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입문러의 글쓰기 연습장]
한 여성이 저녁 메뉴를 신중히 고르고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메뉴가 어려운 건 아니지만, 익숙지 않은 일이라 손도 마음도 분주하다. 남성도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요리에 합류한다. 두 사람이 힘을 합치니 조금 더 수월하게 진행된다.
미역국에 넣을 소고기도 꺼내고, 제육볶음에 들어갈 당근과 양파도 채를 썬다. 계란말이에 들어갈 야채도 꺼낸다. 당근, 호박, 양파를 통통통 다져서 휘휘 저은 계란 물에 퐁당 빠트린다. 음식이 하나씩 완성된다. 저녁 식사 시간이 넘었지만 뭐 어떤가. 예쁜 그릇에 음식을 담아 늦은 저녁을 맛있게 먹는다. 고생했다고 서로 쓰다듬는다. 즐겁고 행복한 신혼의 저녁 풍경이다.
TV 속 신혼부부가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쿵저러쿵 쓸데없는 참견을 했다.
정확하게는 심심하니 TV 보면서 구시렁거렸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다.
‘제육볶음에 당근 안 넣어도 되는데'
‘계란말이에 파만 썰어서 넣어도 상관없는데..’
'배고플 텐데 대충 하지. 저런 식으로 매 끼니를 하다 보면 지치겠어..’
지친다?..
순간 '지친다'는 감정이 와닿았다.
처음 요리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를 요약하자면, 한 마디로 '우왕좌왕' '엉망진창'이다.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장인 정신으로 하느라 1시간 30분이 걸렸다. 4인 기준 레시피에 요리를 맞추니 양은 산더미였다. 남은 재료 관리는 전혀 안 되는데 레시피에서 재료가 하나라도 빠지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완벽히 구비했다. 주방이 전쟁통인건 당연한 일상이었다.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쾌감에 빠져 요리를 했지만, 점차 지쳐갔다. 그럴 수밖에. 재료를 사고 요리하고 밥 먹고 정리하고 설거지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대략 4시간 정도가 걸렸다. 퇴근하고 요리하고 저녁 먹으면 잘 시간인 적도 종종 있었다. 결혼 초, 힘이 잔뜩 들어갔던 탓이다. 그럴싸한 메뉴, 맛있는 저녁 한 끼는 삶의 낙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비효율적이군' 그 당연한 사실을 한참 뒤에 깨달았다는 게 더 신기할 따름이다.
다행히 지치기 전에 조금씩 생각을 바꿨다. 일단 가짓수를 축소하고, 메뉴를 단순화했다. 손이 많이 가는 메뉴보다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레시피 위주로 요리를 했다. 제일 큰 문제가 요리는 익숙하지 않은데 거창한 메뉴를 선택한 것이었다. 고추잡채나 짬뽕에 도전을 한다던가..... (무식하면 용감하다) 수정을 한 후, 보관 폴더에는 '간단한 한 끼' 레시피 목록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익숙해진 뒤부터 '대충, 대강'해도 상관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예쁘면 먹기도 좋고, 모든 속재료가 완벽하게 들어가면 더 맛있겠지만 매 끼니를 그렇게 먹을 수 없다는 걸 받아들였다. 그게 가능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일단 나는 아니었다. 상황을 수정(?)해서인지 다행히 요리에 재미를 잃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었다.
TV를 보는 내내 내가 한 참견의 핵심은 '좀 더 힘을 빼고 편하게 하지'였다.
'그렇게까지 모든 재료를 다 넣을 필요는 없는데'
'그렇게까지 예쁘지 않아도..'
그렇게까지..
사실 말이 쉽지, 가장 어려운 일이다. 물에 뜨려면 '뜬다는 사실'을 믿고 몸에 힘을 빼야 하는데 빠질 것 같으니 오히려 힘을 주게 된다. 그러고 보면 힘을 뺀다는 건, '나를 믿을 수 있을 때'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나처럼 자기 확신이 부족한 사람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가뜩이나 실력도 부족한데 힘까지 빼면 꼬르륵 빠져버릴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다.
