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
22살의 나는 사랑보다 책임이 먼저였다.
주변 또래들이 놀러 다니고 연애를 할 때,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남들보다 빨리 어른이 되었지만, 그만큼 '나'로서의 시간은 없었다.
20대는 오롯이 육아로 지나갔고 30대가 되어서야 제대로 된 연애를 한 것 같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고 연애는 어느새 나에게 아주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결혼했던 그 시절, 중고등학교 동창 친구는 남편의 폭력으로 돌도 안 된 아이를 포기하고 이혼했다. 가족의 도움으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며 그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남겼다.
"겁내지 말고 사람을 만나. 그리고 기회가 되면 부모님도 만나봐. 물론 반대하시는 부모님들이 더 많으시겠지만 진짜 정말 진심으로 너의 이야기를 이해해 주시는 분들도 계실 거야. 나도 그런 적 딱 한번 있었는데 처음 인사 갔을 때 어린 나이에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겠니 그게 첫마디였어"
그 말이 그땐 막연하게 들렸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단순히 사랑을 찾는 일이 아니라 나를 다시 세상 속으로 데려오는 일이라는 걸.
나보다 조금은 더 많은 세월을 살아온 언니들도 늘 내게 말한다. 제발 남자 좀 만나. 그 좋은 시절에 왜 자꾸 안 만나 냐고 말한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나는 늘 망설였다. 만나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누굴 만나야 할지 몰라서였다.
그래도 언젠가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게 되고 장기연애가 끝난 뒤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연상도 만나보고 연하도 만나보고
나처럼 아이를 양육하는 돌싱도,
이혼했지만 아이를 양육하고 있지 않은 돌싱도, 싱글도 만나봤다. 직업도, 성격도, 인생의 무게도 다 달랐다.
카페에서 차 한잔으로 끝나는 만남도 있었고
두세 번 더 이어지는 인연도 있었다.
어떤 만남은 시작도 전에 사라지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을 만나며 나는 조금씩 '사람을 보는 눈'을 배워갔다.
신기하게도 만남이 쌓일수록 나의 기준이 생겨갔다. 조건이나 외모보다도 말투, 습관, 대화 속 가치관. 그 안에서 '진심'이라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의 말보다 행동이, 의도보다 무의식적인 태도가 더 많은 걸 말해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돌싱이라는 이유 하나로 누군가에게는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만만한 사람이 되기도 했다.
그럴수록 나는 내 원칙을 지켰다.
"나를 숨기지 말자"
나는 언제나 가장 먼저 돌싱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숨길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하며 누군가를 만나고 싶진 않았다. 내 시간도, 상대의 시간도 소중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람을 만날 때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건 '신뢰'였다.
신뢰가 무너져본 사람은 안다. 돈보다, 외모보다,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마음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래서 나는 선의의 거짓말조차도 좋아하지 않는다. 사소한 거짓말에서 시작되는 실망과 오해는 결국 관계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로울 때는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
그건 오래전 실패로부터 얻은, 지금까지도 지키는 나와의 약속이다. 외로움을 사람으로 채우려 하면 결국 더 깊은 외로움으로 돌아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만남을 통해 사람을 안다는 건 결국 나를 알아가는 일임을 배웠다. 또래보다 조금 일찍 인생의 굴곡을 겪어서일까, 감사하게도 나는 어린 나이에 참 다양한 만남을 경험했다. 학부모로서의 만남, 선생님으로서의 만남, 연주자로서의 만남, 직장동료로서의 만남,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의 만남.
그 모든 만남이 나를 조금씩 자라게 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기다림을,
누군가는 내려놓음을,
또 어떤 이는 용기를 가르쳐 주었다.
돌이켜보면 모든 만남의 길 위엔 늘 배움이 있었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혹은 스쳐간 인연이든
모든 만남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나는 여전히, 다음 만남의 이유를 배워가는 중이다.
제일 중요한 건 이제는
가치 있는 일에만 나의 시간과 감정을 쏟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