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은 아쉬움으로 바뀐다
22살에 아이를 낳은 나의 정체성은
35살인 지금까지도 여자보다 엄마에 더 가깝다.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면서 온전히 '나'로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27살에 이혼을 하고 공황장애가 찾아왔고 심리상담을 꾸준히 받던 어느 날 상담사 선생님이 말했다.
"아이들한테 엄마의 워딩으로 이혼에 대해 설명해주셔야 해요. 이미 눈치채고 있기 때문에 불안도를 낮춰주려면 미루지 마세요"라는 말을 하셨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이혼의 '이'자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멘털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고, 무엇 하나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한 2년쯤 지났을까,
29살의 나는 용기를 냈다.
첫째가 8살, 둘째가 6살이었다.
평소처럼 밥을 먹으며 일상 대화하듯이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빠랑 같이 살지 않는 이유와 엄마랑 아빠는 이혼을 했고 대신 보고 싶으면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아빠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될 가능성도 에둘러 표현했는데
"그럼 엄마가 더 힘들어지는 거 아냐?"라는 첫째의 첫마디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엄마가 왜 힘들어져?"
"아이가 더 많아지잖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아이가 왜 더 많아져?"
"아이가 더 많이 생기는 거 아니야?"
나는 그 말에 웃음이 빵 터졌다.
"아니.. 그건 아닌데"
아이가 지금보다 당연히 더 많아진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혼자 본인과 동생을 키우는 엄마가 힘들 텐데 아이가 많아지면 더 힘들어질까 봐 걱정을 한 것이다. 그리고 건넨 한마디
"아.. 그래? 난 엄마가 행복하면 괜찮아."
8살 아이의 입에서 나온 그 한 마디에 순간 모든 감정이 뒤섞였다.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말이었다.
내가 행복해보이지 않은게 보였나보다
하긴 그 이후에 2학년 때, 어버이날 편지에
엄마 힘든데 나랑 동생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라는 편지를 갖고 왔던걸 보면
아이의 눈에도 힘든 모습이 보였던 걸까?
사실 이혼을 결심하기 직전까지 정말 많이 싸웠다.
계속해서 돈을 달라는 X와 주지 않는 나와의 싸움이 계속되었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아이들이 지켜봤다. 싸우다 감정이 격해지면 유리컵이 나한테 날아오기도 했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던 첫째는 소파에서 엉엉 울었다. 이혼하고도 한동안 양육비를 핑계 삼아
'30만 원만 보내주면 다음 달에 양육비 주겠다'라는 말로 지속적으로 연락을 했다. 네가 돈을 안 줘서 양육비를 안주는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쳤고 양육비를 줘야 할 판에 애 둘을 키우고 있는 나한테 돈을 빌려달라니 어이가 없었다.
어쩌면 아이들의 기억 속의 부모는 행복한 모습보다는 싸우는 부모였을 것. 이혼을 하고도 공황장애로 정말 내 삶의 밑바닥을 지켜본 것도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이혼 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아이들한테 다 하는 것 같다. 남부럽지 않게 키우는 건 아니라도 적어도 다른 아이들이 보고 듣고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게 한 것이 늘 죄스러웠다. 언젠가 내가 나이를 먹고 나서 이 순간들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던 중 첫째의 입에서 나온 저 한마디가 만감이 교차했었다.
그게 벌써 6년 전 이야기이다.
그 긴 터널을 지나고 나니 세상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요즘 돌싱 소개팅 프로그램이 정말 많다.
<나는 솔로>, <돌싱글즈> 같은 프로그램들.
매번 챙겨보진 않아도 인터넷에서 짧은 영상들이 종종 본다.
지인들이나 처음 나를 보는 사람들이
"나는 솔로나 돌싱글즈 나가봐요~"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니에요~"하고 넘긴다.
그런데 이번 나는 솔로 28기 돌싱특집의 치과의사 정희의 인터뷰가 내 눈길을 멈췄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하루 종일 즐거운 날이 없었다고 하면서 나만 너무 행복했던 것 같아서 엄마로서의 책임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아서
그게 죄책감이 든다는 인터뷰 내용과 아이의 사진을 보며 우는 모습에 공감이 많이 됐다.
가장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무게와 아이 엄마로서의 삶은 쉽지 않다. 그게 뭔지도 너무 잘 안다.
나도 혼자 어디를 가든 뭘 먹든 아이들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며 그게 죄책감이 되어서 돌아왔다.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든 아이들 없이 누군가를 만나서 하하 호호 아무 생각 없이 즐거웠어도
마음 한편은 무거웠다.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똑같은 상황이어도 죄책감은 더 크게 다가온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리고 주변사람들은 늘 말했다.
