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4번째 책
글쓰기 책 4번째, <방구석일기도 에세이가 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인정한다. 쉬워 보이는 책을 골랐다. 20권 중 한 권이라도 쉽게 추가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변명하자면, 꼭 그 이유만 있는 건 아니다. '이런 것도 에세이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늘 맴돌았다. '방구석 일기'도 에세이가 될 수 있다는 문장은 호기심을 끌어당기기 충분한 제목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처음 책을 집은 민망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에세이를 처음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렇게 저렇게 하는 방법'만 나열하지 않고 조목조목 예시를 들면서 풀어준다. 어떤 글쓰기 방법을 막상 적용하려면, '내가 그걸 할 수 있을까?' 하면서 넘어가기 일쑤였는데 '한 번 적용해 볼까?'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문턱을 낮춰서 심리적 거리를 가깝게 만든 효과였다. 초보자 입장에선 아무리 대단한 기술을 알려주는 책이라도 난이도가 높으면 적용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기초적인 부분을 짚고 넘어갈 수 있어 도움이 됐다.
이 책에서 내가 도움 받은 건 이렇다.
첫째, 구체적인 독자설정 방법
예시)
'티브이보다 독서를 더 좋아하는 나'를 기술한 글을 쓴다면, 독자는 어떤 사람일까?
가벼운 걸 싫어하고 느린 속도를 좋아하는 진지한 사람.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추구하는 진지파.
유행을 좇지 않고 느린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
주제를 '느림의 미학'으로 잡아도 좋겠다.
독자를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방법을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풀어서 설명해 준 게 도움이 됐다.
둘째, 장문과 단문을 섞어서 리듬감 있게
이 방법이 이 책에서만 알려주는 방법은 아니다. 긴 글은 피하라는 말을 글쓰기 책에서 종종 한다. 특히 나 같은 초보자는 비문이 많아질 수 있기 때문에 장문보다 단문으로 쓰라고 한다. 혼란이 생기는 지점이었다. 의식적으로 단문만 쓰다 보니 뭔가 글이 툭툭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장황하게 글을 쓰는 습관을 없앤 건 좋은데, 부드럽게 읽히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장문으로만 이어진 글과 단문으로만 이어진 글, 장문과 단문을 섞어서 쓴 글을 예시를 통해 자세히 보여준다. 직접 눈으로 비교하면서 읽으니 그 말이 와닿았다.
셋째, 반복학습효과
일상적인 예시 글 하나를 다양하게 적용하니 반복학습 효과가 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예시문장은 대충 이런 내용이다.
'아침에 눈을 뜨니 8시였다.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지하철을 탔다. (...) 회사에서도 하루종일 실수만 연발했다. (...)이게 다 어제 그 드라마 때문이다. 왜 그렇게 재미있어서 잠도 못 자게 했나..'
하나의 글이 다양하게 바뀌면서 일상 글이 에세이로 둔갑하는 과정이 보였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구체적이고 적절한 예시와 친절한 설명이다. 물론, 에세이를 쓰고 싶은 초보자가 읽으면 좋은 책은 많다. 이 책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만족도가 높았던 건, 마침 내가 고민하고 의문을 품었던 문제와 직결된 문구와 예시가 적절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좋다 안 좋다는 기준은 읽은 사람이 필요한 무언가를 얻었는가. 효용성에 대한 문제다. 결국 인연도, 책도 타이밍인가..
"에세이를 쓰려는 수줍은 표현주의자들에게 (이 표현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인정하시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여러분은 '관종'입니다. 타인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으면 서운해지는 사람이지요. 지금 그게 무슨 막말이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내성적이고 내향적인 줄 아느냐고. 사람들의 시선을 얼마나 부담스러워하는 줄 아느냐고. 네. 압니다. 여러분은 참 수줍은 관종입니다. 저처럼 말입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에세이를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부끄러운 일도, 남다른 면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여러분 중 다수가 말이나 몸으로 그것이 잘되지 않아서 글을 쓰고 싶어 할 따름입니다. 자기표현법으로 글쓰기를 택했고, 결과물을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작은 소망을 품었을 뿐입니다. 이 책이 여러분의 그런 막연한 소망을 뚜렷한 욕망으로 키워드렸기를 바라봅니다." -'에필로그' 중에서
무엇보다 이 책 저자와 내가 결이 잘 맞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작가는 초보자가 무슨 고민을 하고,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나도 그랬다'는 투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토닥였다.
그간 어려웠죠? 이렇게 하면 좀 더 쉬울 수 있어요.라는 친절함도 좋았다. 기술적인 부분은 다소 약할 수 있지만, '그래 이 정도라면 나도 해볼까?'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들었다.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에세이를 이제 막 쓰고 싶어 하는 나한테,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난 참고서 같은 존재로 남았다.
글쓰기 책 20권 읽기라는 도전을 하다 보니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두둥실 떠오른다.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도 생각보다 고민됐다. 한 권 완독 후, ' 다음엔 무슨 책을 읽지?' 하며 한숨을 쉴 때도 있다. 세상에 글쓰기 책은 너무 많고, 추천도서도 많지만 선뜻 내가 손이 가는 책과 다를 때가 많다.
'좀 더 어려운 책을 읽어야 하나?' '지금 내가 읽어야 할 책은 뭘까?' 하는 질문도 책 고르는 걸 어렵게 만든다.
20권이라는 숫자가 주는 압박감도 있다. '내가 왜 20권이라고 했지? 10권도 힘들 것 같은데? 때려치울까? 어차피 누구도 이 도전에 관심이 없으니 나만 슬쩍 바꾸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종종 든다. 책은 많이 읽고 있다. 심지어 잘 읽힌다. 책을 읽고 있으면 행복하다. 문제는 시험 보기 전날 책상 청소가 재밌듯이, 글쓰기 책 외에 책이 너무 잘 읽힌다는 것. 특히 소설....
그래도 이 도전을 멈출 생각은 없다. 실패가 분명해 보일지라도,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받을지라도 이 생각은점점 확고해진다. 나는 12월 31일까지 이 목적독서 도전을 끝까지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잃는 것은 도전 실패 하나뿐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도전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했을 것들, 생각해보지 못했을 문제들을 하나씩 깨닫는 쾌감은 꽤크다. 그동안 나는 목적독서가 안 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에 갇혀있었다. 한 분야의 책을 연달아 읽는 건 불가능하다 여겼다. 비록 5권밖에 안되지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건 분명 목적독서가 맞다. '어라? 되네?' 나도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끌리는 대로 책을 잡고 있지만, 큰 깨달음을 얻었다. 끌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읽다 보면 '아 내가 알고 싶었던 건데' '딱 지금 나한테 필요한 말이야' 할 때가 있다. 덕분에 책은 포스트잌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막연하게 '난 뭔가 필요한데 뭐가 필요한지 모르겠네' 하며 불분명하던 모양이 뚜렷한 형체를 드러낸다. '이거구나. 이거였어. 내가 지금 필요한 게'. 이런 부분들이 아마 불가능할지 모르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고 해 나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건 분명하다. 20권을 다 읽든 못 읽든, 읽은 책을 쭈욱 한 곳에 모아놓고 보면 뭔가 보일 것 같은 기대감. 그게 뭘까 궁금해진다.