 와~ 시발"

"거꾸로 생각해봐~ 우리는 규호 집에 놀러 간 손님이야, 거기에 놀러 가지 않았으면 보지도 않을 애정싸움이라고~"

적어도 이 말이 상당히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단지 규호의 집에서 공짜로 시간을 때우고 거기에다가 씨네필이라는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던 환상 속의 그녈 실제로 대면하고 있었던 것은 모두 규호와 규호 집이 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호중이는 나에게 동조를 원했던 것처럼 생각지도 못한 나의 반응에 화가 더 난 것 같았다. 그리고 남자 새끼들이라고 툭 터놓고 말은 못 했지만 자신의 편을 들지 않고 규호의 입장을 대변하는 내게 못내 서운한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규호와 친했지만 호중이와도 친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막 호중이와 규호가 흉금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어가던 참이었다.


"어제 호중이가 밤늦게 찾아왔어~ 평소 같으면 여친이랑 뒹굴고 있었을 텐데 하하, 다행히도 혼자 있었거든"

"호중이가??"

누군가와 쉽게 친해지는 성격이 아니었던 호중이가 나를 따라 규호의 집에 놀러 가면서 자연스럽게 정이 들었던 것일까. 친구들과 씨네필이 모두 떠나고 휑한 집에 혼자 남아 맥주를 마시고 있던 규호는 호중이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반갑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고 했다. 

"이제 술친구는 호중이랑 해야겠어~넌 술을 못 먹어서 재미가 없잖아~대뜸 나한테 꿈이 뭐냐고 하더라고~"

나에게는 한 번도 묻지 않은 호중이 답지 않은 질문이었다. 아마도 규호가 자주 하던 말 때문이었을 거다.

규호는 모두가 대학을 들어가려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하던, 적어도 그런 척이라도 해야 했던. 그 시절에 입시를 포기하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겉으로는 도미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대학에 진학할 뜻이 없어

직업반에 들어가 있던 규호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그의 아버지는 미국 유학이라는 새로운 제안을 한 것이었다.

영어라도 배워오면 한국에 와서 써먹을 일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었을 거다. 규호는 반년만에 미국에서 돌아와서 입버릇처럼 꿈과 섹스를 말했다. 어학원에서 만난 대학생 누나와의 첫 섹스를 이렇게 묘사했다.

" 그날도 역시 어학연수 온 형들, 누나들이랑 기숙사에서 술을 마셨거든~ 갑자기 누가 그러는 거야, 소원 들어주기 하자고, 그래서 게임을 했지, 내가 평소에 마음에 두고 있던 이효리 닮은 누나가 있었거든, 까무잡잡한 피부에 가슴이 정말 이뻤어~아~"

규호는 탐스러운 여성의 가슴을 상상하는 듯 외마디 탄식을 머금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근데 웬걸 운명처럼 그 누나가 내 소원을 들어줘야 했거든, 그래서 술김에 말했지~ 누나랑 자고 싶어~!

그 순간에 술자리에 정적이 흘렀지 하하, 어떤 형은 술을 마시다 목이 메어 뱉었을 거야, 아무리 미국에 와서 자유분방하다 해도 기껏해야 술자리에서 키스하는 정도였지~"

규호는 원래 입담이 세기도 하여서 그런지 친구들은 애써 딴 척을 하며 신경을 안 쓰는 듯했지만 궁금했다. 머나먼 미국 땅에서 이효리를 닮은 여자와 섹스에 성공했는지 말이다.

"누나가 얼굴색 하나도 안 변하고 말을 하는 거야, 자기는 창녀가 아니래, 그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어땠을 것 같아?? 형들이 나서서 나에게 꾸사리를 주면서 막 뭐라 하는 거지 히히, 그런데 그때 무슨 생각이 났는지, 나도 모르게 소릴 질렀어, 시발 꿈이라고~! 미국에 와서 누난 내 꿈이라고~이뤄달라고 하하"

미친 새끼, 미친놈, 에라이... 여기저기서 욕이 날아왔고  아마 미국 서부의 어느 술자리에서도 그런 욕을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들 술에 취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잠들었을 거야, 나도 그랬으니깐 , 근데 동이 막 트는 새벽쯤이었나 , 누나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눈을 떠보니 바로 옆에 누워서 나한테 그러는 거야.. 네 꿈을 이뤄주고 싶다고.. 내 눈앞에서 야릇한 표정으로 말하면서 내걸 만져주는데 와, 그냥 바로~ "

허리춤을 흔들면 경박하게 묘하던 규호를 보며 너도 나도 더럽다고 욕을 했고 규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신나서 말을 이어갔다.

"둘 다 너무 피곤해서 바지만 멋은 체 그냥 그 자세로 그대로 삽입을 했어 하하, 첫 섹스를 그런 자세로 할지 몰랐지, 내 허리가 움직일 때마다, 바로 눈앞에서 누나의 표정이 변하는데 , 막 괴로워하면서 중간중간 좋아하는.. 세상에 이렇게 좋은 게 있는지 몰랐다니깐, 이건 구원이야, 인류에게 신이 준 구원!"

규호가 거실 한복판에서 감정이 고조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호중은 듣다못해 한마디 했다.

"구원의 의미를 너무 축소하는 것 같은데, 단순 쾌락을 말이야 크크"

규호는 그런 딴지를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에 화색을 띄며 말했다.

"그래? 그럼 네가 생각하는 구원은 뭔데? 말을 해보시지"

녀석은 말의 내용보다는 규호가 은연중에 풍기는 우월감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호중이 그런 것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병신~지 아빠 믿고 설치는 새끼가.."

나즈막히 내뱉은 호중의 말은 다행히 나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어쩌면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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