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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Dec 18. 2021

소설<알쏭당>

냄새

난데없는 팀 여행이라니, 팀장과 형원이 형은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지점이 떠나가라 여행 얘기에 신이 나있었다. 지난달 팀 시책이 꽤 나온 모양이었다.

" 너 베트남? 태국? 어디 가고 싶어? "

형원이 형은 나의 팔을 붙잡고 지점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물었다.

" 뭐.. 난 그냥.. 다들 어디 가고 싶어 하는데요? "

갑작스러운 그의 종잡을 수 없는 텐션에 놀라 한 발짝 떨어지자

"아니, 너 생각만 해~ 네가 가고 싶은 데가 어디야? 빨리 말해, 시간 없어~"

마치 결정은 나의 입에 달려있다는 것처럼 재촉을 하는 형 뒤로 팀장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 네가 저번 달에 좀 해줘서 팀 비가 좀 남는데 형원이가 좀 보태서 여행을 가자네~웬일이야 저 쫌생이가"

팀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나에 대한 배려일 수도 아니면 형원이 형과 내가 유일하게 허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주제가 여행이기 때문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점에 온 이후로 내 등급도 예전보다 올라가 있었다. 대놓고 표현은 안 했지만 형은 내가 팀에 와서 이전에 없는 생기가 생겼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팀장은 그런 현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 옛 어른들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어~ 공부를 잘하고 싶으면 공불 잘하는 놈이랑 어울려야 하고 돈을 잘 벌고 싶으면 돈 잘 버는 놈이랑 친해야 돼~ 이게 뭐 비법 전수 이런 건 없지만 영향을 받는 다니게~ 무시 못해!"

팀장은 그것이 마치 진실인 것 마냥 자신 있게 설파했지만 정작 형과 제일 친한 팀장은 실적이 형편이 없는 게 현실이었다.

" 그럼, 형님은...?"

넌지시 '넌 왜 그 모양이니'라고 묻자, 팀장은 남 얘기하듯 촉촉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야이, 나 요즘 갱년기야.. 드라마만 봐도 눈물이 난다니까.. 너야 아직 한창이 잔 어, 다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쟤랑 친해져서 좀 빼먹어봐~"

갱년기라.. 저렇게 산만한 덩치의 남자도 50이 넘어가면 갱년기가 온다고 생각하니 왠지 그가 측은해 보였다. 그리고 지점 첫회식 날, 날 붙잡고 팀장 욕을 하느라 열을 올리던 동료가 생각났다. 그날 술에 취한 체 독기로 가득한 눈빛과 입냄새는 지점과 팀장에게 불만이 많은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아침 회의 시간에 드디어 참다못한 그가 지점 식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대놓고 장기명 팀장을 거론하며 이의를 제기한 것이었다.

" 이번 팀 개편 때 장기명 팀장은 팀장 자격에서 내려오는 게 맞다고 봅니다. 실적도 안되고 시책 관련해서

여러 말이 많다는 거 지점장님도 아시잖아요?"

평소에 어떤 일에도 차분하게 대응하던 지점장도 순간 당황했는지 대답을 차마 못하고 있었다.

그날 그의 모습은 술에 취한 모습이나 다름없는 맨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며 적개심을 표출했다. 팀장은 얼굴이 화끈해지고 쪽이 팔렸는지 고갤 푹 숙이고 있었다. 그가 저렇게 까지 팀장에게 적개심을 가진 이유가 궁금했다.

" 원래 너희 팀이었잖아~그때 시책 때문에 장기명이랑 틀어지고 우리 팀에 온 거야~"

옥상에 올라오자 아침 회의시간, 그의 갑작스러운 도발에 몇몇 직원들이 수다거리가 하나 늘었다는 듯이 오순도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우리 팀 회의 때는 그가 나이가 한참 위인 팀장에게 무례했다고 감싸는 말을 주로 했지만 옥상에서의 담배 타임에서는 달랐다. 누구나 하고 싶은 얘길 그가 용기 내서 공론화했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는 얼마 가지 않아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다며 사무실에서 사라졌다. 원래 이직은 결정되어 있었고 가기 전에 팀장에게 들이받고 떠난 거라는 얘기와 그날의 도발 이후로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안 좋은 시선을 느끼고 떠났다는 얘기가 혼재했다.

갱년기라는 말과 함께 그 모습이 떠오르며 팀장은 무언가 불쌍한 이미지로 내게 각인되었다. 사무실에서도 팀장은 형원이 형 농담 따먹기의 유일한 대상이었다. 아마도 제일 편하고 친한 사람이니 그랬을 거다.

" 형이 교회 장로인 거 알지? 크크크 왜 그렇게 교횔 열심히 나가는 줄 알아?"

형원이 형은 나를 바라보며 이 유쾌한 장난에 참여하라고 눈짓을 보냈다. 하는 수 없이 웃음으로 신호를 보내면 형원이 형은 뭐랄까 웃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무실에서 듣기 민망한 수위를 넘나드는 농담을 자주 했다.

" 형이 고등부 장로거든, 형이 고등학생을 좋아해~히히"

태연하게 웃음으로 넘겼지만 남자들이 저잣거리에서나 할 법한 이야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가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다. 살짝 사무실을 둘러보며 눈치를 보는 내게 그는 영문 모를 표정을 지으며 '뭘 그런 걸 신경 써'라고 말하고 있었다. 장기명 팀장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특유의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 병신, 타 팀의 설계사들이 팀장을 그렇게 불렀다. 특히 2팀의 누나는 담배를 같이 피울 때마다 팀장을 병신으로 호칭했다.

" 형원이 꼬봉, 이번 계약도 그리는 것 같던데~"

진정한 마약왕은 남에게 마약을 팔지만 자신은 마약을 절대 하지 않듯이 설계사가 망하는 징조는 고객에게 보험을 판매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이나 가족의 이름으로 계약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런 계약이 쌓여가면 결국 월급을 받아 보험료로 탕진하는 악순환이 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장기명 팀장이 그런 수순을 밟고 있는 것 같다고 수군거렸다.

"그래도 자식도 있고 엄연한 팀장인데.. 설마..."

믿기 어렵다는 내 표정에 누나는 담배를 내뿜으며

" 와이프가 직장에 다닌 다잖아, 글고 형원이랑 같은 팀인데 안 하고 배겨?"

누나의 연기 같은 말에 나도 어느 정도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 출근하듯 게약을 넣는 형원이 형과 같은 팀이 되면서 매주 마감 때 계약이 없다고 말하기가 민망한 상황이 오곤 했다.

" 형원이 형은 외벌이죠?"

"어머? 몰랐니? 걔 와이프 공무원이야~ 철밥통! 쟤 유명하잖어~ 와이프한테 찍소리 못하는 거~"

완벽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잘나가는 고액 연봉의 보험 설계사도 갖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 명예였다. 실적으로 말하고 돈으로 보상받는 설계사라는 직업은 퇴직금이 없는 매달, 매달이 불확실한 직업이라면

공무원은 반대로 매우 안정적이며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명예직이 아닌가. 거기에 이른 결혼으로 또래보다 빠른 자녀들이 있었고 사는 곳은 나의 고향 그곳이었다.

"베트남 가죠~ 거기 커피가 맛있다던데~"

"오~ 그래~ 너 커피 좋아하잔어~ 그럼 베트남으로 예약한다~!"

형은 재빨리 제자리로 돌아가 여행사에 접속해 예약을 하는 것 같았다. 점점 팀에 적응하고 그들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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