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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Dec 14. 2021

소설<알쏭당>

냄새

상주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할 때쯤엔 세차게 내리던 눈발은 차츰 가라앉아 흩날리고 있었다. 터미널 안은 티브이 한대를 앞에 두고 지금 막 버스에 내린 승객들과 버스에 승차할 사람들의 이목을 잡고 있었다. 뉴스 속 앵커는 차분하지만 격앙되어 있었고 재난 방송을 하는 것처럼 긴박했다. 

"어? 젠장, 그럼 프로야구팀이 없어지는 건가?"

규호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자신이 응원하는 프로야구팀의 모기업 부도 뉴스를 보고 나서였다. 이어지는 뉴스 또한 기업의 부도를 타전하고 있었다. 여러 대의 버스들이 배기구를 통해 하얀 연기를 일제히 배출하자 눈발이 빨려 들어가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금세 사라졌지만 참으로 요란스러운 광경이었다.

"온 나라가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 같아"

나도 모르는 말을 하고 나서야 무슨 말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소년들이 몰락을 이해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규호는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기업들의 부도 뉴스를 뒤로 하고 자신의 근원을 찾고자 상주에 온 것이었다. 어쩌면 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당시 한파처럼 갑작스럽게 닥친 IMF는 그런 존재였다. 꽃을 피우기 전에 꽃의 몰락을 알아버린, 봄을 만끽하기도 전에 가을이 느닷없이 찾아온, 여름이 사라진 계절이었다. 규호는 아까부터 꼬깃꼬깃 접어있는 종이 조각을 용을 쓰며 펴고 있었다.

"상주시 부원동 41-30, 여기로 가야 돼"

접은 무늬들 위로 검은색의 급하게 갈겨쓴 주소지가 보였다.

"그런데 어떻게 알아낸 거야?"

규호는 복잡한 눈빛으로 티브이 속 뉴스를 멍하니 바라보며 말을 했다.

"노인네가 알려줬어"

규호의 아버지는 왜 규호에게 그동안 입밖에도 꺼내지 않는 엄마의 존재가 있는 이곳을 알려주었을까, 더 이상 이유를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규호의 끈질긴 요구에 그도 두 손 두 발을 든 게 아닐까 추측을 했다. 녀석이 무엇에 꽂혀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누구나 학을 떼고 도망갈 정도였으니깐, 그리고 어학연수를 갔다 온 이후에 국산 SUV를 사준 것처럼 이번 상주행으로 규호는 아버질 위해 무엇을 할지가 궁금해졌다.

상주는 시내와 시골의 경계가 무의미한 곳이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갑자기 심해진 눈보라를 뚫고 얼마 가지 않아 택시 기사는 백미러로 서울에서 온 촌놈들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이리 눈이 억수로 오는 데 여~ 무슨 일로 왔능교?"

처음 듣는 사투리에 우리는 순간 서로를 쳐다보며 올라오는 신기함을 주체하지 못했다. 익히 들어왔던 경상도 사투리와는 많이 달라서 귀에 쏙 들어오는 사투리였다. 눈치 빠른 택시기사는 우리의 얼굴을 쓰윽 바라보며 말했다.

"여는 같은 갱상도라도 조금 다릅미데~저짝에는 강원도가 있고 여짝에는 충청도가 붙어 있어서~ 여는 쪼메 섞여 있다고 봐야 지예~"

조금 전까지 단단히 긴장하고 있던 규호도 택시기사의 넉살 좋은 사투리에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은 건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엄마의 잔소리와 기대를 살피고 살아온 나는, 어쩌면 평생 처음 엄마라는 존재를 마주하는 순간을 앞두고 있는 , 규호의 숨 졸이고 떨리는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얼굴.. 기억나니?.."

창밖을 무심하게 바라보던 규호가 내게 얼굴을 돌리지 않은 체 대답했다.

"하도 어릴 때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 피부가 엄청 하얗다는 것 밖에..."

