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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Dec 25. 2021

소설<알쏭당>

냄새

아버지가 서울의 천호동 지점으로 발령받은 날은 축제 날이었다. 엄마는 드디어,라고 힘주어 말하며 명절 때마다 임원들에게 선물을 보낸 자신의 공을 슬그머니 말했다. 

"선물이 다 같은 선물이니? 이게 다 엄마의 센스가 들어간 거라고~"

슬그머니가 드디어를 압도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아버지는 활짝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작은 미소를 흐뭇하게 지었다. 흐뭇한 웃음은 어디까지나 상대가 있어 가능한 관계의 웃음이었다. 그는 종종 엄마를, 자식들을 그렇게 흐뭇한 얼굴을 하고 바라보았다. 어미의 젖을 이제 갓 뗀 5살밖에 안된 남자아이는 전쟁통에 아비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 자라서 그런지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지 않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과거에는 흔했던 집안 어른들이 나서서 혼례 주선을 했고 엄마는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얼마나 가난했는지 훤히 알고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혼례 얘기가 나오면 부부는 어떻게 그렇게 닮았는지 만약, 이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꺼내 들었다. 

" 외삼촌이 크게 원양어업을 한 건 알고 있지? 니들 삼촌이 보통 사람이니, 하나밖에 없는 막내 여동생 챙겨준다고, 남자를 소개해줬는데~"

항상 같은 캐릭터에 항상 같은 결말로 향해가는 이야기이지만, 아니 결말을 바로 목도하고 있지만, 나와 내 동생을 흥미롭게 하는 건 이야기를 듣고 반격을 준비하는 상대의 표정이었다. 이야기의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화자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다행히 그날은 축제의 날이었다.

" 그 당시에 외제차가 어딨노? 어? 구경도 할 수 없던 시절 아니니, 신성일이 타는 검회색의 재규어를 딱 끌고 오는데~"

온 가족이 외출하려 하면 모두 차 안에서 한참을 아버지의 단장을 기다렸지만 순간 벼락같은 반격이 들어왔다.

" 뭐 말도 안 되는 소리고~ 그때 재규어가 어딨노??"

다시 말하지만, 좋은 날이어서 그런지 그녀 답지 않게 신속하게 정정을 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 그동안  지겹도록 들었던 , 그를 좋다고 쫓아다닌 이대 나온 여자의 스토리를 이번에 어떻게 각색해볼까 머릴 굴리고 있었다.

" 엄마는 그럼 왜 아빠랑 결혼한 거야? "

항상 마무리는 "왜"라는 아들의 질문으로 끝을 맺었지만 순간 멈칫하고 둘이 처음 만났던 그때로 돌아가듯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왜"라는 질문은 놀랍게도 듣는 이로하여 금 언제나 처음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이 있었다. 눈을 감고 뜨는 순간은 참말로 찰나였고 부산 앞바다의 드넓은 해안선을 잠시 구경하고 온 듯한 개운한 얼굴로 말했다.

"어찌나 말랐던지, 내가 잘 멕여서 사람 만들고 싶더라니깐.."

아버지의 불룩 나온 배를 본 그녀는 후련한 표정을 이내 걷고 눈썹 끝자락을 추켜올렸다. 아버지는 지방의 야간대학을 나왔단 이유로, 그녀는 그렇게 불평했지만, 행동이 유난히 굼뜨는 그가 분주하게 아침을 준비하고 서둘러 집을 나서야 하는(나설 수밖에) 거리의 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공공연히 자신은 꿈을 이미 이룬 사람이라고 말했다. 민주화 세대가  독재정권이라는 유일한 적수로 연대감을 확인했다면 전후세대에겐 가난은 모든 걸 통용시키고 식별하기 어려운,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유대감이었다.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는 것은 죽음 이상의 생존의 문제였고 그의 어머니는 , 할 줄 아는 게 없는, 여느 시골 아낙네와 다름없는 여성이었을 것이다. 금세라고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기와 같은 판잣집에서, 혹은 그 반대의, 일곱 형제가 장성할 때까지 한방에서 자랐다는 사실은 듣기만 해도 끔찍할 정도의 풍경화지만 추상화가 될 수밖에 없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가장 암담하고 처참한 순간에도 희망을 품고 꿈을 꾸는 존재 아니던가, 그리고 아마도 내가 느낄 정도의 처참함까지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가난이 흔한 시절은 그것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만 모두가 풍요를 누리는 시절의 가난은 멸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니깐.

그는 가난을 극복하고 싶었을 것이다. 가난의 실체가 구체적이지 않듯이 그의 꿈도 어떤 이미지에 가까웠다.

근대화의 기원인 서울이라는 도시에서도, 본래 그것이 모래섬인지도 망각할 정도로, 갑작스레 빌딩이 들어서고 금융의 메카로 융성한 여의도로 출근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낮에는 우체국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전달하는 메신저로서 일을 끝마치면 피곤이 덜 풀린 몸을 이끌고 야간고등학교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청운의 꿈을 꾸었다. 생업과 학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청년에게 가장 필요한 미덕은 순응이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은 부조리함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제 몸을 구기고 찢어서라도 적응해야 할 거역할 수 없는 숙명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순응과 함께 따라오는 것은 성실이라는 미덕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체제에 순응하고 성실하는 그런 심심한 남자는 분명 아니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어느 날, 아버지의 천호 지점 발령을 기념하며 나는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고 가족 모두, 날이 너무 궃다고 반대했다. 비가 억수로 많이 와서 빗소리가 창을 뚫을 기세였다. 논현동의 '씨네하우스'까지 가려면 최소 30분 거리를 운전해서 가야 하는데 오늘같이 장대비가 내리는 날이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 무슨 영환데?"

" k2라는 산을 등반하는 산악영화예요~"

모두들 나의 무모함을 탓하는 중에 아버지는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였다.

" 산악영화?"

운동이라고는 목욕탕에서 자신의 몸과 13살짜리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밀어대는 때밀이가 전부인 중년의 남자가 등산 영화에 꽂힐 거라고는 예상을 못했다. 전에 보지 못한 아버지의 단호한 결정으로 엄마와 동생은 투덜거리면서 차에 올라탔고 단지를 빠져나오자마자 횡당보도를 앞에 두고 우리 가족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앞차가 빗길에 미끄러져 한 바퀴 원을 그리며 돌았다.

"이거 불길한데..."

아버지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차를 돌리려 했다. 씨네 하우스, 마음먹지 않으면 가기 힘든 곳, 영화를 보지 않아도 극장에 간다는 건 내게 크나큰 설렘이었다. 차안이 떠나가라 땡강을 마구 부리기 시작했다. 

"목숨을 걸고 이걸 왜 봐야 하는 거야? "

연신 투덜대는 여동생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극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영화 포스터를 꼭 빼닮은 사람의 손으로 그려진 간판이 우릴 반겼다. 

"k2"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푸른 암벽인지 구분이 안 가는 푸른 색깔의 배경 위로 빨간색 줄 하나에 사람 한 명이 매달려 있는 그림이었다. 긴박하고 생존을 다투는 내용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포스터였다.

그는 젊었을 적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말했지만 극장 좌석에 앉아 암흑이 찾아오면 거짓말처럼 깊은 수면으로 빠져 들었다. 가끔은 제 집 안방처럼 편안했는지 거리낌 없이 코를 골기도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아버질 데리고 극장엘 가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k2"의 상영이 끝나고 극장에 암흑이 걷히자 아버지는 아직도 감동이 가시지 않은지 허연 막이 된 스크린을 한동안 하염없이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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