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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Dec 12. 2021

소설 <알쏭당>

냄새

호중도 규호도 날 친구로서 좋아했던 건 내가 그들이 각자 혐오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인간성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사람은 사람과 가까워지면 상대에게서 자신이 혐오하는 인간성을 언제나 마주한다고 생각했다. 우정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감싸줄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었다. 

호중의 아버지도 규호의 아버지처럼 잘 나가는 굵직한 기업의 임원이었다. 다만 호중이 규호와 다른 점은 겉으로 내색을 안 한다는 것이었다. 항상 수수한 옷차림의 호중은 자신의 아버지가 강남대로 한 복판에 본사를 둔 중견기업의 임원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했다. 그것을 위선이라고 말하기엔 이제 막 세상을 배우기 시작한 스무 살 청년일 뿐이었다. 호중은 당시에는 한물간 운동권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의 앨범을 모았고 진보적인 시사 주간지를 정기적으로 구독해서 읽고 있었다. 규호가 명품 청바지에 신상 신발을 매일 바꿔 입었다면 호중은 유독 빛바래고 찢어진 청바지를 좋아했고 검고 푸름이 섞인 카키색 바탕의 옷을 선호했다. 그의 집에 놀러 가면 방 한편에 블록같이 쌓여있는 시사 주간지를 꺼내 읽는 것이 솔솔 한 재미였다. 

친구들은 호중과 규호가 물과 기름 사이같이 안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둘의 집은 위치해 있었고 안락하고 자유로운 아지트가 필요한 스무 살 소년들에겐 규호의 집은 제격이었고 매력적이었으리라. 호중이 늦은 밤 홀로 술을 사들고 규호의 집에 찾아간 건 좀 더 친해지기 위한 그 다운 방식이었고 규호가 입버릇처럼 말한던 꿈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그래 꿈이 뭐냐고? "

규호는 무리 중에서도 남달랐다. 적어도 외모부터가 달랐다. 공교롭게도 친구들이 모두 대학 입시를 다시 준비하는 재수생이라는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정쩡한 위치였다면 규호는 그 사이 미국을 갔다 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신디 사이 저등 음악 관련 기계를 구입해서 뮤지션이 되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할 때였다.

" 도대체 재수는 왜 하는 거야? 배우고 싶은 전공이 뚜렷이 있어? 뭐가 되고 싶어 가는 거야? 아님 부모님이 대학은 나와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부모님 구색 맞추는 삶을 살기엔 지금 이 시간이 아깝지 않냐?"

솔직히 친구들 모두 속으로는 규호의 말에 흔들리기는 했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이렇게 말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 너야 놀고먹어도 살 방편이 마련돼 있지만 우린 대학 나와서 취직도 해야 돼~놈팡이 자식아"

규호는 여러모로 친구들과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친모의 양육 없이 유년시절을 보냈고 성인이 됐지만 부모의 영향 아래 있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일찍 독립을 하고 생활비에 대한 염려 없이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호중은 친구들 앞에서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그 점을 꼬집고 싶었으리라.

"난 네가 우리보다 네가 무언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게 좀 걸리거든, 솔직히 네가 이 집에서 폼 잡고 사는 거, 니 차를 몰고 여자 친구를 꼬시는 거, 다 니 아버지 덕이 잔 어~"

말싸움이라고는 져본 적이 없는 규호도 호중이 대놓고 자신을 비난을 하자 당황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규호는 밤늦게 맥주를 들고 찾아온 호중의 의도가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하하, 맞아, 그런데 나도 이거 거저 얻은 거 아니야, 호중이 너는 간단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친구들 앞에서 무례하게 자신을 디스 했다면 규호의 성격상 끝까지 꼬투리를 잡고 말싸움을 했겠지만 다행히도 알코올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을 섞이게 만들었나 보다. 그리고 좀 더 속 깊은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 수능 끝나고 엄마를 찾아갔어..."

규호는 내게 수능이 끝나면 함께 엄마를 찾으러 가자고 했다. 6살 이후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엄마를 한 번은 만나봐야겠다는 것이었다. 규호가 제입으로 엄마라는 단어를 내뱉은 건 적어도 그를 알고 나서는 첨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하루 종일 함께 보내는 친구도 제속을 차마 알 수는 없었다. 어쩌면 규호는 어디선가 존재할 엄마 생각으로 셀 수 없는 불면의 밤을 보냈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아버지와의 이혼 이후 규호의 어머니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달랑 하나 아는 것은 엄마의 이름 하나였다. 수능이 끝나 몇 날이 지나고, 시험이 끝난다는 해방감에 명동 한복판을 거닐다, 손을 주머니에서 감히 빼기가 겁나는 한파가 찾아온 어느 날, 규호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결과와는 상관없이 수험생 누구라도 자유를 만끽하고 있을 때, 무척이나 대비되는, 침착하면서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규호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규호는 그 순간을 위해서 날 우정에 버금가는 친구로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무작정 상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치는 한 겨울이었다. 상주로 내려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그는 평소답지 않게 무척이나 심란해 보였고 과묵했다. 애초에 나는 가늠할 수도 없고 지레짐작할 수 없는 사연이었다. 오히려 나는 부모와 아무런 연고 없는 듯 홀로 자유롭게 사는 규호가 편해 보였다. 아마도 그런 생각의 연유는 바람에 불리어 휘몰아치는 눈발처럼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퇴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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