햇볕때문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을리고 검은 피부를 가진 것 같은  규호 아버지의 두껍고 질긴 피부를 떠올리고 바로 수긍했다. 비록 떨어져 지내도, 생사조차 알 수 없어도, 규호의 타고난 하얀 피부는 엄마가 규호에게 준 핏줄의 증표였다. 그것은 험한 햇볕에 방기 되어도 꿋꿋이 지켜낼 수밖에 없는 확실하고도 끈질긴 연줄 같은 것이었다. 

"여서 쪼메 걸어가면 아마 그짝 주소 나올겨~우야노~ 이리 눈이 마니 와서~"

택시 기사의 걱정스런 사투리가 귓가에 남을 여지없이 규호는 굳은 맘을 먹은 듯 택시에서 단번에 내리고서 눈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을 큰 숨으로 바라보았다. 상주 시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작은 마을이었다. 눈으로 뒤덮은 마을은 죄다 같아 보여서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그러나 규호는 막힘없이 눈으로 덮인 마을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대문 위로 걸려있는 명패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집집마다 내걸고 있는 철재 대문의 색상은 유일하게 식별이 가능한 얼이었다. 그리고 규호의 뒤를 밟으며 어느 집에선가 철재 대문을 열고 나올 규호의 엄마의 얼굴을 상상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어떤 표정을 짓고 나올지가 궁금했다. 몰라보게 장성한 아들을 한동안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자신과 닮은, 유난히 하얀 피부와 야윈 몸집, 을 알아보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다가오겠지, 아니면 한동안 그렇게 어색한 얼굴을 하고 눈보라를 뚫고 온 우리의 젖은 신발이 무색할 만큼 뻘쭘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규호는 그런 엄마를 어떻게 대할까.. 아까부터 그 답지 않게 말수가 없는 규호의 뒷모습은 화가 난 건지 애타게 보고 싶은 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여기 같네~흠.."

규호는 약간은 빛바랜 청동색 철제 문 앞에 서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거친 숨을 쉴 만도 했지만 무척이나 차분하게 숨을 고른 녀석은 이제야 뒤돌아 나를 발견하더니 눈짓으로 대문의 한켠을 가리켰다. 스피커가 딸린 초인종이 보였고 대문 너머로 , 페인트가 찢겨나간 철재대문마냥, 오래된 2층의 단독주택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만, 워,워, 내가 더 떨린다, 갑자기 왜 이렇지, 조금만 숨좀 고르자, 라고 눈빛으로 말을 했지만 규호는 그런 내가 우스운지 질질 끄는 시늉 없이 바로 초인종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띵동~" 생각보다 요란한 초인종 소리가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있는 시골집에 울려댔다. 다시 한번 "띵동~"

그제서야 스피커가 지지직거리며 사람 목소리를 건넸다. 늙은 노파의 힘없는 목소리였다. 

"누구..세요?.."

잘못 찾아온 거 아니냐는 영문모를 내 표정을 애써 무시하고 스피커에 얼굴을 갖다대고 말했다.

"외할머니~ 저 규호에요~"

순간 스피커에서 정적이 흘렀다. 생각보다 정적은 꽤 길었고 규호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혹여 이정도는 예상했다는 듯이 초인종을 강하게 누르며 스피커에 소리쳤다.

"할머니!~ 엄마 있어요?? 저 규호에요~엄마 여기에 있는 거 알고 왔으니 문좀 열어주세요~!"

눈내리는 소리만 가득한 고요한 마을에 행여 해가 될까, 규호의 목소리는 체 울리기전에 금새 눈사이로 파묻혔다. 펑펑 내리는 하얀 눈을 맞으며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나로서도 그다지 즐겁지 않은 일이었다.

갑자기 스피커에서 지지직 소릴 내자 규호는 다시금 신경을 곤두세우고 스피커에 다가갔다.

"돌아가렴.."

중년 여성의 칼같이 차갑고 냉정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그것은 한치의 정(情)도, 단 하나의 반가움도 섞이지 않은 단단한 얼음장 같은 철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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