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그중 두 명은 자신만의 특별한 취미가 있었다. 한 명은 온갖 공연을 섭렵하고 다녔다. 뮤지컬, 연극, 영화 등등 가리지 않고 쫓아다녔다고 한다. 또 한 명은 게임을 좋아해서 하루에 몇 시간씩 게임을 하고, 게임과 관련된 행사를 직접 개최하기도 하더니 관련된 직종에서 일을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우와"하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부럽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지?"
"좋은 것도 아니야. 돈도 시간도 많이 들고."
그 한숨조차 부러웠다. 오롯이 그곳에 '집중하고 있다는 증명' 같았다. 취미생활에 열중하는 삶이 너무 부러웠다. 새삼 입안에 모래알처럼 걸리적거렸다. '나도 취미를 찾고 싶다.'는 간절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새삼스럽다. 대체 왜?
"취미가 뭐예요?"
"제 취미요?.. 음... 음악감상, 독서, 웹툰 보기, TV시청??.."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늘 머뭇거렸지만, 정작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음악감상, 독서, TV시청, 야구 보기‘
왠지 2% 부족한 답 같아서 잠깐 고민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취미도 없었다.
좋아하는 게 있냐고 물으면 좀 더 쉬울 것 같은데,
‘취미‘란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 선뜻 다른 대답을 하기 어려웠다.
왠지 취미는 '좀 더 특별한 무엇'같았다.
이력서를 쓸 때마다 취미와 특기란은 늘 골칫덩어리였다. '음악감상, 독서, TV시청'으로 채우기가 껄끄러웠다. '취미는 없어도 특기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특기란이 공란인 게 특히 거슬렸다. 고민 끝에 특기란에 피아노를 쓰고, 취미란에 음악감상과 독서만 남겼다. 그나마 피아노를 오래 쳤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사적인 자리든, 공적인 자리든 나의 취미는 거슬리지 않는 아주 무난한 해결책이었다. 마치 무색무취 같은 느낌이었다. 어딘가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개성이 듬뿍 담긴 취미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마음만 있을 뿐, 정작 어떤 노력을 하진 않았다. 취미가 삶에 필수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정한 취미 없어도 충분히 즐겁게 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왜 새삼 그 자리에서 나눈 대화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을까?
몇 년 전, 어느 더운 여름날 오후더위에 지쳐 멍하니 TV를 봤다. '덕업일치 성공담'이었다.
[*덕업일치(덕業一致): 자기가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음]
나와 다른 세상 속 사람들 이야기는 흥미로웠는데
희한하게 프로그램이 끝나는 순간, 왈칵 눈물이 흘러내렸다.
'부러운 거였어.'
그날 흘린 눈물은 감정에 정확한 이름표를 붙였다.
부러움.
당시 나는 하고 싶을 찾고 싶어 방황하던 시기였다. 꼭 성공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좋아하는 걸 하며 사는 삶'은 가장 바라는 삶이자 '단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삶'이었다.
누군들 바라지 않을까. 원래 어떤 콘텐츠든 미화도 하고 과장도 되기 마련이다. 그 당연한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너무 절절한 때 느낀 부러움은 생각보다 많이 날카로웠다.
덕업일치의 꿈은 평생 잡지 못한 파랑새였다. 고등학교 2학년 처음 생긴 꿈을 이루지 못했고 이후 좌절과 방황의 시간은 꽤 길었다. 꼬인 실타래를 풀겠다고 발버둥을 쳤지만, 조급한 마음은 더 꼬이게 만들 뿐이었다. 미련은 꽤 오래갔고 힘들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현실과 타협하면서 살기 바빴다. 물론, 삶이 100% 불만족스럽게만 흘러간 것도 아니었다.문득 생각이 날 때도 있있지만, 추억되새김질에 불과했다. 이미 너무 멀리 왔으니 가던 길을 열심히 가는 것이 최선이라 믿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무심코 나눈 '취미'이야기가 무의식 저 밑으로 밀어 넣었던 마음을 다시 지피는 작은 불씨가 될 줄은 몰랐다.
비록 '덕업일치'는 불가능하더라도, '덕'은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몰입할 무언가가 절실한 시기도 한 몫했다.
'우선 취미를 찾아보자' 마음먹었지만 딱히 좋아하는 게 떠오르지 않았다.
취미 한자어 뜻을 뒤져봤다.
趣뜻 취, 味맛 미.
-마음에 끌려 일정한 방향으로 쏠리는 흥미
-아름다움이나 멋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능력
-전문이나 본업은 아니나 재미로 좋아하는 일이다.
첫 번째 의미에 눈길이 갔다. '마음에 끌려'.
'마음이 끌리는 게 없는 건가?'
아냐, 끌리는 게 없어서가 아니야.
뭐가 있는지조차 몰라서 그래...'
평생 숙제처럼 남았던 '미련'이 다시 꿈틀거리고, 텅 빈 마음을 조금이라도 채워야겠다는 이상한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