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사는 게 재미없네."
친구와 만나면 자주 나누는 대화다. 중년이 되고 나니 에너지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의욕도, 열정도, 간절함도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엄청나게 가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욕구가 사라지니 자연스럽게 삶의 재미도 사라진다. 삶에 치이기 시작한 이후, 나와 내 주변에선 한숨소리가 자주 들렸다.
그저, 사는 거지.
큰 사건 없이 평온한 하루에 감사하면서도, 가끔 마음이 텅 빈 것 같고, 꺼진 배터리처럼 멍해졌지만 금세 회복했다. 이 나이에 자극이 없는 건 당연한 거라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를 읽게 되었다. 평소엔 잘 읽지 않는 소설인데, 그날따라 묘하게 시선이 갔다. (이게 바로 끌림의 법칙인가?)
평생을 꼿꼿하게 살아온 메르타 할머니는 양로원에서 친구들과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양로원을 떠나야 할 위기에 처하자, 메르타는 친구들과 함께 절도를 해서 차라리 감옥에 가기로 한다. 젊은 시절, 각자 한가닥 했던 이들이 모여 사건을 벌이기 시작한다. 처음엔 우왕좌왕하던 이들이 점차 루팡처럼 도둑이 되어가는 과정은 실로 유쾌하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절도를 하면서 느끼는 긴장감과 성취감, 감옥에서의 편안한 생활에 대한 욕구는 메르타 할머니를 각성시킨다. 그녀는 상상도 못했던 삶의 의외성에 가슴이 뛴다.
이 작품은 도둑질을 미화하지 않는다. 사람은 평생 욕구가 있어야 하며 그 욕구에서 비롯된 의외의 행동이 주는 삶의 생동감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삶의 의외성
이 단어를 보고 나는 흔들렸다. 살다 보면 익숙함이 일상이 된다. 자극이 없는 삶을 당연하다고 여겼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사건은 줄어들고,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그럴 것만 같았다.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진 내 삶은 안전하고 편안했다.
'난 그런 거 안 좋아해. 안 좋아할 게 뻔해.' 그렇게 단정 짓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리스트'는 몇 년째 변함없었다. 도전은 무섭고,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정체된 느낌이었다. 아마 그래서 고집이 세지는지도 모른다. 경험해보지 않은 영역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왜 삶이 공허한가에 대한 답을 찾았다. 새로운 자극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극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했던 것이다. 메르타 할머니처럼, 나 역시 새로운 방식의 도전이 필요했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 더는 자극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스스로 자극을 찾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삶의 의외성'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삶의 의외성이 무엇이길래?
물론, 거창한 변화가 필요하진 않다. 늘 로맨스 소설만 보다가 역사책을 읽어보거나, 한식만 먹던 사람이 프랑스 음식을 먹어보는 정도의 '사소한 의외성'도 충분하다. 처음에는 '의외성'이란 말이 부담스러워 '허튼짓'이라고 이름 붙였다. '아무런 쓸모 없이 헛되게 하는 짓.' 어쩐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서 나는 서점에서 인문 서적을 지나쳐, 수험서 코너로 발길을 돌렸다. 고등학교 국어 문제집을 집어 들어 풀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의 공부는 지겨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 시험에서 멀어진 지도 오래다. 문제집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수학 문제집을 풀어보자.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수학 문제집을 사들고 겸허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밤, 스탠드를 켜고 조용한 음악을 틀었다. 국어 문제집을 펼쳐 읽고, 밑줄을 긋고, 문제를 풀었다. 연필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좋았고, 오랜만에 느끼는 글자들의 촉감이 좋았다. 몇 문제를 풀다 덮고는 채점까지 했다.
나는 이내 웃음이 났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예전엔 고문처럼 느껴졌던 공부가 이제는 즐겁게 다가왔다.
압박감이나 평가가 사라진 지금, 그저 재미로 풀어보는 문제집은 나를 해방시켰다.
그 기분은 의무감과 압박감을 받던 예전의 나를 해방시켜 주는 느낌이었다.
'이제 자유롭게 풀어. 힘들었지?' 하며 위로하듯 말이다.
물론, 문제집 하나로 인생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나는 내 삶에 '의외성'을 찾아보기로 했다. 여든이 넘은 메르타 할머니처럼,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해보기로 말이다.
삶이 지루해질 때, 그건 우리에게 새로움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익숙함을 넘어서야, 우리가 잊었던 즐거움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