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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Jan 18. 2022

소설<알쏭당>

냄새

"꿈?.."

타국 땅의 호텔 매트리스에 금방 적응하는 내가 못마땅한 것인지 평소 사무실에서 하지 못했던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싶은 건지 잠을 깨우듯 던진 그의 물음은 순간 광속으로 통과하는 타임루프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리고 타임루프의 종착점은 당연하게도 강남역 출구를 나오자마자 가로수처럼 즐비한 빌딩 숲 속이었다.

" 꿈은 이루어집니다~!"

첫 교육에서 모두 소리 내어 외쳤던 그 구호를 어쩔 수 없이 따라 하며 속으로는 내 식대로 해석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우리들은 한 번씩 실패를 경험한 낙오자다~! 이제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으니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다시 인간다운 삶을 살자~!"

서울에서 성남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택배 물류 센터에서 만났던 신용 불량자와 전과자 그리고 나처럼 꿈을 꾼다라는 미명 아래 청춘을 잠시 유예한 젊은이들은 실패와 실패의 가능성을 항시 외투 안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것은 깊숙이 숨겨 놓은 것 같지만 완벽하게 은폐할 수 없는 썩은 생선 냄새 같은 것이었다. 보험 회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달 동안의 교육의 마지막 과정은 지방 어느 소도시에서의 2박 3일간의 워크숍이었다. 그리고 교육의 마지막 날 밤은 강당에 둘러앉아 그동안의 소회와 앞으로의 포부를 말하는 정리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먼저 나서서 말하길 눈치 보며 주저할 때 교육기간 내내 침묵이 최선의 말이라는 신념을 가진 듯 한 50대 중년의 남자가 일어나 입을 열었다.

"20년 동안 몸 담았던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듯 나왔습니다.. 그때는 억울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회사 사정도 이해가 갑니다.. 한동안 회사로 출근한다고 집을 나서서 여기저기 정처 없이 돌아다녔습니다. 그 짓을

몇 달 동안 하고 나니 더 이상 갈 데가 없더군요.. 친구가 대표로 있는 회사도 처음엔 반기다가 어느 순간 직원들이 사장님이 외근 중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하하, 그때 알았습니다. 사회는 일하지 않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구나.."

중년 남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지자 금융 회사의 지방 연수원은 느닷없이 성당의 고해소가 된 듯 고요한 적막이 찾아왔다. 교육 기간 내내 졸음과 사투를 벌이는 교육생의 잠을 악령 내쫓듯 현란한 언변의 목사가 되어 방방 뛰어다니던 교육팀장도 중년 남자의 갑작스러운 고해성사에 안경테를 쓸어 올리며 자세를 다잡았다. 

"아시다시피 한국의 중년 남자가 평일 낮 시간에 갈데 라곤 일터뿐이 없더군요.. 마침 제 보험을 관리하고 있는 설계사분이 제가 퇴직한 걸 알고 교육만 한번 받아보라고 해서 처음엔 그렇게 왔습니다.. 막상 갈 데도 없던 차에 오게 된 거죠.. 그런데 교육을 받다 보니 다시 예전의 열정이 살아나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 처와 두 딸이 떠올랐습니다.."

오, 주여.. 신의 은총을 받은 사람처럼 평온하게 말을 이어가는 그에게 교육생들은 주문처럼 성자(聖者)의 얼굴을 띄며 경청했다. 

"잊고 있던 꿈이 다시 생겼습니다. 성공하고 싶습니다."

그의 얼굴은 처음 만났을 때의 칙칙함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확신에 차 있었고 꿈에 부푼 듯 생기 넘쳐 있었다. 그런 그의 말이 끝나자 교육팀장은 그동안의 자신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한 듯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러분~ 처음 오셨을 때가 기억납니다. 서로들 한번 바라보세요~한 달 동안 여러분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세요.. 지금 성공이란 말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면 행운아세요~이 일은 자기가 한만큼 벌어가는 소득이 정해져 있지 않은 일입니다. 이건 거꾸로 말하면 자신이 벌고 싶은 만큼 벌 수 있다는 얘기예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성공이란 말보다 성장이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계속 쉼 없이 성장하십시오! 그럼 여러분이 원하는 성공에 가까워져 있을 겁니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꿈과 성공에 대해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두려움의 실체는 어쩌면 이 순간부터 내가 이전까지 갖고 있던 생각을 파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강하게 내려 누르는 어떤 힘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무엇보다 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그 힘에 속절없이 굴복당할 거라는 스멀스멀 피어나는 본능의 얼굴을 한 예지였다. 