결국 그날 구시렁은 '나한테 하는 말'이었다.
내게 익숙한 '요리'와 '지친다'는 감정을 연관 지으니, 지쳐가는 과정이 또렷했다. 그 선명한 과정 속 주인공은 다름 아닌 '글을 쓰는 내 모습'이었다.
아.. 지금 내 글쓰기도 저 상태구나..
부쩍 글쓰기가 힘들다고 느꼈다. 어디서 느꼈냐고 묻는다면, 언제부턴가 글을 쓸 생각 하면 한숨부터 나온다.'힘이 들어갔다'는 걸 눈치챘지만 딱히 대안은 없었다.
어떻게 무엇을 빼야 하는 걸까.
아니, 글쓰기에서 힘 빼기가 무엇일까?
글을 쓰는 내 모습을 차근차근 떠올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초안을 쓰는 순간부터 힘이 잔뜩 들어갔다는 걸.
'제목은 이게 맞아 아니야. 이건 어때? 이 제목에 이 내용이 들어가야지. 아냐, 이렇게 쓰면 안 되는데? 다른 건 없나? 단락 흐름이 이상한데?'이건 이래서, 저건 저렇게~ , 이 문장이 아니야'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다 보니 한 문장 쓰다가 멈추고 세 문장 쓰다가 고치고, 제목을 여러 번 바꾸는 일이 반복됐다. 당연히 멈칫하는 일이 잦아졌고, 글 한 편을 쓰는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는 이전과 달랐다.
두 세줄 쓰다가 노트북을 닫아버리기 일쑤였다. 점점 글을 완성하는 것도 시작하는 것도 힘들어졌다.
어렴풋이 '글쓰기 힘 빼기'의 답이 잡혔다.
요리에서 메뉴는 심플하게, 재료는 단순하게 고친 것처럼, 제목 욕심을 버리고, 글 업로드 여부는 완성 후에 생각한다. 목차나 서사의 흐름을 잡고 글을 쓴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제대로 된 한 권의 책 형식으로 묶는 건 천천히 모아서 한다.
초안은 초심을 찾아서 '생각나는 대로, 머릿속에 휘발되는 생각 일단 묶어두기' 정도로 쓰겠다. 초안 쓰는 동안 에너지를 비축해 뒀다가 수정할 때 쓰는 게 낫다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초안 쓸 때가 제일 즐거웠다. 제일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쓰는 즐거움'이다.
단순한 진리를 어느새 잊고 있었다.
현재 나는 '글쓰기를 배우고 연습하는 사람'이다.
작가이자 유튜버인 '이연'의 책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에 이런 말이 있다.
"무명을 즐겨라"
프로의 세계에 진입하면 하고 싶은 대로 못하는 순간이 있다고 했다. 나를 보는 수많은 눈이 있고, 기대가 생기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던 '무명'시절만의 매력이 있으니 그 시기를 즐기면서 마음껏 종이를 낭비하라고 말한다. 이 말이 참 오랫동안 맴돌았었다.
나는 '무명'이다. 앞으로 진짜 작가가 될지 이대로 지망생으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글을 쓰는 게 아직 즐겁고, 어떤 완성도도, 기대도 하지 않는 '마음껏 종이를 낭비해도 되는 상황'이다. 읽는 사람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정작 내가 지치는 건 배려하지 못했다.
이제 요리를 막 시작한 나한테 필요한 건 맛깔난 글솜씨가 아닌 매일 쓸 수 있는 글:력이 먼저다.
여전히 '힘 빼기'와 '아무리 그래도..' 사이에서 힘겨루기를 하지만 조금씩 '힘 빼기'에 좀 더 무게추를 두는 중이다.
읽는 사람, 쓰는 사람. 그 중심을 잡는 것.
그것이 내가 찾은 '글쓰기 힘조절'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