"몸에 좋은 거 애들만 챙겨주지 말고 너도 챙겨 먹어"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들도 챙길 수 있어"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해"
아이들이 항상 먼저이고 아이들에게 희생적인 나에게 지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었다.
나를 챙겨주는 사람은 가족들 외에 없으니
그런데 아이들이 커가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빠르게 커가고 있고 둘 다 아들이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 점점 나의 손을 떠나기 시작하는 걸 체감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에게 이제야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뭔지, 내가 싫어하는 건 뭔지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첫째는 사춘기가 와서인지 외모를 부쩍이나 신경 쓰게 되었는데 작년에 교통사고로 셋이 한방병원에 입원한 일이 있었다.
병실에서 같이 밥을 먹는데 첫째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 재혼할 거야?"라는 질문과 함께
"나는 아빠 없어도 괜찮아~" "지금도 좋아"
라는 말을 하며
"엄마 또래에 키 크고 잘생긴 사람 만나면 안 돼?"
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사람이 엄마를 왜 만나~~~"라며 대답하고 웃음이 터졌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알 수가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만나는 사람의 외모까지도 유심히 본다는 것이었다. 내가 첫째의 친구들을 볼일이 생기면 첫째는 나한테 신신당부하는 것이 있다. 절대 쌩얼로 나타나지 않는 것. 잠깐이더라도 무조건 화장을 하고 나오라는 것. 그것만 봐도 외모를 엄청 신경 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상대방의 외모까지 보는 줄은 몰랐다.
힘든 시간을 견뎌온 만큼 아이들과 어느새 이런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컸다. 그리고 이런 대화들을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그만큼 우리 모두 단단해졌다는 증거였다.
둘째도 초등학교 1학년때, 태권도 학원에서 '아빠 없다'라고 놀림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 사실은 놀린 친구의 엄마 전화로 알게 됐다.
" 우리 아이가 아빠 없다고 놀렸다더라.. 애 상처받았을 거 같은데 너무 미안하다. 단속 잘하겠다. 엄청 혼냈다" 라며 얘기했는데 나는 대수롭지 않게 "애들이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라고 했다. 둘째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응~ 아빠 없는데 그게 왜?" 라며 받아치는 성격이라 크게 걱정은 안 하지만
재혼과 아빠에 대한 얘기를 할 때 첫째는 본인의 이런저런 생각을 잘 말하는데 둘째는 오히려 아무런 대답을 안 한다. 어쩌면 마음속 깊은 곳엔 아빠의 빈자리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연애 관련된 프로그램을 보는 날이 있으면 첫째가 꼭 한 마디씩
"왜~ 엄마도 나가게?"라고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한다. 내가 카톡을 하면서 웃으면 "왜 웃어~ 남자친구 생겼어?" 라며 묻기도 하고 카톡에 남자이름이 보이면 "ㅇㅇㅇ은 누구야?" 물어본다.
내가 기분이 안 좋거나 눈물이라도 보이는 날엔
"왜? 헤어졌어?" "엄마가 차였어?"라고 말한다.
그럴 때면 웃음이 터진다.
이제는 아이들이 농담으로 다독일 줄 아는 나이가 된 것이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친구처럼 지내는 덕에
나의 죄책감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20대 때부터 최선을 다 했기에 이런 죄책감도 줄어드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시간을 온전히 쓰는 것에 집중하기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사람도 만난 지 채 얼마 되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이제는 거꾸로 나를 챙기기 시작한다.
내가 화장이라도 하고 차려입고 나가면 어디 가는지, 누구 만나는지, 몇 시에 들어올 건지 물어본다. 귀가 시간이 되어서도 안 들어오면 전화가 온다. "왜 아직 안 와?" 하며 전화를 걸어온다. 내가 아이들의 관심 대상이 된 셈이다.
남들과는 다른 삶이지만, 그 평범하지 않음 덕분에 오히려 재미있다.
사실 이런 날들도 그리워지는 때가 올 거라는 걸 안다. 나보다도 여자친구를 먼저 챙길 날이 올 테고, 그땐 지금의 관심은 조금씩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나랑 있고 싶어 하거나 어디갈때 데리고 다니려고 하지만
이제는 나를 따라나서지 않는다. 그마저도 당연하게 느껴질 만큼 다 컸다.
'이제 정말 다 키웠네'
자유롭다가도 왠지 모를 허전함이 스민다.
이제는 죄책감이 서운함으로
그리고 아쉬움으로 바뀌는 날이 곧 올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