"남편 사업이 갑자기 망했어요, 사업을 일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내려앉는 데는 한순간이더군요..

평생을 주부로 살았는데.. 평생 남편만 바라보고 살다가.. 남편의 약한 모습을 보니 저도 모르는 이상한 힘이 생기더군요, 이제는 제가 가족을 먹여 살려야겠다 라는 책임감이라고나 할까요?"

평소에는 동네에서 흔히 마주하던 익숙한 중년 여성의 얼굴을 한 그녀도 작심한 듯 고해성사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동그란 원의 대형으로 돌아가며 다시 원점으로 향하는 실패의 역사였고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위한 다짐이었다. 그리고 원을 돌아 마지막 원점인 나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형원이 형이 나에게 던진 질문과도 같이 돌고 돌아올 수밖에 없는 계속되는 의문이었다.


"왜? 꿈이 한두 개가 아니야~? 뭘 그리 오래 생각해?"

형원이 형은 한쪽 팔을 베개 삼아 비스듬히 누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꿈이란 정의는 다들 제각각이어서 함부로 심장 같은 꿈을 드러냈다가 상대로 하여금 조롱을 받거나 냉소의 한 숨을 읽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형, 나는 이미 꿈을 이뤘어, 처음 여기 왔을 때 딱 3년만 버티자고 생각했거든~"

꿈을 말하기 전에 바로 건너편 침대에 팬티 하나만 걸친 체 누워있는 낯선 남자와 이곳에 무엇 때문에 왔는지를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퍼뜩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팀 여행을 온 목적에 맞는 딱 그 정도의 답변을 내놓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몇 년 됐지?"

"7년 됐나?"

"용케 버텼네~대단해~"

형은 그것이 진심인지 헷갈릴 정도로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차분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회사에 들어와서 목표도 이루고 뭐 그런데.. 부모님은 아직 인정 안 하시지..."

부모님 얘길 왜 꺼냈을까, 말이 평소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아직도 난 그 동네와 연결된 모든 것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었다. 

"아직도 인정을 안 하셔? 야 부모님도 너무 하시네, 이 바닥에서 오래 버티는 거 쉽지 않은데"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냈다는 자책에 사로잡힐 무렵 형은 그럴 필요 없다고 위로하듯 침대에서 일어나 가부좌를 틀고 앉아 본격적으로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했다.

"너도 알지? 우리 동네가 교육열이 심하더라고~ 애들 교육비가 장난 아니게 들어가~다들 시키는 데 우리 애들만 안 시킬 수 있나~"

"아직 어리지 않아? 애들이"

"첫째가 이번에 중학교 올라가고 둘째는 아직 초등학생인데~네가 애가 없어서 모르는 거야~ 선행 학습이다 뭐다 피아노 하고 싶다고 하면 또 애 기죽일까 봐 피아노 학원 보내고 수학 학원, 원어민 영어 학원 다닌지는 꽤 됐고"

베트남의 열대야에 잠시 잊고 있던 교육 지출 내역을 손가락과 함께 꼽으며 열거하던 형은 잠시 두통이 왔는지 미간을 찔끔거렸다.

"형, 돈 그렇게 열심히 벌어서 애들 교육비에 다 나가겠다~"

"야~~ 한 달에 애들 교육비만 4백이 넘는다~ 아! 맞다! 수영~! 그래 너도 수영 잘하겠네? 동네 중앙에 수영장이 있잖아~애들이 어릴 때부터 수영을 해서  완전 물개야 크크"

방사형 동네의 시작점이자 몸통은 수영장과 음식점, 각종 편의 시설이 한데 모여있는 종합상가였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실내를 밝힐 만큼 당시에는 드물게 사방을 통창으로 둘러싼 상가는 층고의 경계 없이 뻥 뚫려있어 하늘을 수시로 마주할 수 있었다. 특히 어두운 밤, 상가 내부에서 거대하고 높은 층고의 끝에서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면 , 푸른 우주에 둥둥 떠있다는 착각을 줄 정도로, 거대한 우주 비행선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향해하고 있다는 착각을 들게 했다. 비행선에는 우주여행을 하는 동안 필요한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었다. 음식점, 옷 가게, 카페, 수영장, 헬스장, 안경점, 병원, 은행까지 없는 걸 찾는 게 더 빠를 만큼 완벽한 비행선에서도 제일 인기가 있는 곳은 바로 편의점이었다. 아이들이 편의점을 가장 좋아한 이유는 간단했다.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고 필요할 것도 없을 것 같은 완벽한 우주선에서 최초로 생긴 신(新) 문물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먼저 알아보는 것은 항상 어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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