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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삶이 벽처럼 느껴질 때

이상과 현실

by 테토솜
2022년 가을

이혼 후 첫 연애는 약 3년 정도였다.


한참 공황장애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다시 친구들도 만나면서 결혼한 동창들이 "제발 남자 좀 만나, 이 나이에 왜 이러고 있어"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리고 정말 용기를 내어 2022년도 연초에 연애를 시작했다. 32살의 나이 11살, 9살 아들 둘

사실 결혼을 너무 어린 나이에 해서 제대로 된 연애몇 번 안 된다.


3년 동안 좋았던 시간들도 있고 투닥거렸던 시간들도 있 잘 맞는 것도 있지만 안 맞는 것들도 있었고 서로 맞춰갔다. 무엇보다 3년 동안의 연애 덕분에 그동안 공황장애로 생긴 여러 제약들을 깨는 계기가 되었다. 여러모로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아이들하고도 장난치며 투탁거리며 재밌게 지냈고 상대방은 데이트할 때마다 '애들이 여기 좋아하겠다, 이거 좋아하겠다'라는 말이 늘 나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결혼에 대해 얘기가 나왔다.

상대는 싱글이었고, 나는 애 둘 딸린 이혼녀.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 상대방 부모님은 반대를 하셨다.

요즘 이혼 많이 하니까 그래 그렇다 쳐. 애도 있을 수 있지. 그렇다 치자 근데 애가 둘 인 건 얘기가 다르다였다.

상대방의 여동생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여동생보다 더 어린데도 아이 둘 키우며 정말 열심히 산다. 대단한 사람이다. 만나보고 생각해 봐도 늦지 않느냐, 만나보고 얘기하시라고 설득했지만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러 가기로 약속된 전날 밤 파투가 났다.

상대방은 어른들과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한바탕 언성을 높이고 전화가 왔길래 나 때문에 부모님이랑 싸울 일이 아니라고 다독였다.

그는 내게 내가 좋다는데 같이 살면 어차피 받아들이실 거다. 살면서 어른들 볼 일이 몇 번이나 되겠냐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나는 너무 잘 안다. 이미 한번 해봤기 때문에.


내가 굉장히 현실적인 편이라, 어른들이 당연히 반대하실 거라 예상했다. 그게 당연했다.

입장 바꿔서 나라도 그랬을 테니 당연한 얘기라 상처받을 일도 없었고 무덤덤했다.


진지하게 이런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반대하는 결혼을 해야 할까?

한번 아픔이 있었는데 또다시 힘든 길을 가야 하나?

그리고 정말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들을 생각했다.

나야 좋으면 감당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한테까지 그 짐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좋게 보이지 않는데 내 아이들이 좋게 보일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는 상대방과 아이들이 잘 지내니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반대하는 결혼 굳이 왜 하냐는 입장이었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고생길 훤한 결혼생활을 원하지 않을 테니


그리고 현실이 눈앞에 보이니 마음은 예전 같지 않았다. 내 성격상 자주 찾아뵙고 노력하면서 어른들을 설득할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이 모든 걸 감당할 만큼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에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고 그게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현실이란 벽 앞에 나는 멈춰 섰다.

그 벽은 세상에 있던 게 아니라 내 마음 안에 있었다. 마음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상대방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동안 상대방이 무심코 내게 했던 말들에서 이유가 있었다. 그런 말들이 계속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고 중요한 순간에 벽이 되었다.


누군가를 향해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일보다

감당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게 더 어렵다는 걸.

나에게 사랑이란 결국 현실을 이기는 용기와 믿음과 신뢰의 이름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렇게 3년 연애가 끝이 났.

30대의 장기연애는 시간이 금방 흘러갔고 어느덧 30대 중간, 35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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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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