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키지 않아도 유달리 잘했던 게 있는데 바로 '정리'이다. 노트는 책장 두 번째 줄에, 가위는 첫 번째 서랍 세 번째 칸에. 내 방에 있는 모든 물건에는 있어야 할 곳이 있었고, 사용한 후에는 꼭 그 자리에 두었다. 책가방을 챙길 때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큰 교과서는 맨 뒤에, 작은 교과서나 노트는 앞에, 풀 같은 작은 학용품은 맨 앞 주머니에.
언제부터 왜 그렇게까지 정리를 해댔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그 당시의 나는 정리에 특출 났다. 내 부모는 한 번도 내 방을 정리하거나 책가방을 싼 적이 없을 정도였다. (사실 방 정리나 책가방 싸기는 당연히 본인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친구들과 대화하다가 부모님이 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었다.)
부모가 신경 쓰지 않아도 방 정리도 잘하고 책가방도 알아서 척척 챙겼던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학교가 싫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라는 시스템이 폭력적이라고 느껴져서 피하고 싶었던 건데 그 당시의 나는 그저 '학교 다니기 싫다.'는 표현밖에 할 줄 몰랐다.
학교를 싫어한다고 해서 안 보낼 부모가 과연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나의 절규는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이의 떼쓰기로 여겨졌고, 나는 불만만 가득 담은 채 중학교에 진학해야 했다.
그러면서 나의 '특출 난 정리력'은 이상한 곳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오면 맨 처음 하는 일이 학교에서 한 필기를 다시 정리하는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하는 말을 받아 적기 바빠서 '예쁘게' 필기하기가 어려우니 집에 와서 다시 정리하는 거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심적으로 병이 깊었던 것 같다. 한 글자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노트를 찢고 처음부터 다시 적었다. 심할 때에는 적고 찢어버리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필기 정리에 이어 또 집착하게 된 게 있는데, 바로 글씨체였다. 그 당시 '예쁜' 글씨가 유행이었는데, 반에서 글씨를 좀 잘 쓰는 아이가 있으면 다른 아이들이 다 그 애의 글씨체를 따라 했다.
나는 그게 그렇게 싫었다. 그래서 나만의 글씨체를 만드려고 집착했다. 동글동글하게도 써봤다가 그게 반에서 유행하면 궁서체 같은 글씨체로 바꿔버렸다. 길쭉길쭉한 글씨체부터 네모 반듯한 글씨체까지, 써보지 않은 글씨체가 없을 정도였다.
사실 글씨체를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의도적으로 바꾸기 위해서 쓰고 또 썼다. 심지어 급하게 휘갈겨 쓸 때에도 그 글씨체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 몇 번을 연습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나만의 ‘예쁜’ 글씨체로, ‘예쁘게’ 채워진 완벽한 노트를 만들기 위해 집착하고 또 집착했다.
(예상하겠지만) 완벽한 노트는 완성된 적이 없었다. 다양한 글씨체로 채워진, 수십 장이 뜯겨서 너덜너덜해진 노트만 남았을 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니기 싫어도 다녀야 하는, 내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완벽함’을 추구하면서 도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답지만은 않은 시절이지만 그때의 경험이 지금도 종종 도움이 된다. 그 당시 병적으로 집착했던 글씨체 덕분에 요즘도 글씨체가 예쁘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 당시에는 절망의 표현이었지만 수십 번 반복했던 필기 정리 덕분에 지금은 어떤 내용을 내 방식대로 정리하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다. 그래서 손글씨로 하는 필기는, 중학생 때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내 방식대로 현실을 견디며 남겨준 유산 같다.
2021년에는 노트를 한 권 마련해야겠다. 그리고 14살의 내가 남겨준 유산을 마음껏 써먹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